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룬과 이야기 바다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달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저 인생은 둥글게 살고 볼일이라는 신조를 가진 나로써는 까칠한(?) 지식인들에게 묘한 컴플렉스(?)혹은 경외심 같은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인 살만 루시디 또한 예외는 아니라 할 만 한데, 가끔씩은 루시디가 우리로 치면 이문열(?)과 비슷한 유형의 컴플렉스를 겪고 있는 지식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개인적으로는 그간 그닥 가까이 하고픈 작가는 아니었다.(구체적으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아랍권 비판은 지당하면서도 종종 뭔가 핀트가 안맞는 경우가 가끔씩 보인다는 개인적인 '느낌'때문일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동생이 모 북클럽 가입 선물(?)로 본서를 구입한 터라 나도 겸사겸사 우연찮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뭐 사실 이거 딸랑 한권 읽고 그를 접해보았다고 말 할수 있는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튼 그가 이란의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이슬람의 종교적 판결이라고 한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망명과 '은둔생활'(그가 각국의 '근본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망명'정도(?)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을 하던 도중 쓰게 된 첫번째 작품인 본서는 애초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이 늘상(?) 그렇듯 책은 단순히 아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읽힌다.

이런 계열(?)의 소설은 처음이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읽는 내내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 '네버엔딩스토리'를 보는 듯 뭔가 환상적이고 꿈결같은(?)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주인공 '하룬'의 말마따나 아버지의 그 '사실도 아닌 이야기'가 알고보니 사실이었던, 때문에 주인공이 '수다'족과 '잠잠'족 사이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게되는 본 내용은 몇년 전 나름 인상깊게 봤던 영화 '빅 피쉬'가 생각나기도 했고. 흥미로웠던 것은, 읽던 도중-이런 류의 이야기가 흔히 그렇게 결말을 내듯-주인공이 꿈을 깨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 않을까 예상을 해보았으나, '너무도 당연하게' 실제 벌어진 일로 서술된다.(그런 면에서 저자는 자신의 말을 뒤집지 않았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이것이 모두 '꿈'으로 결말이 났으면, 이야기 속에 나왔던 그 수많은 '뼈있는' 정치적 우화들은 살짝 빛이 바랠 뻔 했다.)

하지만 작가가 처한 극한적 상황의 산물이랄 법한 본 작품은, 작가 본인의 그 극한적 상태 만큼이나 설정자체도 극한으로 밀고들어간 면이 없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물론 그건 저자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인 결과였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는 한다.) 번역자 말마따나 언론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에 관한 정치적 우화로도 읽히는(아닌게 아니라, 굉장히 '노골적'이다ㅋ) 본서는 시종일관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을 극단으로 분할한다. 침묵은 나쁘고, 수다는 건전하다는 식의 극단적 이분법은(물론 수다족의 왕자 허랑과 바락공주, 잠잠족의 무드라라는 예외적인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부차적일 따름이다.) 솔직히 아쉬움이 남았다. 잠잠족 하나하나에게도 침묵의 악덕만큼 미덕이 존재하고 있으며, 수다족 하나하나에게도 대화의 미덕만큼 악덕이 존재함을 드러내 주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전쟁과 화해 속에서 양자간의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을 이루어내는 식의 결론이 아쉬웠다는 것은 동화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었을까?

저자의 재치있고 명랑한 표현만큼이나, 엉성한 직역투의 번역으로 자칫 '동화'로서의 본분이 잊혀질 뻔한 본 작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재미있고 생동감있게 읽혀 질 수 있게 된 데에는 역시나 성실하고 적절하고 재치있는 번역을 해준 번역자의 공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별 생각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무언가 하나 건질 것이 있을 법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본 작품은 '재밌다.' 때문에 일독을 권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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