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법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6
정태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우리사회에 법치만큼이나 '순수하다고 전제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있을까? 순수함이 지나쳐서 씨니컬하게 들릴 정도인 '법대로 해.'는 비단 사인 상호간의 분쟁에서만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외려 '법대로 해'는 우리사회 정치의 장에서 '법치'라는 담론에 의해 모든 정파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정파들은 서로 그 '법치'를 외치며 다시 '싸운다'는 것이다.

왜일까? 저자는 아마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정치와 법치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라고. 맞는 소리다. 사실 입법을 주 임무로 하고 있는 의회와 각 정당이 법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법을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 아닌가? 결국 정치가 법을 만들고 그들이 만든 법에 의해 정치는 규제된다. 즉, 법치는 복잡한 정치가 귀찮아졌을 때 한번씩 꺼내보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는 거다. 법치는 정치가 바로설 때 가능한 것이지, 그 자체로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정치와 법치는 상호보완적인 것, 아니 외려 정치가 법치에 우선하는 것(법치는 어쨌거나 정치에 의해 구성되기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내용없이 법치를 부르짖었던 판사출신의 정치인-지금은 은퇴한-을 비판하고 있다. 한마디로 법실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정치와 법치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 법치에 대한 정치의 우선성 즉, 정치에 의해 법치가 구성되는 측면을 잘 포착해낸 칼 슈미트와 존 롤스의 견해를 비교하며, 단순히 실존적 권력만을 중시하여 정치과잉(?)에 빠진 슈미트의 함정을 피해 정치에 있어서도 관용과 공공성이라는 '내용'에 천착한 롤스의 견해를 통해 우리의 정치와 법치가 바로서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소 의아했던 것은 롤스가 정치적 기본권을 경제적 기본권에 비해 더욱 중시했다는 이야기인데, 경제적 기본권과 괴리된 정치적 기본권이 과연 그 제대로된 역할을 해 낼 수 있겠느냐에 대해 적지않은 의문이 들었다. 자유주의 정치학자의 한계인가? 롤스가 그 정도 생각을 안했을리는 만무하고, 결국 내가 공부를 좀더 해봐야 하겠다는 이야기.-_-;;;;;

책의 내용이 갖고 있는 시의적절성과 문제의식은 책이 쓰여진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이지만, 우리의 현실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법실증주의 비판하랴, 슈미트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랴, 현실정치 비판하랴 등등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내려다가 다소 서술체계가 무너진 듯한 단점이 엿보인다. 아울러 다소 흥분해서 서술한 부분도 보이는데 저자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뭘?ㅋ) 조금 힘을 빼고 서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내용없는 법치가 횡행하며 일종의 '폭력'이 되어가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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