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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민주화 - 한국 민주주의의 변형과 헤게모니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본서는 4년전 출간된바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후편격이라 할만한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구성인데, 최장집 교수가 지난 3년간 발표한 글을 묶은 본서는 하나의 글마다 그 뒤편에 편집자인 박상훈 씨가 글에 대한 배경 설명 및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한 첨언, 그리고 편집자 개인의 의견 등등을 첨부하고 있으며, 이는 더욱 깊이있는 독자의 이해를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저자인 최장집 교수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 본서에는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있지는 않다. 비교적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7장의 한미 FTA관련 글이나 8장과 9장의 동아시아 공동체 관련 글 또한 문제제기만 있을 뿐 대안의 제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책은 저자 말마따나 '대안 그 자체보다는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인식의 터전을 보다 넓게 고르고 다져나가는 일'에 기여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저자의 목적에 비추어본다면 저자의 '전략'(?)이 어느정도 유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책을 통해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다. 바로 다수의 헌신과 노력에 의해 성취해낸 민주주의가 절차적인 차원에서 공고화되고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에 실패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우리의 민주정부는 민중의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하며, 왜 오늘의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민중들마저도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철회할 정도의 정치허무주의에 빠져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기반이 침식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저자는 그 이유로 동원, 즉 운동으로 인해 달성된 민주주의가 탈동원화된 일상으로 이어짐에 있어서 그 제도적인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을 든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화 세력 혹은 진보세력이 일상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못한채 안이하게 기존 체제와 대면했으며, 이 속에서 집권한 민주정부는 기존 사회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보다는 별 생각없이 손쉽게 수용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즉, 오늘의 민주정부는 유권자들의 실질적인 갈등을 대변하여 정치적으로 해소할만한 정당'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게을리한채 단순히 지엽적인 정당'구조'에 대한 개혁만을 이야기하며 변죽만 울렸고, 사실상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해하고 민중이 정치부문에 참여할 영역을 극도로 좁혀버리는 신자유주의를 별다른 고민없이 극단적으로 수용했으며,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를 단순히 '정치는 나쁜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기존 기득권 의 '반부패담론' 혹은 '성장담론'등에 편승하여 매번 우회해 넘어갔다는 것이다. 민중의 '실생활의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기존의 헤게모니와 타협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국민들을 항구적인 욕구불만(?)상태로 몰아갔고 이는 정치를 일반 민중의 삶에서 더욱 괴리시켜 애초 극단적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어있던 정치를 더욱 이데올로기화 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는 저자의 주장, 더 나은 민중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쉽게쉽게 '통합담론'에 기대거나, 애초 기득권에 지나치게 유리했던 '기존의 틀'내에서의 생각없는 절충을 반복했던, 때문에 오늘날 '노동없는 민주주의'라는 기형적인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말았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문제에 대해 기존의 쉬운 담론(이를테면 '대연정론'류의 '통합담론'같은 것)에 기대어 오늘의 정치문제를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를 정치문제로서 직시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 아울러 '제도개혁'을 한답시고 이미지에만 쫓겨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어떤'제도개혁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제도 개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매우 '당연한', 하지만 그 어디서도 정리되고 언급되지 않았던 문제의식을 저자는 날카롭고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저자의 빛나는(?) 분석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언어를 얻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했다.
물론 한미FTA관련된 '시안'은 책을 위해 급히 써내려간만큼 내용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고,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글은 다소 논쟁적인 글이었던 만큼(백낙청 선생이 비판한 부분이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라 미루어 추측된다) 보다 더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문제를 오늘의 문제로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그 논의의 시작지점을 정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