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베버는 끊이지 않고 다시 호출하게 되는 이름인 것 같다. 본서 또한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베버의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분석이 기본 전제로 깔려있는데, 이는 외려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나 정치를 논한다는 명목으로 당대의 사회가 처한 일종의 '근대의 역설'을-근대성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완벽하진 못하더라도-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제하의 본서는, 분량만 따지자면 이보다 거의 두배에 가까운 '직업으로서의 정치' 또한 수록하고 있다. 각각 1917년과 1919년에 행해졌다는 이 두개의 강연록은 그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편집한 것이 적절해 보이는데,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일종의 주어로(혹은 문제제기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서술어로(혹은 일종의 답변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두개의 글은 형식마저 비슷한데, 초반부에서는 각각의 직업이 존재하게 되는 제도적인 조건 등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논의에 이어 후반부에 그 직업들이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덕목을 논하고 있다. 아울러 베버는 시사성이나 독자의 관심을 일부러 무시한 채 주제에 대한 굉장히 지루한 분석을 신중하게 이어가는데(덕분에 박진감이나 재미는 무척 떨어진다.^^;;;) 이는 역설적으로 저자가 근대의 특성에 대해 더욱 보편적이고 적확하게 분석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된 듯 싶다.

베버의 저술을 읽다보면 무엇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태를 굉장히 '깨끗하게(?)'이해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어휘에 대한 어떠한 이념적 뉘앙스라던가 사안에 대한 호오적 구분을 무위로 돌리는데, 이는 사실 굉장히 '정치적'이라 할법한 본서에서 거의 극(?)에 달하는 듯 싶다. 때문에 본서를 읽는 독자라면 우선 자신이 갖고 있는 기호적 편견이나 선악적 판단을 다소 '판단중지'할 필요가 있겠다. 베버는 존재와 당위를 명확히 가르고, 할 수 없는것과 할 수밖에 없는것, 그리고 해야만 하는것들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 후 학자나 정치가라는 직업에 대해 논한다. 이 속에서 베버가 남긴 유명한 이야기들-이를테면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한 인간공동체라는 것 등등-이 속출하고 불완전 하더라도 최대한 덜 불완전한 근대성을 확립하기 위한 베버의 대안이 나온다. 학자나 정치가의 덕목(나아가 우회적으로 제시되는 바이지만 관료의 덕목)은 이러한 사회조직적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연유로 사실 학자나 정치가를 꿈꾸는 분들이 본서를 읽으면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본서도 학자나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나 경계할 바를 아주 날카롭고 명료하게 논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책 전체 내용을 놓고 볼때 굉장히 부분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미덕과 악덕은 대부분 '합리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서양의 근대문명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한 악덕을 새로운 근대성의 탐색으로 극복하건, 탈근대적 대안을 통해 극복하건 확실한건, 이 근대성이라는 것마저도 그렇게 확고한 기반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근대문명의 사상적 기원(?)이랄법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서양철학사를 대충 훑어봐도 어렵잖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는 근대성의 극복을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가 근대성을 통해 쟁취해낸 수많은 '미덕'이란 것이-그것이 전근대로의 복고 때문이건 근대 자체가 내재한 야만성 때문이건-대내외적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동시에 설명해준다.

베버는 신념윤리의 과잉과 (전근대에 대한 향수에서 기원한)경험으로 도피하려는 당대의 시류 속에 근대성의 위기를 느꼈다지만, 이는 정치와 윤리의 관계조차 일관되게 확립하지 못한채 오락가락하며 극단적인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비추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탈주술화된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정신노동이라 할 수 있는 학문과 정치가 학자다운 학자, 정치인 다운 정치인에게 맡겨지지 못한 현실, 아니 그 이전에 '학자다움', '정치인다움'조차 그 누구도 명확히 해명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래서 베버의 이름을 '또다시' 호출하고 있는 듯 싶다. 쉽지 않은 책이고, 무엇보다 목차가 나뉘어 있지 않아서 참 '숨가쁜' 책이지만, 한 번쯤 읽어볼만한 고전이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적어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보다는 베버의 목적의식을 좀 더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으면서도 부가적으로 얻어 낼 수 있는 지식 또한 상당한 듯 싶다.

ps. 본서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말미에 권위있는 학자의 관련 논문을 이어붙혀 고전의 현대적 이해를 돕고 있는데, 이 책 말미에 있는 슐루흐터의 논문 '가치자유와 책임윤리'는 본문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창조적 해석까지 도모하고 있다. 솔직히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베버가 근대성을 다소 일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화용론적 해석의 단초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본문을 논외로 고민해봐도 괜찮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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