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쓰심 -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안찬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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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을 들어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그분이 말씀하시면 아무 말 없이 기쁘게 따르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온전한 "그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길 바라십니다. 당신을 들어쓰길 원하십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족에서 선교 사역하시는 안찬호 선교사님의 사역 보고서이다. 마사이 족에서의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께 절대적인 순종이다. 언어적인 소통도 어렵고, 문화와 이해의 차이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만 했을 때 그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안찬호 선교사님처럼 철저하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로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비록 우리는 한국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환경과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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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 강영안의 사도신경강의 1
강영안 지음 / IVP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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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을 믿는다"라고 할 때 믿는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믿음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격과 인격간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어진다. 우리는 책상을 보고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버스를, 지하철을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지, 정, 의 를 소유한 인격자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을 믿는다, 친구들을 믿는다,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믿음의 대상은 인격을 소유한 상대라고 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우리와 똑같은 유한한 존재에 대한 믿음은 "faith"라는 믿음보다는 그 의미를 적절하게 잘 나타내 주는 "trust"의 단어를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인격을 소유한 사람들을 믿는다라는 말에는 그 관계 속에서의 신뢰로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우리는 무한한 존재, 즉 절대자 또한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주님)께 신뢰와 경외의 표현으로 믿는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그 믿음의 대상이 무한한 하나님, 절대자, 창조주에게 향한 우리의 고백의 의미로써 믿음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신자들의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는 사도 신경의 첫 줄<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첫줄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서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변증학적 저서이다.

이 책은 크게 이 시대의 풍조에 나타나는 현상들, 즉 무신론주의와 페미니시즘과 전능성(인간의 고통의 문제)과 창조와 진화를 통한 창조주의 발견, 등을 통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를 밝혀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증을 통해 나타나는 저자의 신앙고백과 철학적 증거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무신론주의에 대해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증거론적 무신론주의와(원론적인 무신론-우리가 인식하듯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현실적, 실제적 무신론주의(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페미니시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남성이냐? 여성이냐? 의 문제를 대두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 도전에 대해 성경의 인용과 신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대한  풍성함을 잘 설파하고 있다.

전능성에 대해서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그 전능성을 풀어나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는데 왜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느가? 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능성을 해석해 가고 있다.

창조주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창조냐? 진화냐?의 문제를 그 실례를 통해 다룸으로써 결과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음을 설복하고 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앎에서 시작되는 믿음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곳에 믿음이라는 단어 또한 성립되지 못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되고 그 하나님을 앎에 의해 나타나는 고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는 이 책이 神지식을 제공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자들에게는 더 깊은 믿음의 고백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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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
정숙희 지음 / 홍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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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부터 정숙희 기자의 칼럼들을 읽어 왔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기쁘다. 칼럼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낀 점은 예리하면서도 정곡을 찌러는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책에서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고독하면서도 완고한 의지를 찾을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와 같이 비록 자신에게 불이익과 어려움이 닥친다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이 세상의 교회를 향하여 개혁의 소리를 외쳐야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중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대 제상장들과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더렵혀지고, 시장 바닥으로 전락되었을 때 혈혈단신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셨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490여 년 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해에도 거대한 로마가톨릭에 대항하여 혈혈단신으로 외로운 싸움을 했던 마틴 루터 또한 주님의 마음으로 진리를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받쳤다. 이처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였을 때 주님처럼 혈혈단신으로 교회를 대상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정숙희 기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성경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근거를 두고 있는 곳이 있다면 사도행전 2장 43절~47절까지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면,

