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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평점 :
개인적으로 책보다는 TV나 영화가 투자대비 효용상(?!)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좀처럼 베르베르의 소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중학생 때 막 센세이션이 일어서 엉겁결에 휩쓸려 읽었던 '개미'의 인상부터 그랬지만, 뭐랄까, 화려한 외양(?)과 달리 메시지는 텅비어 보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베르베르는 메시지보다는 '재미'나 '정보'를 추구하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고, 이는 곧 '소설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소설로 표현하려는 작가'라는 인상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개미'이후 숱한 베스트셀러를 냈음에도 굳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게 된건, 공교롭게도 그 '재미'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간간히 움직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재미'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짧은 단편의 모음인 이 소설은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저자도 서문에서 제대로 된(?!) 소설을 쓰던 와중에 재미삼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쓴 소설들의 모음집이라 하고 있지 않은가.(놀라운 것은, 그렇다면 이 작가는 여가 수단마저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될 터인데, 사실이라면 그는 말그대로 '작가가 천직'인 사람이리라) 헌데 이 소설, 쉽게 읽히는 것 만큼 간단치 않더라는 거다.
물론 저자가 각각의 단편을 어떠한 일관성 있는 주관이나 목적을 갖고 쓴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그야말로 '순수하게'(물론 '순수'하다는게 글을 씀에 있어 어떤 방향으로건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별다른 의도없이) 상상력만 남겨 극한으로 몰고 간듯하다. 때문에 소설의 메시지는 각각의 꼭지마다 천차만별이다. 밝기도, 어둡기도, 보수적이기도, 진보적이기도 한 각각의 소설은 그럼에도 공교롭게도 하나의 분위기(?)로 엮이는데 그것은 각각의 소설 모두가 독자로 하여금 굉장히 깊이있는 고민을 추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뚜렷한 색체를 가진 작가라기보다는, 그냥 글을 잘 쓰는 소설가에 가깝고, 에코마냥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상상력을 극한으로 몰고 간 그의 수많은 단편 모음들은 그가 의도하건 하지않았건 말로 할 수없는 우리들의 수많은 고민들과 현대 문명의 난맥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더군다나 그러한 질문들이 결코 난해하다거나 부담스러운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극한으로 몰고간 상상력 속에서 얻게되는 묘한 쾌감 속에 철학적인 고민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그만큼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부담없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인 듯 싶다. 무엇보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