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의 매듭짓기 믿음의 글들 223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세파에 꺾이지 않는 진리의 메신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4가지의 매듭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첫쨰로, 사생의 매듭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될 떄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깨달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삶의 소중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발견되어진다.

둘째로, 수준의 매듭이다. 수준의 매듭은 자신의 신분에 어떠한가에 밑자리를 두고 있는데, 자신의 신분을 깨달을 때 그 신분이 수준을 견인하게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수준의 매듭에서 가장 가장되어지고 있는 것은 X의 매듭인데, X의 매듭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으로 귀결되어진다.

셋째로, 경영의 매듭이다. 경영의 매듭은 기독 기업인들을 향한 목소리이지만, 경영의 매듭 또한  X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경영의 매듭이 비롯됨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매듭이다. 인생의 매듭으로써 사도 행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바나바의 매듭과 다소의 매듭, 구브로의 매듭, 마가의 매듭과 마리아의 매듭으로 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

본서을 읽는 동안 크리스천으로써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다 준다. 입술로만 믿는 맹목적인 크리스천은 아닌가? 입술과 삶으로 교차되는 정말 크리스천인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에서 이 질문이 나의 뇌리속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지나갔었다. 크리스천의 진정한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께 동여 맬 때 비로소 시작되는데, 진리를 알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것이 내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앞으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화진 선교사 열전
전택부 지음 / 홍성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화진 선교사 열전은 이 나라가 개화기를 맞이하기 전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선교사님들의 믿음의 흔적들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그 사랑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고결한 순교의 피를 흘리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미개국이라고 불리는 "조선"을 왜 그리도 사랑해서 죽음으로까지 그곳에 남겨지기를 원했는가? 이 질문은 본서를 읽는 나의 마음을 항시 두드리는 질문이였다. 그것을 본서를 읽어감으로 조금씩 그 혜안이 열려지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양화진에 묻혀진 순교자들의 선혈 중에서 14명의 열사들을 모아서 기록한 책이 양화진 선교사 열전이다. 본서에서도 밝힌듯이 열전은 여러 사람의 개별적인 영웅적인 전기를 차례로 벌여 적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켜 죽은 열사의 행적을 적은 열전으로 이 책의 목적을 대변해 주고 있다.  

가난과 일제의 식민지 가운데서도 조선의 사람들을 사랑해서 자신의 생명조차도 아끼지 않은 선교사들의 발자취..

이 나라를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불귀한 사람들의 믿음의 흔적들이 있었기에....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레바퀴 밑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더불어 잃어버린 인간의 내면 세계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의 이 두작품 <<싯다르타>>와 <<수레바퀴 밑에서>>는 급변하는 이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자아상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는 주인공인 한스가 학교와 사회라는 수레바퀴 밑에서 질질 끌려 들어가 결국 죽고만다는 비극적인 내용의 이 소설은 헤세 자신이 체험한 자기 내면의 변화를 소상하게 묘사한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다.

주인공 한스가 그러했듯이 헤세도 열네 살 되던 해 슈바벤의 주 시험에 합격해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을 하지만 엄격하고 판에 박힌 듯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입학한 지 채 일년도 되기도 전에 탈주하고 만다. 그후 다시 김나지움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일 년만에 퇴교, 서점의 점원 노릇을 하다가 사흘도 못 되어 그만두고 기계 수습공 노릇을 얼마간 하다가 서점 점원 생활로 돌아가는 등 거듭된 정신적인 방황을 겪으며 성장했다. 바로 헤세의 이러한 소년 시절의 번민이 이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천분이 있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부친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이기적인 명예욕 때문에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을 강요당한다. 마침내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그릇된 교육의 수레바퀴에 짓눌러 고통스럽기만 한 학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되돌아 오고만다.

그로 인해 자살을 꿈꾸면서도 결국 다시 일어나 기계공장의 견습공이 된다.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 온 한스가 이제 시계탑의 톱니바퀴를 하루 종일 닦게 된 것이다.

