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는 진보
지성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조국교수의 신간이 나온지도 몇달이 지났고, 그 사이에 사회적으로 너무도 많은 일들이 터졌기에(물론 일들이 '터졌을' 뿐, 무언가 수습되거나 해결되어 실질적인 변화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그 수습이나 변화라는게 외려 굉장히 요원해보인다.) 어느덧 철지난 책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학자의 신간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적잖게 신나는 일이다.

'성찰하는 진보'라는 제목의 본 책에는 사실 별반 특별하다고 할만한 내용은 없다. 때로는 정치, 경제, 사회, 통일, 여성부문의 기본 논점에 대한 진보세력의 표준적인 대안(?)으로까지 읽힐 지경인지라, 참신한 무언가를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나같은 경우가 그랬다.^^;;;) 외려, 특별히 급진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실 추수적이지도 않은, 이처럼 '좋은 말씀'들을 읽으면서 내 입장을 재확인해보고는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것은 '성찰'이라는 제목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과연 지금 진보에게 부족한 것이 성찰인가?

삼성재벌이나 통일문제 관련한 이야기라거나 소수자 인권문제 등등, 책에서 언급된 부문에 대한 대안과 입장들이 최근들어 급부상한 논의라거나 진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애초에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진보는 틈나는 대로 무엇이 옳은지 논쟁해왔고, 틈나는 대로 반성과 성찰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성찰하는' 진보라는 제목의 책이 다소 진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세간에 화제가 될 정도로 '진보의 교착상태(?!)'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단순히 진보의 성찰부족으로 야기된 결과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서 물대포 맞아가며 촛불을 든지도 어느덧 두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치사회적인 에너지를 결집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세력은 '아직까지도' 전무해 보인다. 누구나 다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누구나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마저도 어느누구하나 '실제로는' 해결해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메커니즘은 어디에 연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성찰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교착상태를 해결해 나가기위해 진보에게 '정말로'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성찰이라는 제하의 내용속에서 느껴지는 진부함, 그 속에서 어쩌면 저자는 그간 진보에게 부족했던 것이 용기였음을,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았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태함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군다나 저자가 학문활동 중에도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행동하는 지성'이었기에 이런 생각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간만에, 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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