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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저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는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 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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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7-2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즘 좋은 시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시집은 아직 읽어본적이 없다 (부끄럽게도)
이참에 시집도 찬찬히 읽어볼까?

두심이 2004-08-0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인지라..알고는 싶은데 접근이 쉽지않더라구요.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 제마음속에 불이 하나 떨어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