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기초이론 - 개정증보판, 기초학습문고 4
백산서당 편집부 엮음 / 백산서당 / 1990년 6월
평점 :
절판


신림동 인근의 헌책방에 가면 수도 없이 꽂혀 있는 책, 아직도 이런 책이 나오느냐는 반문을 들을 법한 책, 특정인의 이름이 아닌 그저 '백산서당 편집부'라고 적혀있는 저자명에서 느껴지듯, 본서는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책이다.(라고 쓰기는 한다만, 개정판의 출간연도는 1990년이고, 적어도 90년대 말까지는 여전히 대학 내 각종 단위에서 세미나 교재로 심심찮게 쓰여진 책이다.)

아마도 구 소련이나 동독의 철학 교과서 요약본을 번역한 것이거나, 아니면 구 동구권 어느어느나라의 철학 교과서를 우리 선배들이 직접 학습(?!)하면서 요약한 결과물을 출판한 것이겠거니 싶을만큼 구성면에서 다소 단선적인 면이 있으며(매 장마다 소위 '학습지침'이라는게 떨어지는데 지금보면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실제 그런면이 없는것도 아니긴 허다ㅋ) 그 때 그 시절 전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사상을 그 어떤 책보다도 간단명료하게 접해볼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것이 아닌 변혁하기 위한'철학의 학습 의의와 학습 요령을 설명한 후 유물론, 변증법, 사적 유물론 등등등을 소개하며 이것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의 당위로까지 이어지는지를 정말 '숨가쁘게', '거침없이' 이어가는 본서는, 그 목적을 향한 직선적인 형식으로보나 서술체계의 명료성으로보나 '근대'라는 필드의 극점으로서의 스탈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온몸으로 재현해내는 듯 싶다. 때문에 굉장히 닫힌 형식의 책이고, 세미나 교재용이라고 하기엔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토론할 꺼리는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 듯한 내용의 책이기는 하나, 반영론이니 변증법적/사적 유물론이니 하는, 다른 '현대적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개념이 아주 솔직하고 명료하게 등장한다는 점은 이 책의 악덕이자 미덕인 것으로 사료된다.

한 때 인류의 절반이 고민했던 사상적 결과물을 다이제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상의 현실적인(혹은 잠정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일정정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맑스주의의 단선적인 타락의 결과물로 읽든, 불굴의 발전과정에서의 중간 결과물로 읽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는 데 있어 과거에 우리의 선배들이 했던 생각을 다시금 곱씹어본다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작업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맑스주의에 대한 협애하고 단선적인 해석에 며칠을 두고 시간을 투자하기는 솔직히 다소 머뜩잖을 수 밖에 없는 일, 해서 그런 사상을 단순명료하게 설명해놓은 본서는 아직도 읽혀질만한 가치가 있겠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철학에세이보다 외려 더 재미있게(?) 읽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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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08-08-07 14:57   좋아요 0 | URL
ㅋ. 줄여서 <철기>라고 했던 기억이..재미있게(?)읽으셨군요..부럽삼^^

率路 2008-08-07 14:59   좋아요 0 | URL
의미심장한 물음표라죠?ㅋ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