독일어 시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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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는 주인공 '지기 예프젠'이 이 소년원 특유의 교화방침에 따른 독일어 작문시간에 작문주제 '의무의 기쁨'에 대해 '쓸것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쓰지 못해 독방에 가둬져 작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의무의 기쁨에 대해 쓰지 못한 것은 그의 유년시절의 너무도 모순되고 복잡했던 기억 때문인데, 그 기억이란 바로 경찰인 그의 아버지 '옌스'가 아버지의 친구이자 주인공을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화가 '막스 난젠'를 감시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인 옌스는 사회적으로는 특별히 하자가 없는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아버지는 충직하게 의무를 지키는 것을 심지어 낙으로 삼을 정도로, 어쨌건 국가의 기준에서는 그 누구도 따를자 없이 선량(?)한 사람이고 준법정신 또한 철저한 사람이다. 한편 그의 동향친구이자 어린시절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막스는 유연하고 사려깊은 사람이다. 다소 고집불통이라는 점은 둘다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고집불통의 근거로 삼는 규범은 각자 다르다. 옌스는 실정법, 그리고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자신의 규범으로 삼지만, 막스는 자신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의, 혹은 자유라는 개념을 자신의 행동 준칙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막스에게 '창작금지령'이 내려지고, 이를 옌스가 감독해야만하는 의무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옌스는 이러한 감독의무를 너무도 '충실하게' 이행하며 막스는 이에대해 나름의 방법으로 저항한다.(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창작하는 막스의 전략?이야말로 이 저항의 백미였다) 철저한 준법의식의 소유자이자, 의무를 지키는 것만이 인간의 도리라 생각하는 옌스는 서서히 그 의무에 지배되어 심지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의 남은 그림을 소각하고, 막스의 작품 중 자신의 딸이 모델로 된 그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녀를 꾸짖으며, 전쟁 중 탈영했던 전과가 있는(참고로 그는 그 탈영한 아들이 포탄에 맞아 집으로 돌아오자 상부에 신고하여 체포시킨다) 아들과 의절한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의 의무와 막스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던 영특했던 소년 지기는 의무에 '미쳐버린' 아버지로 인해 결국 그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강박관념으로 또한 '미쳐버리고'결국 막스의 그림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간다.(참고로 막스 그림의 절도사건을 쫒는 의무 또한 아버지 '옌스'에게 맡겨져 있었음이 소설에 암시된다) 이처럼 자신이 감옥에 들어오기까지의 일화들을 지기는 독방에 가둬져 관둬도 좋다는 원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써내며(이로써 그는 '의무의 기쁨'을 느낀다.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결국엔 가석방되지만 그의 앞에 놓여진 것은 유년시절과 전혀 다를바 없는 부조리한 세상이다.(지기는 간수 요스비히의 축하인사에 이렇게 답한다. '새로운 생활이요?..(중략)..그런건 없어요. 우리가 먹으려는 국에는 이미 어떤 놈인가가 침을 뱉어 놓거든요)

사적인 됨됨이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고, 자식들에게는 자상하며, 냉정하기보다는 우유부단한, 따뜻하며 다소 어리버리한 것처럼 보이기까지하는 옌스. 딸 말마따나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던' 옌스가 결과적으로 그렇게 '사악한'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로부터의 강요?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 글쎄. 외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 그리고 그에 기반한 자신의 윤리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수많은 잔인한 행동들을 그 말마따나 '마지못해' 하면서 언제나 변명한다. 이것은 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속에 자신의 판단이나 자신의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올바름'에 대한 판단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여 남(즉, 국가나 법등등)에게 맡겼고, '경찰관'이라는 지위를 통해 얻게 된 권력의 지나친 향유는 그를 결국 의무의 노예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올바르지 못한 세상'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나쁜 세상의 권유와 강요를 선택한 '올바르지 못한 개인'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결코 용서될 수 없으며, 이는 오늘의 수많은 '옌스'들에게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그 '옌스'들이 대부분은 자신의 사악함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다는 점에서, 아울러 우리 또한 그 '옌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가슴을 정말이지 답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개인'에 대한 비난만으로도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세상과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기는 부조리는 '올바른 개인'뿐만 아니라 '올바른 사회'를 만듦으로서 그 해결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의 유년시절의 부조리한 현실이 그의 현재시점의 부조리함과 기묘하게 엮여져, 독자로 하여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하는 의문을 지속적으로 품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착하고 계몽적인 요스비히나 너무도 온유한 힘펠 원장이 과연 옛 시절의 옌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렇게 '착한'그들이 과연 올바른가? 착한것이 올바른것이 아니라면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어떠해야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소설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배경으로보나, 서술자의 회상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걸로 보나, 아울러 서술자가 감금상태라는 것으로보나 본 소설은 여러가지로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 떠올려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본소설이 '더' 재밌었고 '덜' 난해했다는 느낌이다. 번역도 무난하다. 하여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인듯.

ps.본 소설의 화가 '막스 난젠'은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를 그 모델로 한 것이라고. (근데 그게 누구...??ㅋ-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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