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
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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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마도 국내 학자 중 가장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박홍규 교수의 근작인 본서는, 저자의 성향(아나키스트?!)에도 불구(!)하고 아렌트와 토크빌을 굉장히 긍정적인 견지에서 다루고 있다. 아무튼 본서의 부제는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이고 주된 목적은-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바-'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를 강조한 아렌트와 토크빌을 그들의 대표적인 두 저서('전체주의의 기원'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으며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저자의 선언(?)이나 부제와는 무관하게, 사실 전체적으로 조금은 모호한 성격의 책이다.

우선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부분은-물론 몇몇 전문가에 대한 실명비판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국내에 아렌트와 토크빌에 대한 연구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도 있고, 아렌트도 그렇고 토크빌도 그렇고 모두 우리나라 학자보다는 외국의 저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된 면이 많기 때문인지 그 비판이 그렇게 두드러져보이지는 않는게 사실이다. 아울러, 사실 자유주의를 위해선 민주주의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토크빌도 그렇고 인종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날카로운 논리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와 이상한 결론을 내리곤 했던 아렌트의 사상을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 그것도 저자 자신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맞추어 일종의 '이념형'으로 읽어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런건지 정작 본서는 외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의 해설서에 가깝게 읽힌다. 즉, 두 책에 대한 인용과 해설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한국 인문학의 추상주의 비판'이라던지 '급진적 참여민주주의'를 기대하고 본서를 집어든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엄청난 분량의 지루하기 이를데없는 '미국의 민주주의'라던지, 난해함에 몸서리칠 것이 분명한 아렌트의 저작을 읽을 엄두는 못내겠는데, 또 토크빌이나 아렌트를 어떻게해서건 접하고 싶었던 나같은 경우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저자가 물론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에 맞춰 토크빌과 아렌트를 '이념형'으로 읽어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각 서적의 목차를 언급하고 원문의 많은 부분을 직접 인용하며, 토크빌과 아렌트의 또다른 저서들과 비교해가며 아닌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평가하는 저자의 서술태도는 본서가 토크빌과 아렌트의 입문서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고 있는 듯 싶다.

그렇다면, 저자가 뜬금없이 토크빌과 아렌트를 함께 읽어 해설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우리가 쓰여진지 거의 200여년이 지난 민주주의의 고전을 오늘 읽어야 할 이유는, 그리고 전문가들조차 난해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전체주의에 관한 학문적 성과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고전아닌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렌트와 토크빌이 공통적으로 천착한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인격적 토대',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토크빌과 아렌트 모두 일생동안 비교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바 없었고,(토크빌은 귀족 출신이었고, 아렌트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는 어찌보면 그들의 관심이 경제적 문제보다는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물론 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와 민주주의를 위한 인격적 덕목이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고, 아렌트나 토크빌이 경제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완전히 내팽게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분에 대한 분석에 있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토크빌의 모럴에 대한 강조와 대중과 폭민,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들 사상의 시대적 한계(특히 토크빌의 경우), 혹은 지나치게 섬세한 개념구분과 복수성에 대한 강조에 반해 진리에 대한 나이브한 인식이 발생시킨 한계(특히 아렌트의 경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매우 날카롭게 읽혀진다.

지난 6개월간 우리는 우리가 이제 비가역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주 기본적이라 생각했던 제도나 덕목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위기를 맞을 수 있는지 명백히 목도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해야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던 민주적 제도나 구조들이 하나, 둘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를 방어해 내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도 오늘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맞부딪히는 질문은 제도나 경제적 토대 문제 이전에 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의 모럴을 갖추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민주주의에 적합한 인간형인지, 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나 경제적 민주주의가 좌절되는 것보다 더 가슴아픈 것은, 민주적 삶의 자세랄까 민주적 생활양식이랄까, 그런것들이 여기저기서 판판히 깨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얼마나 '자유와 자치의 인간'인가? 아니,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인간상은 무엇이며, 경계해야 할 인간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 토크빌과 아렌트는 충분히 요긴한 도구가 될 듯 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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