죽도록 비참한 심정으로 톱니바퀴를 닦던 한스는 며칠 후 처음으로 맞이한 모처럼의 휴일에 익사하고 만다. 여기서 톱니바퀴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수레바퀴 밑에서>>의 표제는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잘못하면, 수레바퀴 밑에 깔릴 수가 있으니까."라는 교활한 신학교의 교장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채 삶의 채바퀴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급변하는 사회속에 적응하기 위해 지친  현대인들이 상실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정립하여 가치있는 삶과 따뜻한 인간관계의 회복으로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김훈을 <<남한산성>>이라는 소설로 처음 대하게 되었다. 그를 뛰어난 문장가로 발 돋움 시켰던 <<칼의 노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장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남한산성>>이라 하겠다. 처음 서점에서 책을 보는 순간, 책 제목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하면 병자호란의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할 수 밖에 없는 지난 날의 조국의 아픔이 다시 살아나서일까? 마침, 김훈의 <<남한산성>>이 그때의 역사적인 상황을 역사소설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남한산성>>을 구구절을 읽어가는 중에 그때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이 피부로 와 닿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밖에는 청나라라는 거대한 대국과의 싸움, 안에는 분열된 정분과의 싸움에 고뇌하는 인조의 갈등이 마침 그곳에서 느끼듯이 뛰어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음에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책은 병자호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있을 무렵 우리나라는 FTA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시기였다. 마침, 거대한 청나라의 무력 앞에 힘 한번 써 보지 못한 조국의 나약함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약속국의 무기력함인가?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시대의 상황과 그때 역사적인 상황이 함께 오버랩되면서 나에게 많은 고민과 아픔을 느꼈다. 또한 잔잔한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김훈을 처음 만났는데, 그 후로 <<칼의 노래1, 2>>, <<현의 노래>>, <<자전거 여행1, 2>>을 거침없이 읽게 되었다.

 

다음은 남한산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출처 : 채널예스>만나고 싶어요!>>에서 자료를 스크랩한 것이다. 혹시나 남한 산성을 읽는 독자들에게 참조가 되었으면 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김훈의 신작 『남한산성』은 370년 전 47일간의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참담했던 날을 재현한다. 작가는 그 치욕적인 역사를 냉정하리만치 담담하게 그린다. 『칼의 노래』가 이긴 전쟁인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번 작품은 패배한 전쟁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칼의 노래』가 인간 이순신의 개인적인 면모를 중심으로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은 죽음으로써 삶을 얻고자 한 척화파 김상헌과 치욕적인 삶일망정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금 인조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해지는 가슴은 그 모든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입장이 이해된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29일 김훈 작가와 함께 70여명의 독자가 그 역사 속 현장을 다녀왔다.



아침 9시, 답사여행 참가자들이 한국관광공사 앞에 속속 도착해 출석체크를 하고 있다.



“자! 빨리 타세요.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빨리 출발하자고요.”




 

치욕과 굴종의 삼전도비.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은 칸(청 태종)이 조선을 침공한 사태의 책임이 조선에 있음을 천명하고, 칸이 조선을 멸망시키지 않고 군사를 돌이킨 은혜에 감사하고, 조선은 청을 천자의 나라로 섬기며 그 속국이 되어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약을 담고 있다.

최근에 누군가가 비석에 페인트칠을 해놓아 이것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삼전도비 옆에 서 있는 부조. 소설에서는 이 현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 왕은 황색 일산 앞에 꿇어앉았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세자가 따랐다. 개들이 황색 일산 안으로 들어왔다. 칸이 술상 위로 고기를 던졌다. 뛰어오른 개가 고기를 물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 아, 잠깐 멈추라.

조선 왕이 절을 멈추었다. 칸이 휘장을 들추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칸은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 바람이 불어서 오줌 줄기가 길게 날렸다. 칸이 오줌을 털고 바지춤을 여미었다. 칸은 다시 일산 안으로 들어와 상 앞에 앉았다. 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남은 절을 계속했다.” (356쪽)



남문을 오르는 길에 있는 남한산성 안내도.



