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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세키의 몇개의 강연문과 두개의 에세이 성격의 글을 엮은 본서는, 역자 말마따나 소세키 문학을 조금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될만한 요소가 없지 않기는 하지만, 사실 소세키의 소설을 단 하나도 읽지 않은 나같은(!) 독자에게도 의미있게 읽힐만한 책이다. 아닌게 아니라 몇개의 강연 제목이나 '문학론 서'등의 글은 이것이 문학과 관련된 다소나마 전문적인 색체를 띤 글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서에는 문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이야기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문예와 도덕'부분에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랄까, 한 시대의 윤리적 요청이랄까 그런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잠깐 언급된 것일 뿐, 글이나 강연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윤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중적'이다.
역자의 말이나 강연문 와중에도 얼핏 느낄수 있는 바이지만, 당대 소세키는 강연에 있어서도 거의 '달인'에 가까운 평가를 받은 듯 싶다. 강연문에서 보이는 위트와 농담, 지루한 이야기도 쉽게 풀어내는 그의 능력을 보면, 그와 상관없이 너무나 여러번 드러나는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감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외에 에세이로 실린 '문학론 서'라던지 '점두록'은 그 내용보다 외려 소세키의 삶의 자세가 전면에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 유학을 '떠밀려' 가게 된 배경이라던지, 거기서 적응하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목표를 세워 내부로 침잠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은 그의 말년에 쓰여진 제국주의 비판글인 '점두록'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창백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그 '창백한 지식인'의 이미지는 그 이미지만큼이나 새로운 시대의 삶의 자세랄까 그런것을 주로 언급하는 그의 강연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역자는 서문에서 소세키의 일제의 조선침략 문제에 대한 나이브함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당대의 소세키에게는 관심 밖의 문제였던것 같고, 관심이 있었더라도 그는 '점두록'수준에서의 언급으로 만족했을 것 같다. 아마 그가 강연 주제로서, 콕 찝어 '일제의 조선 침략'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길 요청받았다면야 그는 '점두록'을 비롯한 다른 강연에서 이야기한 바,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구조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였겠지만, 그 또한 실천적이라기보단 아마도 당위를 이야기하는 정도의, 다소 소극적인 수준에서 머물렀을 것 같다는 소리다. 그런 면에서 그의 강연은 무난하기 이를데없는, 이를테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같은 구석이 없지 않다.
그가 권리만큼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로서의 개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주의의 일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고 내발적 개화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기본적인 수준이다. 물론 그가 개화를 적극적/소극적 성격으로 나누어 분석한 것이나, 낭만파와 자연파를 구분하여 시대 윤리의 '평가율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혹은 국가적 윤리가 개인적 윤리보다 낮은 등급으로 일갈하는 것은 독창적인 부분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결론은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어떠한 이론적 정교화를 도모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어떠한 '정도'를 의미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이것이 상대에게 주장해야하는 단계로 나아가면 '우리에게 그 정도(!)의 국가주의는 필요없지 않나'는 정도로 그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소세키의 사상적 깊이랄까 그런것을 느끼려 한 독자라면 다소나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처럼 고리타분할 정도로 기본적인 소세키의 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가치한 것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개인주의의 책임성 부분이라던지, 국가가 중요하다고 해서 하루 웬종일 국가만을 외치고 살아갈수가 없다는 그의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금력만 있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 생각하고, 변화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우선 따라하고 거들먹거릴 생각부터 하며, 모든 생활이 한가지 정의를 위해 수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보이는 오늘, 때문에 거장의 너무나도, 너무나도 기본적인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가슴에 더욱 와닿는 것 아닌가 싶다. 어렵잖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