교회 공동체는 1)예배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으로 구성된 거룩함과 경건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교회에서 예배는 예배가 흔들리면 교회의 본질이 흔들릴 만큼 초석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기 보다는 "보고", "느끼고"라는 인간 중심의 감정에 따라 다양한 예배가 창출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교회 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2)교제의 공동체이다. 교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교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외에까지 그 확장성을 띠고 있는데, 지금의 교제의 모습을 본다면, 끼리끼리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만 머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안에서만의 사랑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3)봉사와 선교 공동체이다. 교회는 지역 사회에 대한 복음의 통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과 주변을 섬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까지 확장되는 복음의 통로이다. 그런데 봉사와 선교는 사라지고, 교회 건축을 "성전건축(?)"이라는 명목하에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 건축의 이름 하에 예수님을 세상의 빚쟁이(?)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니 어떻게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대로 된 성전이 없어서 한탄하셨는가?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곧 건물로 착각하고 있다. 진정한 성전되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우리가 참된 성전인데, 왜 건물에만 집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서 말하고자하는 교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면,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행하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크게 3부분으로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회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세상을 개혁해야 할 교회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마이클 그리피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라는 책을 통해서도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려 잠자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외쳤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잠자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를 다시 깨우는 세례 요한의 외치는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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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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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전에 매스컴을 통해서 세간에 호기심을 유발시킨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근대 환타지 소설의 근간이 되는 작품 "베오울프"였다. 영화 개봉에 맞물러 이 달의 책으로 선정 받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동기는 근대 환타지 소설의 근간이 된다는 글귀로 인해 강함 호기심이 유발되었다. 근대의 환타지 소설이라고 손꼽히는 작품은 잘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 일 것이다. 이러한 소설의 근간이 된다는 것에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는 책이 아니라, 영화였다. 그것도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맥스로 보게 되었다. 세간에 회자가 되었던 안제리나 졸리의 전라신이냐? 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 작품에 대한 스토리의 진행이 어떠한 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증폭되었다. 영화는 문필로 표현할 수 있는 장면에 대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에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의 장면이 나의 뇌리 속에서 벗어나기 전에 그 즉시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베오울프를 읽다보면, 두 괴물이 나온다. 첫번째 괴물은 그렌델, 두번째 괴물은 황금 드래곤이 등장한다. 이 두 괴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죽음과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이 두 괴물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산물로써 우리에게 비춰지는 듯하다. 인간이 늘 추구해 온 왕국(권세), 부귀, 명예에 대한 심리적인 묘사와 악과의 엄밀한 타협으로 베오울프는 시대적인 영웅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신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생산된 괴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렇다면, 헤오로트 궁의 왕(호메르가)과 베오울프는 작금을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우리 자신의 내면을 잘 그려주고 있다.

첫번째 괴물 그렌델을 죽이고 그의 어미를 물리쳐 왕이 된 베오울프는 악과의 엄밀한 타협을 통해 시대적인 영웅이 된다. 베오울프의 내면에 숨겨진 욕심으로 인해 결국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욕심으로 물들어져 있는 분신과 맞주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황금 드래곤이다. 황금 드래곤과의 필투 끝에 황금 드래곤과 자신은 죽음으로 그 결말을 맺고 있다. 영화를 보면, 베오울프의 수하가 왕이 될 때 바다 속에 악의 어미가 부상하여 앞으로 왕이 될 사람과 또 다른 엄밀한 타협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끝을 맺는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전에 읽었던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마에게 엄밀한 타협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다. 결국에 회심해 보았지만,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은 이미 건넌 상황이었다. 인간은 욕망의 늪앞에서 미래의 대한 안목 또한 잃어버리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베오울프나 파우스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악과의 타협이라는 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순간적으로 화려함과 찬란함을 맛 볼 수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베오울프라는 작품을 통해서 내 자신을 겸허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베오울프"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성공만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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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30분 - 인생 승리의 공부법 55
후루이치 유키오 지음, 이진원 옮김 / 이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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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이 그렇게지만, 사회 진출한 30대의 속내를 들어보면 향후 10년에서 15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육강식의 사회 구조 속에서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당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이다. 나 또한 내 자신의 계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고 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독서량을 평소보다 많이 섭렵하고 또한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정보를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대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바쁜 기자 생활 속에서 유학의 꿈을 꾸며 그 꿈을 현실 속에서 하나씩 준비함으로써 성취한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숱한 공부의 과정을 통해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능률있게 하지 못한 실패의 부분들을 잘 지적해 주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능률적이며 효과적으로 학습을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제공해 주는 것에 큰 만족을 느낀다.  특히, 저자처럼 기회가 되면 나도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유학이라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성실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뼈속 깊이 통감하고 있는 때에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정보와 방법들을 습득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만족하며 기쁘다.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책이 아니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루에 몇 장씩 읽고 자신에게 적용시켜 봄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채택하여 익혀 나가면 좋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 보았지만, 이 책을 기록한 저자는 나의 경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공부에 필요한 방법을 시도한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얼마나 자기 계발에 필요한 방법에 노력을 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저자의 모든 노하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를 고심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 따라 한번 실천 해 볼 것을 권유해 보고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의 모든 방법은 무조건 맹목적으로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는 듯하다.

하여튼 이 책은 나의 공부 스타일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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