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 호그와트 학교
전설의 고향을 보면 외딴 곳에서 발견한 집에는 사람이 아닌 구미호가 살고 있었다. 숲 속 길을 헤치고 지나가서 만나는 웅장한 고성에는 드라큐라 백작이 살고 있기도 했다. 아무리 깊은 숲 속에도 집은 있고, 그런 집들에는 조금은 수상한 존재가 있기도 했다. 1, 2편에서는 잘 몰라봤었는데 호그와트 학교는 호젓한 곳에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그네가 호그와트 학교 문을 두드렸다면 망토를 두르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아이들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도를 닦기 위해 지리산에 가는 것처럼 마법을 공부하기 위한 환경으로는 자연이 가까이 있는 환경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3편에 나온 호그와트 학교는 소림사보다도 더 고즈넉하고 활기차며, 드라큐라 백작의 고성보다 우울하면서도 아름답다.

2. 해리
사춘기 해리는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사명을 띤 전사나 다름 없다. 프로도에게는 반지를 가지고 떠나야 할 길이 있듯이 해리에게는 볼드모트와의 대결이 있을 거라는 운명, 예감이 있다. 오히려 해리는 프로도보다 보이지 않는 적은 더 많고, 그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프로도는 죽거나 반지를  버리거나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해리는 이거다, 저거다를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계속 성장을 해 나가야 한다. 훌륭한 마법사로, 정직하고 용감한 마법사로의 성장을 해야만 하는 숙명이 있다.

3. 아이들
더 아름다워지고 똑똑해진 헤르미온느와 조금은 소심해진 론은 이제 옛날의 어린애들은 아니다. 해리만 성장한 건 아니니까. 전보다 더 강화된 삼총사 구도는 영화에 안정감을 준다. 헤르미온느와 론이 우연히 손을 잡는 장면에 약간의 포인트를 준 듯한 장면이 재미있었다. 헤어스타일이 변한 말포이는 더 빌빌거리고 힘이 없어 보이고, 네빌은 여전히 순둥이이다.

4. 어른들
루핀 교수가 생각보다 멋지지 않았고, 기대했던 시리우스 블랙의 게리 올드만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트릴로니 교수 역의 엠마 톰슨은 적절한 분장으로 재미있게 변신했다. 덤불도어 역의 배우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그 역할에 정말 딱인 배우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수염이 많은 역할이니까 비슷한 배우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자한 미소를 가진 배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웃는 모습은 미세하게 조금씩 다르니까.

5. 마법
초반에 나온 마지 아줌마가 부풀려지는 장면이랑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변하는 보가트가 등장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보가트를 보면서 과연 보가트가 내 앞에 서면 무엇으로 변신할지 궁금했다. 시간을 돌리는 부분은 책보다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책이 다소 길게 장면을 늘였다면 여기서는 그래도 압축이 잘 되어서 좋았다. 디멘터의 이미지는 책과 비슷하면서도 강렬함이 있다. 디멘터의 키스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 벅빅도 천진하고 힘차 보여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지만 조금은 정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좋았다. 화면도 눈이 많이 온 배경이라든가 벅빅을 타고 신나게 날아가는 해리의 모습이 환해서 좋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위대한 유산>을 만든 알폰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데 영화를 깔끔하게 만들어 내놓았다. 해리포터 3편이 밥상이라면 한정식이라기 보다는 깔끔한 일품 요리이다. 이야기 할 것만 골라서 잘 엮어 놓았고, 건너뛰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걸어간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뭔가 박진감이 부족한 것도 같고, 뭔가 매혹적인 피 한방울, 달콤한 설탕 한 스푼이 부족한 듯도 하다. 극장 안에는 아이들이 가득했지만 영화는 아이들의 머릿속을 뛰어넘는 성숙함이 있다. 그건 해리가 가진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 서부 영화의 영웅처럼 성장해가는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법을 쓸 줄 안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 성장해나가는 건 그 기대치를 충족하든 충족하지 않든 힘든 일일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의 신나는 표정처럼 그가 더 활기차기를 바라지만 그는 영웅이라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알 수 없다. 사건을 해결한 서부 영화의 총잡이처럼 그저 아무일도 없었던 듯 사라지거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액션 영화의 영웅처럼 혼자 남겨질지 알 수 없다. 벅빅이나 신형 빗자루처럼 해리를 신나게 할 만한 물건, 헤르미온느와 론처럼 해리를 든든하게 할 친구들이 가득한 세상이 해리에게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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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7-2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목요일 개봉하던 날 영화를 봤는데 1,2편과는 좀 다른 3편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할 지 막막했었다. 호밀밭님께서 깔끔하고 멋지게 잘 쓰셨기에 여기에 퍼 온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내 자신은 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귀여운 외모와 화려한 역할의 해리가 아니라 그런 사람 곁에서 도움을 주는 절친한 친구인 론. 평범한 외모와 가끔씩 나오는 정겨운 사투리 억양.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자신이 주연인 경우가 어디 그렇게 흔한가. 이번엔 론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아쉬웠는데 헤리미온느와 아웅다웅 많이 다투지만 1편부터 나오는 복선을 보면 둘이 나중에 좋은 친구(연인?)가 될 것 같다. 론을 응원해야지!

두심이 2004-07-2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토요일 조카들과 아침부터 몰려가서 봤지요. 마침 휴일과 겹쳐서인지 마치 초등학생 단체관람장인것 같더군요. 별로 안웃긴 장면에서도 어찌나 아이들이 좋아라 하고 웃어대던지 저또한 동심으로 돌아가 보게 되었습니다. 호밀밭님.. 정말 잘쓰시네요.
(갠적으로 저도 론이 더 좋습니다. ㅎㅎ..소곤소곤)

머털이 2004-07-2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참 좋은 고모(이모)이시네요. 휴일 아침에 조카들과 영화도 같이 보시고..
제 어린 시절에 ET가 있었다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해리포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쵸? 볼수록 론에게도 매력이 많은 것 같아요 ㅎㅎ)

두심이 2004-07-2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둘다 틀렸어요. 그날 보러 갔던 조카들은 저를 외숙모라 부른답니다. 근데, 그아이들을 조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요? 저는 도무지 그런 촌수를 몰라서..
참..저는 ET가 지금도 최고라고 생각해요. (맞아요.론의 얼굴처럼 재밌는 얼굴이 훠~얼씬 해리보다 오래 사람들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