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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개인적으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후-적어도 장편에 있어서 만큼은-박민규에게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박민규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는, 뭐랄까, 예의 그 재기발랄하고 부담없는 문체와 '소수자'라고 칭하기에도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해서 역설적으로 대변될 누군가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 '찌질한'(?) 인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내용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그런 면에서 박민규의 소설은 얼핏 주성치의 영화를 닮은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번 소설의 주인공들은 '왕따'다. 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왕따라고해서 사회적 견지에서 별 하자 없는 친구들은 아니고, 나름대로 어떠한 하자(?)를 다들 안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본 소설의 인간군상들은 더 처절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모습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러하기에 별 이유없이 맨날 맞고 다니는 등장인물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처음 분노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익숙해진다. 권태로운 우리의 일상에 익숙해지듯이.
그 속에서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묻는다. 다수에 묻어가며 어느덧 당연하다고 여겨가는 모든 것들의 야만성. 그러려니 하고 묻어묻어가는 속에 하나 둘 적응해가는 우리들의 슬픈군상 속에서 소설은 나아가 우리의 존재 의미마저 묻는다. 세상이 언인스톨된들, 뭐 달라질 꺼 하나 있나? 다수의 폭력에 대한 공범자로 비겁하게 숨어있는 우리들의 분개할것도 없을 정도로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저자는 정말이지 '찌질한'주인공들을 보듬는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다보면, 저자가 정말 고시원에 입주한 경험이 있는건 아닌지(갑을고시원 체류기), 정말 삼미의 광적인 팬으로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한건 아닌지(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말 지하철 푸쉬맨 알바를 해보지 않았는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에 있어 굉장히 실감이 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다양한 하위문화를 소설속에 녹여내는 저자 특유의 탁월한 솜씨 때문인 듯 싶은데, 이러한 저자의 재능은 본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탁구라는 소재로 수많은 하위문화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소재들을 천박하지 않게 녹여 괜찮은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박민규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쉬운건 역시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건 아닌가 싶은 느낌이 종종 든다는 것이다. 박민규의 애독자(?)라면 본 소설에 대해 심심찮게 '이제 좀 지겹다'라는 평을 하는걸 보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것 같은데 특유의 문체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건지, 비슷한 패턴의 내용이 반복되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본 소설은 박민규의 향후 작품활동에 크나큰 숙제를 안겨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야 뭐 이렇게 매너리즘 어쩌고 해도 신간나오면 결국 심심할 때 또 사서 읽게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