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옮긴이 말마따나 아렌트는 20세기에 반(反)했기에, 21세기를 선취한 사상가일런지도 모르겠다만, 그녀의 책이 원채 난해하기로 이름난지라 그간 회피해 왔었는데, 본서의 경우 분량도 얄팍(?)한데다가 초입의 '옮긴이의 말'에서 아렌트의 책 중에서는 비교적 쉽다는 언급이 있어 구입하게 되었다. 난이도에 대해서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쉽다는 것보다는 '비교적'이란 말에 강조점을 찍어야 할 듯 싶다. 아렌트의 저서들 중 본서가 '비교적' 쉬운건지 어쩐건지는 그녀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터라 무어라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한건 여타 사회과학 서적들과 비교해 볼때 결코 쉬운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리뷰를 자신있게 올리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일단 정리된만큼만 올리고 본다. 책이 쓰여진 해는 1970년으로,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이어진 정세가 평화로 귀결되기 보다는 냉전을 통한 군비의 확장으로 인해 '전쟁이 외교의 연장'이던 과거는 전복되고 외려 '평화가 다른수단을 통한 전쟁의 연속'이 된 시기였다. 이러한 파국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이래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이 당시 대학생들을 자극시켰고, 이는 '폭력적'학생운동으로 이어졌으며, 파농이나 사르트르의 '폭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주장 또한 위력을 발하고 있을 때였다. 문제는 그들이 '폭력'의 성격을 전혀 모른다는 점, 아울러 그 '폭력'을 사상적으로 규명할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기획'이 그 취지상의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측면을 지적한 후, 그녀는 폭력의 반대는 비폭력이 아님을, 외려 폭력의 반대는 권력임을 논증해 낸다.

'폭력의 반대는 권력'이라는 테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상식과 다소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지금까지의 많은 사상가들은 폭력을 권력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말한다.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권력이 아니라고. 권력이 없는 곳, 권력이 균열을 일으키는 바로 그 곳에서 폭력은 발생한다고. 아렌트가 말하는 권력은 '다수의 동의'에 기반한다. 반면 폭력은 순전히 '도구'에 의존한다.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렇게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였음에도 '권력'은 베트콩에게 손쉽게 넘어갔다. 이러한 폭력과 권력의 개념은 "권력의 극단적인 형태는 한사람에 반하는 다수이며,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는 모든 사람에 반하는 한사람이다."라는 아렌트의 언급에서 권력과 폭력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임을 우리는 좀더 쉽게 알 수 있다.

권력은 그 시초로부터의 '정당성'을 획득해야 하지만, 폭력은 미래의 어떠한 목적을 통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즉, 폭력은 단순한 수단이기에 다른 '목적'이 요구된다. 하지만 권력은 그 자체가 애초의 목적이다. 권력은 권력 자체만으로도 정당화된다. 이러한 정의는 매우 중요하게 보여지는데, 이는 권력을 파괴할 목적을 지닌 폭력이라는 수단이 성공을 거두어 폭력에 의해 권력을 획득했다면, 권력을 획득한것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여지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사실, 애초 폭력으로만 맞붙는다면 국가를 이길만한 조직체는 없다.) 즉, 권력과 폭력은 애초 다른 개념이기에, 폭력을 통한 권력 획득은 이미 사라진 권력을 재창조하거나 이미 넘어온 권력을 접수하는 과정일 뿐인 것이 된다.(즉 권력은 폭력의 정당화가 예정된 그 현장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20세기가, 그리고 그 부산물(?)이라 할만한 21세기가 전쟁과 쿠데타로 점철된 폭력의 세기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권력이 권력답지 못하기에, 권력이 권력이 되는 과정인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했기에, 아울러 권력이 한곳(그것이 자본이건, 관료건)으로 집중되었기에, 역설적이게도 권력이 부재하는 수많은 틈이 생겼고, 그 틈에서 폭력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독 20세기가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치적 자유를 총체적으로 억압하고 권력이 독점되는 '관료제', 올바른 합의의 장이 붕괴되고 사적이익만이 횡행하는 시민사회 때문이다. 아렌트는 이야기한다. "권력의 독점화는 나라 안의 진정한 권력 원천들을 고갈시켜서 없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즉, 우리가 지금 보는 야만적인 폭력은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기에, 대중의 소통을 통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공적영역이 붕괴되었기에, 그러한 공적영역을 지속적으로 붕괴시키는 사회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력을 단순히 비폭력 담론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때문에 폭력만큼이나 폭력적이다. 한편 권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는 맹목적인 폭력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합의에 기반한 능력있는 권력, 다원화되고 분산된 민주화된 권력, 바로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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