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SERI 연구에세이 47
송호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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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의 소위 '평등주의'담론을 일종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생각해왔고, 더군다나 이 책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왔기에 무슨소리를 할런지는 안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에 언제나 그냥 지나쳐왔다. 그럼에도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저자의 명성 때문인데,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저술을 접해본적이 없기에 짧은 책으로나마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망이었다.

우리가 소위 '한국의 평등주의'를 이야기하려면 두가지의 전제 즉, i)과연 한국의 경우 유달리 평등성향이 강한것이 사실인지 ii)평등주의의 의미는 무엇인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책은 이 두가지에 대해 전혀 설명해내지 못했다.

우선 한국의 경우 유달리 평등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에 대해 저자는 그저 '다들 그렇단다'는 언급만하고 넘어간다. 수필이 아닌 이상 비교를 하거나 분석을 하는 등 나름의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사회과학 서적의 기본 요건이 아닐까란 점에서 책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사돈이 땅사면 배아픈 감정'은 인간의 경우라면 누구나 느낄법한 감정이며 이는 외국의 영화나 소설을 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정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한국인의 경우 실제 강하기나 한건지 아니면 표현만 과장된 것인지, 그리고 (만약 강하다면) 그러한 개인적 감정이 사회현상으로 확장되어 표출되는 데에는 어떤 기제가 숨어있는지 정도는 언급을 해주는 것이 성실한 자세이겠건만, 그런 언급은 정말 '전혀'존재하지 않는다.

두번째로-이는 첫번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저자는 '평등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등주의에 대한 개념규정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덧 갑자기 다원성의 반대되는 '일원화'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사적재산권과 자유를 동일시하는 폭력성(?)을 보이다가 자기결정권과 다양성으로서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니 저자도 헷갈리고 독자도 헷갈린다. 지방분권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평등주의적이지만 어떤측면에서보면 서울로 일원화된 사회를 분산시켜 다양화한다는 점에서 평등주의적이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사유재산권의 완전보장 측면에서보면 자유주의적이지만 다양한 것들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일원화 시킨다는 측면에서 평등주의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란 노조는 죄다 귀족노조 운운하는건 평등주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정작 자본가에 대해서는 귀족운운 안하는걸 보면 엄청난 귀족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것을 저자 또한 알긴 아는지 스스로도 계속 헷갈리며, 그에 따라 읽는 나도 계속 헷갈렸다. 따지고보면 저자가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파시즘(혹은 국가주의)에 의한 사상통제 및 일원화, 돈이라는 그 단한가지 기준만으로 줄을 세우는 천민자본주의, 아버지 밑에 일렬로 줄서게 만드는 가부장주의(그리고 권위주의), 전공을 불문하고 점수하나에 맞춰 학력, 아니 심지어 인간의 됨됨이까지 판단하는 학력주의, 오로지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중잣대 뭐 이런 것을 오로지 '평등주의'라는 센세이셔널한 단어 단 하나로 담아내려니 그게 어디 담아내지겠는가? 뿐만아니라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에 사회현상을 끼워맞추려다보니 여러가지 만행아닌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를테면 독재자로부터 받은 억압이-그 정도의 심대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채-민중이나 상류층이나 똑같았다고 이야기를 하며(푸코가 이런 곳에 인용될줄이야~!!), 권리만 주장하지 의무는 외면하는 것은 상류층도 마찬가지(외려 사회적 여파는 그들이 더 강하다)임에도 중산층과 하층민만의 습속인것처럼 이야기할 뿐만아니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자유를 평등의 반대말로 사용하고 있다. 빈민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심각한 불평등으로 학업을 관두게 되는 슬럼가 자녀들이 자유로운가?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이고 평등의 반대말은 불평등이지, 자유와 평등 그 자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때문에 루소는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주의'사상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빡센(?)평등사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위와같은 헐거운(?) 논의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바로 원인과 결과의 혼동이다. 그래, 평등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도 안되었고, 평등주의가 실제 만연한건지 실증적인 검토도 되지 않았다해도 일단 평등주의라는 것이 '있다'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그게 한국인의 마음속의 '습관'으로 치부할 문제인건가? 평등주의가 우리사회 병폐의 어떤 주된 '원인'인걸까? 한국인들은 '원래' 평등주의적인걸까? 한 집단이 '원래'그렇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유태인은 원래 사악해, 아랍인들은 원래 과격해, 전라도사람들은 원래 속을 알수없어, 이런 '원래'의 결과가 인류사에 어떤 비극을 야기했는지 안다면 말이다. 외려 한국의 평등주의-그런 것이 만약 있다면-는 원인이라기보단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경험은 친일파들만을 대거 상류층화시켰으며, 이러한 상류층은 실패한 과거사 정리로 오늘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화과정에서 상류층이 보여준 행태는 설령 저자 말마따나 그들도 똑같이 국가에 의해 탄압받았다 하더라도 실망스럽거나 외려 반동적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힘쓴 민중들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런 고리타분한 역사적 배경을 제쳐두더라도 국가경제가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은 비슷한 경제발전 시기의 서구국가들과는 비교하는게 민망할 정도이며, 소득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보수세력마저 인정할 지경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측면에서 시민들은 일제시대부터 오랜기간 '사상통제', 그리고 그로인한 '자기검열'을 받아왔다.(아울러 그 가장 큰 원인이 된 악법은 지금도 안녕하시다) 자, 이런데도 '평등주의'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인지해서인지 계속적으로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에서야 이야기한다. '평등주의를 드러내기'위해 책을 썼다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평등주의는 저자가 드러내어주어 우리가 처음 알게된 새삼스러운 무언가가 아니다. 이미 독재권력과 재벌들은 당면한 문제해결을 회피할 목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따라 멋대로 끼워맞춘 평등주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왔고, 이로인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합의'는 번번히 우회되고 지연되어왔다. 어쨌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후편을 쓸 계획이 있다는 것.(물론 거기에 '언제 착수할지 모른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_-;;;;) 후편에서는 과연 이 평등주의에 대한 나의 편견-결국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불과할 뿐이라는-을 깨주실 수 있으려나, 하여간 지금까지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것만큼은 사실이다.

ps.그나마 이 책에서 건질만한 것은 우리의 모델, 우리의 합의, 우리사회에 맞는 교양과 도덕이 형성되지 않은 점을 개탄하며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는 저자의 지적 뿐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정작 저자 스스로 불분명한 근거로 이데올로기 공세를 한 꼴이라 사회적 합의를 촉진하기보단 방해만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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