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7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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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를 정의하기 어렵듯(그를 과학철학자로 규정할 것인가, 철학자로 규정할 것인가? 그도 아님 평론가로? 아니면 시인으로? 모두 다 답이 될 수 있으면서도 무엇하나 정답이라 콕찝어 말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것 또한 사실이다.) 본서 또한 규정짓기에 굉장히 당혹스럽다. 바슐라르의 저작을 과학 철학에 관한 것과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것으로 나눈다면 후자에 속할 법하다는 역자의 규정은 그에 관한 가장 최소한의 정도를 이야기한 것 같은데 사실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글로 읽기에도 본서는 그 짧은 내용안에 너무나도 많은 색깔을 담고 있다.

'촛불'이라는 화두를 통해 몽상을 진행하면서, 장광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찌보면 두서없이 그야말로 '썰을 풀고'있는 본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100여페이지 남짓한 긴 서사시로, 문학 평론으로, 시(詩)에 대한 작법으로, 삶의 태도를 이야기 한 수필집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처럼 짧은 내용에 특별히 메인 플롯(?)이랄것도 없어보이는 본서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움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뒤쳐지기 쉽상이라는 세상에서 저자는 줄곳 한가하게 몽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시각적 이미지의 조야함을 비웃는다. 모두들 해명과 비교분석을 통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저자는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이야기하질 않나, 복잡함이 고상함이나 고차원으로 포장되는 세상에서 대상이 단순할수록 몽상이 커진다며 단순함을 예찬하기까지한다. 어디 그뿐이랴. 몽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고독도 되었다가 꿈이 되었다가 생명이 되기도 하는 내용은, 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해서 나머지 잔챙이들은 다 쳐내는 나의 지극히 목적합리적(?)인 독서법과도 영 맞지 않았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책을 악으로깡으로(?) 한문장 한문장 읽다보니 필연적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걸리게 되었고 그 와중에서 무언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뭐 시적 감수성이네 뭐네 하는 것은 일단 개인적으로 원채 훈련이 안 되어있으니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방법과 우리의 존재론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리에 맞는 것, 그러한 사리에 맞도록 증명되는 것만이 가치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행동한다. 여기에는 분명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러한 가치들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존재론적 합의가 기저에 깔려 있을게다. 하지만 인간이란 과연 전적으로 이성적이기만 한(혹은 이성적이어야만 하는) 존재일까? 몽상이나 감성같은 요소는 그저 무시하거나 나아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될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까? 자신 외의 사물을 대하는 방법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이 우선 이성에 의지한 언어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은유가 아닌 부연설명과 비교는, 그 자체의 이성적 확실성과 직설성을 통해 순간적으로 우리를 이끄는 '힘'은 있지만, 세상 모든 사물들은 그러한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이 존재한다. 이 때 우리는 보통 표피적인-대표적으로 시각적인-이마주를 통해 그 공백을 채우려하는데 여기서도 문제는 존재한다. 그러한 표피적인 이마주로 과연 사물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날 우리들의 타자에 대한 이해의 대부분은 그야말로 '겉핥기'로 끝날 따름이다.

우리의 인식과 이해는 전적으로 우리의 존재론적 기반에 의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몽상하는 존재이고 상상하는 존재이다. 인간 이성의 발전은 그러한 몽상과 상상의 현실화에 기인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어찌보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이성이 아닌 몽상과 상상일런지도 모른다. 존재의 유한성이라는 필연 앞에서 고독을 즐길줄 모르고, 때를 기다릴줄도 모르는 인간은 사물을 빨리 이해하고자 하지만, 이는 그저 표피적인 몰이해를 부를 뿐이다. 우리의 몽상과 상상마저 그저 급하게 외면적 언어로 해명하고 비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세상과 사물을 냉랭하고 죽은 것으로 만들며, 우리의 상상 그 자체를 왜곡하고 질식시킨다. 인간 이성의 기반이 결국 몽상과 상상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이러한 태도는 나아가 역설적으로 인간 이성 그 자체마저 말살시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바슐라르가 책 속에서 촛불에 대한 몽상을 두서없이 진행한 것은 애초부터 의도된 전략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사실 촛불에 대한 몽상을 읽기 쉽게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과 지극히 모순되는 바이기도 하다) 해서, 본서는 결코 긴 분량은 아니지만 한문장 한문장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그리 짧은 시간 내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뿐만아니라 저자의 굉장히 압축적(혹은 시(詩)적)인 표현은 그러한 읽기의 난해함을 배가한다. 하지만 갈수록 합리화(?!)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불행해하며 갈길을 모른채 헤매는지, 합리적인 분석과 이성적인 해명 이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통해 그 해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촛불에 대한 자신만의 몽상을 진행해가면서 어느 한가한 저녁, 부담없이 편안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그리 쉽고 편안하게 읽혀지는 내용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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