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현대사상신서 2
윤평중 / 교보문고(단행본)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에 '근대', '근대성'이라는 말처럼 남발되는 말도 없지만, 그 담론들이-남발되는 만큼-충분한 이해에 기반하여 언급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글쎄,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 본 '근대'에 관한 저술 중 그야말로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인 윤평중 교수는'서구적 합리성의 문제와 관계된 사회비판의 전략을 메타이론적으로 천착'해 보고자 본서를 집필했다고 하는데, 그 집필의도는 내용과 명확히 부합한 것으로 보이며, 개인적으로는 난이도로 보나 내용의 적정성 측면으로 보나 이런 분야의 책 중에서 이 책보다 나은 책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저자는 우선 베버와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아도르노의 근대성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며 서양 근대성에 대한 초기의 논의를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근대에 대한 이해는 날카로웠지만 너무 일면적이었기 때문에 근대성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침식하는지 알지 못했고,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대책없는 비관론과 주의주의로 수렴되게 되었는데, 하버마스는 여기에 '생활세계'라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세계를 상정하여 선배 학자들의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근대성에 대해 보다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논의를 해내게 된다. 책은 하버마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하버마스의 이론 전체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카를 포퍼의 신실증주의(물론 포퍼 본인은 이를 '비판적 합리주의'라 명명했다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실증주의의 조금 더 발전적인 변형에 불과해 보이기는 한다)와 하버마스의 논쟁, 포퍼와 쿤의 논쟁, 뿐만아니라 해석학적 통찰을 재구성하고자 한 하버마스와 가다머 사이의 유명한 논쟁을 소개 한 후 합리성의 개념을 확립하고 그 토대 위에 사회 합리화를 위한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하버마스의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를 한다.

서양 근대성에 있어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상호보완적 측면에 천착하여 앞으로의 사회 비판을 후자의 영역을 광역화 시키는 작업으로 파악한 하버마스와는 달리 푸코는 이러한 합리성의 범형을 몇 개의 주요 형태로 나누는 작업을 '쓸데없는 짓'으로 파악한다. 외려 푸코는 하버마스의 이러한 보편주의적 접근 방법의 뒷전에 자리잡은 숨은 의도에 강력한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푸코의 계보학은 하버마스의 비판이론과는 달리 서구의 합리성 자체를 의심하고, 어떠한 규범적 토대 위에 비판적 담론이 근거해야 한다는 하버마스 식의 사고 자체가 비판적 담론의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사람들의 경험과 인식 체계에서 이성과 비이성의 구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서양의 근,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과 합리성의 이념을 해체하려 하는데 저자는 푸코의 이러한 작업을 '해체주의'로 명명한다. 이러한 흐름은 라캉, 데리다, 리오타르에 의해 조금더 극단적으로(?) 계승되는데, 푸코를 위시한 해체주의의 합리성에 대한 급진적 시각과 그에 기반한 작업은 하버마스의 작업과 언틋 화해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져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버마스와 해체주의 양자의 차이와 단점 속에서 공통으로 합의할 수 있는 지평을 탐색하여, 이를 훌륭히 상호보완적으로 소화해내어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푸코의 급진적인 계보학적 분석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의 불안한 인식론적 토대를 하버마스의 사상을 통해 좀 더 명확히 정초하는 형식으로 말이다.(푸코도 말년에 조악(?)하게나마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해체주의는 하버마스를 의심했고, 하버마스는 해체주의를 '그저 도피하려는 것일 뿐'이라 치부해버렸지만, 저자는 이러한 서로간의 오해를 불식시켜 사상적 화해를 추동하여 조금 더 실천적이면서도, 조금 더 풍부한 사상적 기반을 지닌 근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던 내내 '노작'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윤평중 교수의 정말이지 '노작'이라고 할만한 본서를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근대'나 '탈근대'에 대한 나의 이해가 너무 일면적이었고, 단순하지 않았나라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보면 결국 서양 철학자들의 논의이기에, 책의 내용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라고 느낄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저자 말마따나 60년대 이후 산업화=근대화=서양적 합리화라는 단순 도식이 우리를 지배, 억압해 온 것이 사실이고 보면, 근대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푸코'와 '하버마스'만을 강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책은 사실상 오늘날 서양 철학의 '모든'문제를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근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놓쳐서는 안될 명저라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ps.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다섯개의 논문이 엮여져 있는데, 특별히 언급할만한 것은 세번째 논문일 것이다.(첫번째 두번째 논문은 결국 본문에 다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푸코보다는 아무래도 하버마스 쪽에 치우친 듯한 결론(사실 푸코에 치우칠 경우 결론을 낸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면도 없지않기에 저자의 결론이 어쩔수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을 내는데,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느라 본문에서는 다소 미진한 구석이 없지 않았던 하버마스 사상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버마스의 담화이론의 근본적인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 유물론적 담화이론과의 결합을 도모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본문과는 달리 다소 어려웠다. 네번째 다섯번째 논문은 하버마스와 푸코의 논문을 번역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하버마스 논문은 살짝 어려웠지만 푸코꺼는 읽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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