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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왕을 위하여 - 필리핀 오지 선교 20년 김자선 선교사의 순종과 헌신
김자선 지음 / 중앙M&B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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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년동안 필리핀의 오지 라굼에서 김자선 선교사(선교명 : 네덜 킴)의  일생과 헌신을 바친 선교지 이야기이다. 선교사님의 선교명인 네덜은 "나사레이트"라고 하는 나실인의 뜻인 바치다, 헌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선교사님의 선교명처럼 자신의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바친 삶이다. 이처럼, 이 책의 서두에 보면, 선교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현장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이 가고 싶지도 않은 필리핀 오지인 라굼에서 사역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이름과 같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선교사님의 20년 세월의 선교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는 것 같다.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 죽음도 불사하고 예루살렘 거리에 활보하여 복음을 전했던 제자들처럼, 그녀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필리핀 오지에서의 사역을 통해 지금은 17개의 교회와 17개의 기도처소, 유치원과 초등학교, 원주민 사역자 양성을 위하여 신학교까지 설립하는 등 많은 사역의 열매를 맺고 있다.

그녀의 사명의 중심에는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 즉 "그 왕을 위하여"을 삶을 살았다. 이것은 그녀가 걸어가는 삶의 자양분이면서도 버팀목이었다. 지금도 김자선 선교사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설 때까지 끊임없이 오늘도 복음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이 책은 읽고 나면, 진정한 선교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선교사의 본질과 삶의 정황들을 잘 보여준다. 선교는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으로 채워짐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비단 선교사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두 다 적용되는 말씀일 것이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이 시작이야말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본질을 깨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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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믿음의 글들 137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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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거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밖을 나서기 전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거울이라는 물건을 통해 점검하고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외출을 합니다. 혹시 흐트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과감히 고치고 정리정돈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거울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이라는 거울일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아이들은 나를 비추는 인생의 거울입니다. 아이들을 통하여 나의 신앙을 점검하게 되고, 아이들을 통하여 내 인생의 모습을 발견하며 확인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배워갈 때 나는 나의 인생의 돌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갑니다.

이 책은 이재철 목사님이 자신의 아들 4형제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확인하는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배워가며, 자신이 깨달지 못한 부분들을 확인하는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속담에 3명이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늘 배우는 자세로써 사람들을 만나야 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라는 인생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배워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나에게도 아내와 두명의 자녀들이 있는데, 이러한 자녀들을 나의 인생의 거울로 삼아 내 자신을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보다 더 성숙한 신앙과 인생을 살아가려고 다짐해 봅니다. 결국 내가 어느 중년이 되어 인생의 경륜이 높을 때 이들이 나의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면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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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쓰심 -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안찬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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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을 들어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그분이 말씀하시면 아무 말 없이 기쁘게 따르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온전한 "그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길 바라십니다. 당신을 들어쓰길 원하십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족에서 선교 사역하시는 안찬호 선교사님의 사역 보고서이다. 마사이 족에서의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께 절대적인 순종이다. 언어적인 소통도 어렵고, 문화와 이해의 차이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만 했을 때 그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안찬호 선교사님처럼 철저하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로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비록 우리는 한국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환경과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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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 강영안의 사도신경강의 1
강영안 지음 / IVP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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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을 믿는다"라고 할 때 믿는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믿음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격과 인격간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어진다. 우리는 책상을 보고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버스를, 지하철을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지, 정, 의 를 소유한 인격자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을 믿는다, 친구들을 믿는다,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믿음의 대상은 인격을 소유한 상대라고 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우리와 똑같은 유한한 존재에 대한 믿음은 "faith"라는 믿음보다는 그 의미를 적절하게 잘 나타내 주는 "trust"의 단어를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인격을 소유한 사람들을 믿는다라는 말에는 그 관계 속에서의 신뢰로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우리는 무한한 존재, 즉 절대자 또한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주님)께 신뢰와 경외의 표현으로 믿는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그 믿음의 대상이 무한한 하나님, 절대자, 창조주에게 향한 우리의 고백의 의미로써 믿음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신자들의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는 사도 신경의 첫 줄<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첫줄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서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변증학적 저서이다.

이 책은 크게 이 시대의 풍조에 나타나는 현상들, 즉 무신론주의와 페미니시즘과 전능성(인간의 고통의 문제)과 창조와 진화를 통한 창조주의 발견, 등을 통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를 밝혀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증을 통해 나타나는 저자의 신앙고백과 철학적 증거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무신론주의에 대해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증거론적 무신론주의와(원론적인 무신론-우리가 인식하듯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현실적, 실제적 무신론주의(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페미니시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남성이냐? 여성이냐? 의 문제를 대두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도전에 대해 성경의 인용과 신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대한  풍성함을 잘 설파하고 있다.

전능성에 대해서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그 전능성을 풀어나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는데 왜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느가? 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능성을 해석해 가고 있다.

창조주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창조냐? 진화냐?의 문제를 그 실례를 통해 다룸으로써 결과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음을 설복하고 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앎에서 시작되는 믿음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곳에 믿음이라는 단어 또한 성립되지 못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되고 그 하나님을 앎에 의해 나타나는 고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는 이 책이 神지식을 제공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자들에게는 더 깊은 믿음의 고백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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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
정숙희 지음 / 홍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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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부터 정숙희 기자의 칼럼들을 읽어 왔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기쁘다. 칼럼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낀 점은 예리하면서도 정곡을 찌러는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책에서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고독하면서도 완고한 의지를 찾을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와 같이 비록 자신에게 불이익과 어려움이 닥친다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이 세상의 교회를 향하여 개혁의 소리를 외쳐야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중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대 제상장들과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더렵혀지고, 시장 바닥으로 전락되었을 때 혈혈단신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셨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490여 년 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해에도 거대한 로마가톨릭에 대항하여 혈혈단신으로 외로운 싸움을 했던 마틴 루터 또한 주님의 마음으로 진리를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받쳤다. 이처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였을 때 주님처럼 혈혈단신으로 교회를 대상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정숙희 기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성경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근거를 두고 있는 곳이 있다면 사도행전 2장 43절~47절까지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면,

교회 공동체는 1)예배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으로 구성된 거룩함과 경건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교회에서 예배는 예배가 흔들리면 교회의 본질이 흔들릴 만큼 초석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기 보다는 "보고", "느끼고"라는 인간 중심의 감정에 따라 다양한 예배가 창출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교회 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2)교제의 공동체이다. 교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교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외에까지 그 확장성을 띠고 있는데, 지금의 교제의 모습을 본다면, 끼리끼리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만 머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안에서만의 사랑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3)봉사와 선교 공동체이다. 교회는 지역 사회에 대한 복음의 통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과 주변을 섬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까지 확장되는 복음의 통로이다. 그런데 봉사와 선교는 사라지고, 교회 건축을 "성전건축(?)"이라는 명목하에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 건축의 이름 하에 예수님을 세상의 빚쟁이(?)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니 어떻게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대로 된 성전이 없어서 한탄하셨는가?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곧 건물로 착각하고 있다. 진정한 성전되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우리가 참된 성전인데, 왜 건물에만 집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서 말하고자하는 교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면,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행하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크게 3부분으로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회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세상을 개혁해야 할 교회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마이클 그리피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라는 책을 통해서도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려 잠자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외쳤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잠자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를 다시 깨우는 세례 요한의 외치는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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