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학자이자 활동가가 쓴 본서는 세계 곳곳의 기아에 대한 현실을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굉장히 쉽게 쓰여진 책이고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본서를 읽으면서 외려 놀라웠던 것은 책을 읽고 놀라고 있는 내 모습 그 자체였다. 세계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소위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모르고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영화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고,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었다면 적어도 본서를 읽고 있는 동안 '놀랄'정도의 충격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느낀것은 지구촌의 심각한 기아 실태에 대한 '충격'이었고, 이와 함께 그 사실에 새삼스럽게 충격받고 있다는 점 그 자체에 대한 또다른 '충격'이었다.

세계화란 단어, 지구촌이란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진지도 한참이 된 것 같다. 모두들 넓게 보자고, 세계를 향해 뛰자고 이야기한다. 글로벌 인재 양성이니 글로벌한 기업이니 하는 이야기들도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한 '글로벌'한 세계를 살고 있기는 한건가? 우리가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만큼 세상 곳곳의 사람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가?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취합해가며 모두가 전문가가 된 것 같은 시대, 이 땅은 좁다하며 제국주의적 담론과 사해동포주의적 담론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2005년 유엔은 밀레니엄 목표로 '기아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한쪽에선 음식이 남아돌아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다른 한쪽에선 천재지변에 의해, 혹은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곡물생산은 지구 전체 인구의 두배를 먹여살릴만큼 향상되었다지만, 그 와중에도 기아에 노출된 인구의 비율은 단 1%줄었고, 절대수치로는 외려 늘어난 것이 지난 10년간의 현실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환경문제나 정치문제, 잘못된 유통구조 등의 사회구조적 문제 등을 꼽았지만, 이는 결국 궁극적으로-해제와 부록의 글에서 알 수 있듯-신자유주의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 싶다. 우리가 '세계화'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조직으로서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따진 세계, 그 속에서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제3세계 국가들은 미국의 한 기업만도 못하는 가치를 지닌 인간들의 모임으로 나가떨어진다. 세계화 운운하면서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사는 다른 대륙은 제쳐놓고 미국으로 미국으로 모이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돈이 있기에, 그 곳에 '세계'를 뒤덮을만한 자본이 있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모이고 그것이 곧 세계화라고 이야기 한다. 해서, 어쩌면 우리는 '자본'이라는 특수한 체계의 세계화를 일반적인 세계화 담론으로 전화시켜 우리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점에서 과연 우리가 이야기하는 '세계화'가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일지 다시 되물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우리는 분명 지구 어딘가에 수많은 아이들이 기아로 굶어죽고 있다는 사실들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다)을 잊기 위해, 그래서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기위해 그러한 담론들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많은 이들이 이 비참한 기아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무어냐고 이야기하고 결국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를 통해 한몫크게 건저보고자 그 대안을 찾는 노력의 1/10만 투자하더라도 기아에 대한 대안은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이 무어냐, 어쩔수 없는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위선적인 행동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끔찍한 결의일런지도 모르겠다) 환경파괴, 국제정치적 난맥상, 그 속에서 인류는 어느덧 꿈을 잃은 것 같다. 지젝 말마따나 사람들은 이 파국적 상황이 해결되어 나은방향으로 변화되기보단 세상이 결국엔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더 '현실적'이랍시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과연 이성적이고 올바른 판단인가.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국민국가중심의 사회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개념은 가족이나 친지에서 한단계 진화하여 '국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다. 세계화가 운위되는 시대, 이러한 '우리'의 개념은 또 한번의 진화를 요구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쩌면, 기아문제의 대안은 이미 우리가 기아문제를 대면하지 못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랄법한 우리의 그 '양심의 가책'에서 이미 그 가능성이 담지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문제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뒤집어보면 우리들이 어느덧 세계화 속에서 전 인류를 '우리'의 개념 안 에 포함시키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우리가 알고있지만 알고있다는 사실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들을 일깨워주며 우리의 새로운 인간성을 향한 진보를 도모하고 있는 듯 하다. 당신이 만약 '인간'이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바로 그 '인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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