소설 속 현장을 타박타박 오르는 독자들.




 

남문. 정조 3년 성곽을 개축하면서 현재의 지화문(至和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조 임금은 적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성남 쪽으로 돌아서 산성의 정문인 이 남문을 통해 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것은 임금의 위엄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을 마감할 때, 청 황제는 임금이 남문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 서문은 너무 낮아서 말을 타고는 나갈 수도 없지만, 임금과 소현세자는 말에서 내려 문을 통과한 다음,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서 평지까지 내려갔고,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좁은 서문 앞에 선 작가와 독자들. 작가는 치욕의 현장을 찾으면서 삶의 경건함을 느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임금은 감당할 것을 다 감당하면서 삶의 길을 열어나간 것입니다. 아무리 치욕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의 삶은 영원한 것이죠. 저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여기 와서 성벽의 돌덩이를 만져 봅니다. 그러면 삶의 경건성이 느껴지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곤 합니다.”




 

소설 속 수어사 이시백이 동-서-남-북-중 5개 군영을 총괄해서 지휘했던 곳. 삼전도 들판과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지만, 이 날은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로 생긴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이 건물은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 누각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1751) 이층 누각으로 다시 쌓고 현재의 '수어장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힘이 없는 듯한, 약간 느린 말투로 소설 속 상황을 들려주는 작가.



수어장대 앞에 세워져 있는 사적 제57호 남한산성 비석.




 

성벽을 뒤로 한 이정표. 남한산성 안의 교통 중심지는 산성로터리다. 소설에서는 ‘삼거리’와 그 주변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삼거리에 큰 종이 매달려 있어서 관아에서 종을 쳐서 성 안 백성에게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종로’는 그 삼거리로 가는 길이다.




 

성벽을 이렇게 구불구불하게 축성한 것은 적이 성벽에 바짝 붙어있을 때 건너편으로 총이나 활을 쏴 공격하기 쉽도록 한 목적에서다.

다음은 소설 속 용골대가 통역 정명수와 산성을 두고 나눈 대화다.

- 단단해 보인다. 산골나라에는 저런 성이 맞겠어.
- 조선은 성 안이 허술합니다.
- 허나 성벽은 날카롭구나. 깨뜨리기가 쉽지는 않겠어.




 

총안. 성벽 위에는 성첩살받이터를 쌓았다. 성첩은 세 개의 총안을 묶어서 한 개의 타를 이룬다. 타와 타 사이에는 성 밖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총안을 통해 다가온 적을 쏠 수 있도록 바닥면의 각도를 성 밖의 지형에 따라 다르게 했다.




 

서문에서 내려오다 보이는 마을. 소설에서는 서날쇠의 대장간을 비롯해 초가집으로 된 민가가 있던 곳이리라. 작가는 소설 속 인물 김류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전달한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점심식사 후 유일한 어린이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저자.



한 독자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는 저자.




행궁은 적의 침공을 받아 도성이 위태로울 때 임금의 피난처이자 항쟁의 거점.



행궁 안 텅 빈 편전. 소설 속 격론이 벌어졌을 상황을 상상하면 쓸쓸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깜짝’ 상황극이 이어졌다. 소설 속 인물들이 현실에 나타난 20여 분의 공연은 병자호란 그때 역사의 현장으로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실감나는 것이었다. 극중 김상헌은 ‘임금이 없으면 백성도 없다’며,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대척점에 선 최명길은 ‘백성이 없으면 임금도 없다’고 반박하며,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 못함을 강변한다. 그들은 같은 목적을 향해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지식인이었다. 작가는 다른 책에서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라고 언급한다.



격정적인 공연에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일부 참석자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청군의 칸을 대신한 통역 정명수 앞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곧 세 번 절하고 한 번씩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 임금.




 

공연이 끝나고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 한 독자의 “주전파와 주화파의 공박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무하게 끝난다”라며 결말을 아쉬워하는 데 대해 작가는 “사실 마지막 문장은 ‘남한산성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썼다가 지웠다”라고 답했다.

