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움베르토 에코만큼 오늘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쉽고 인상적으로 설명해내는 학자도 드물 것이다. 이는 심지어 우리가 에코와 동시대에 사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인데 본서는 그러한 에코가 쓴 책치고도 조금은 어렵게 읽히는 책이다. 이게 번역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원래 내용이 문제인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국내에 번역된 에코의 저서 중 가독성은 가장 떨어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목은 마지막 주제에 대한 에코의 역시나 재기발랄한 패러디로 붙혀졌지만, 영문판 제목인 'Five Moral Pieces'가 외려 본서의 내용을 좀 더 적확하게 나타내어 주는 듯 싶다. 전쟁, 파시즘, 언론, 종교, 인종문제에 대한 에코의 강연과 기고문을 엮은 본서에서 에코는 각 주제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 말마따나 '하면 좋을 일, 하지 않아야 할 일 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에 관한 글들'을 모은 본서는 미디어의 발달과 시각이미지의 위력, 디지털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새롭게 처한 상황이 전쟁이나 종교 등 전통적인 문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는지가 에코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고, 미디어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코드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더욱 역설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전쟁 상황에 대한 에코의 말마따나 요즘 전쟁에서는 무솔리니가 봤다면 치욕에 몸서리를 쳤을만한 내용이 적을 공격하는데 사용되어지고(적들에 대한 '학살'이 오늘날 누구에게 더 타격을 입히는지 생각해보라) 사태의 본말이 전도된 정치적 공격이 너무나 익숙하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기란 갈수록 난망해질 따름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전통적인 행동강령(?)과는 다른 새로운 윤리적 대안이 모색되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오늘의 시대에 대한 참신한 분석을 해내던 에코마저도 그 대안에 있어서는 굉장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본서 자체가 그러한 추상적인 대안제시를 위해 쓰여진 책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날카로운 에코의 비평에 비교하자면 그 윤리적 대안이랄까, 그런것은 너무도 모호한 채로 남는다는 점에서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거의 '지침'에 가까울 윤리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에코 스스로 어떠한 역설에 빠져드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모호한 대안제시가 나름대로 지혜로운 서술인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허무주의적인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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