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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의 문학과 철학 이야기 ㅣ 살림지식총서 181
박이문 지음 / 살림 / 2005년 5월
평점 :
'인문학'이라는 같은 구획 내에 있기도 하고, '불확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적 담론의 영향으로 인해 더욱 모호해지기는 했지만, 문학과 철학의 애매한 관계는 그 역사가 깊다. 문학은 그 속에 언제나 철학적 의미를 담아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왔으며, 20세기 이후에는 포스트모던적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그 틀거리 자체가 애매모호하여 사실상 철학적 해석의 매스가 가해지지 않는 한 기존의 소설 독법으로는 어떠한 의미를 찾기가 난망한 일군의 장르가 개척됨에 따라 철학과 문학에 대한 모호한 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듯 하다.
본서는 이러한 문학과 철학의 모호한 관계에 대해 언어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섬세한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 문학의 철학적 의미 혹은 철학적 텍스트의 문학적 성격이라는 것이 일단 많은 부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모호함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는데, 형식자체가 철학적으로 해석되는 텍스트(본서에서 말하는 바 '문학철학')와 텍스트의 내용 자체가 철학적으로 해석되는 것(본서에서 말하는 바 '문학속의 철학')이 무차별적으로 혼용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비롯하여 언어의 몇가지 기능을 제시하여 철학과 문학의 구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문학의 언어적 특징을 논하고 있다. 즉, 철학과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학이 철학적 텍스트 혹은 철학적 사유 방식과 다른 특징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러한 특징은 다른 텍스트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책은 문학의 특별한 의의와 기능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즉 분량의 절반 가까이는 문학과 철학 이야기라기 보다는 문학의 언어적 혁명(?)에 대한 특성과 당위를 논하고 있다) 문학의 특성은 결국 우리가 사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언어로 서술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미학적 측면에 가장 큰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문학의 극점은 산문이 아닌 시라고 하며 이러한 시적 표현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어찌되었건 다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리에 절대 도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어적 혁명성은 우리의 인식과 삶을 변화시켜 한단계 도약하도록 추동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혁명보다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가 문학을 대하는 방식은 많은 부분 언어적 혁명성과 미학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울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모색된다.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현상학이나 분석철학자들의 논의에 많은 부분 기반한 듯한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 볼 때, 사실 저자의 주장은 사회에 대한 다소 노골적인 참여와-그에 연동하여-소설을 중심으로 진행된 바 있는 근대문학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대, 즉 근대문학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이제 다른 매체가 도맡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시대에 문학은 심지어 그 존립근거 자체에 위기를 맞은 듯 보이기까지 한다. 문학은 이제 더이상 사회적 의미를 담기보다는 여느 상업적 매체가 그렇듯 쉽게 소비되어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보면 다소 복고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저자의 주장-문학의 언어적 기능에 대한 재조명-은, 나름의 의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참신한 조망과 대안 모색을 기대한 독자라면 본서가 다소 지루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