통렬한 풍자지만, 독자에게는 크나큰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염려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설 속 마지막 문장에서의 결말인 대장장이 서날쇠의 웃음으로도 작가의 뜻은 충분하게 전달된 듯하다.




 

무심한 듯한 표정의 작가는 따뜻함보다는 엄격함에 가까워 보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부르는 원고를 대필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은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없는데 말을 걸어야 하는 자의 고통’이라며 ‘나에게 글은 밥벌이’라고 표현했다.

6월 초입 한낮에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데도 이날은 중간 중간 가랑비까지 내려 서늘했다. 가벼운 반소매 차림에다 아침까지 거르고 온 필자는 서문 근처 성벽 주위에서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성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덜덜덜 떨기도 하고, 겨우 한 끼 걸렀는데 배고픔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 속 배경처럼 한겨울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배고픔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때 그 현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22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싯다르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9
헤르만 헤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의 소도시 칼브에서 태어나 1962년 8월 9일 85세를 일기로 스위스의 아름다운 고장인 몬타놀라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뜨거운 절망과 고뇌를 되씹고 시대의 혼돈 속을 방황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가적 출발은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발리스와 터크는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서 헤세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우위에 놓고 "내면세계로 향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원형을 발견하였으며 슈바벤의 수려한 자연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서정성이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경향의 추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동양 정신을 모색하게 되었다. 즉, 서구 문명이 그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불교 정신에서 찾아보려 했어던 것이다. <<싯다르타>>로 대표되는 이러한 불교 정신의 탐구는 그의 명상의 세계를 확대시켜 주었고, 그래서 그는 인도까지 방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명상과 같은 정적인 것 속에서 영혼을 유지시키기만 해서는 세계와 자아 사이의 긴장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경지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자기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결코 영혼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헤세의 또 다른 작품인 <<데미안>>과 더불어 <<싯다르타>>는 헤세의 초기의 몽상적 경향을 탈각하고 자기 내면의 길을 걷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손꼽힌다.

헤세의 부친의 별세와 아내의 정신병 악화등으로 불운이 겹친데다 그 자신마저 신경장애를 겪게 되어 괴로워하다가 어는 정도 극복이 되자 곧 이 작품의 창작에 들어가 1922년에 완성을 시켰다.

<<싯다르타>>는 헤세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이 주인공의 고난에 찬 자기 실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서두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싯다르타가 영혼의 안정을 얻으려고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고행자 사마나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함께 고행을 하던 고빈다는 열반에 도달한 고마타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지만 싯다르타는 가르침 그 자체로부터는 해탈을 얻을 수 없을 인식하고 친구와 헤어짐으로써 정신적 방황을 시작한다.

더 이상 피안의 세계만을 갈국하지 않고 가시적인 세계로도 눈을 돌려 보지만 사랑의 환희나 막대한 재산도 결코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절망한 싯다르타는 급기야 강물에 몸을 던질 결심까지 하게 되나 강물로부터 가르침을 얻게 되어 새 출발을 한다. 싯다르타는 강물과 뱃사공을 스승으로 삼아 마침내 긍국적인 진리를 터득함으로써 오랜 애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헤세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포교에 종사한 적인 있는 선교사이며 어머니는 잘 알려진 인도학자 딸로서 인도에서 출생했다. 따라서 이들의 아들인 헤세는 일찍부터 동양의 종교와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 <<싯다르타>>도 동양의 초월주의를 강조한 작품이다.

헤세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다. 여기서 싯다르타는 사변적인 정신 일변도의 삶을 거부하고 현실을 떠나서 자기 실현을 이룩한다는 것은 허구임을 인식한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리얼리스트였다. 따라서 끊임없는 고뇌를 겪어야 했지만, 결국 강물로부터 단일성의 사상과 영원한 현재라는 시간의 초월, 즉 무상성의 극복을 체험함으로써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상태를 인식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