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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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웃어제끼다 보면 나중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다가 웃기는 사람이 될 뻔했다. 지하철에서 절대로 읽지 말 것. 하지만 하도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에까지 도달하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빚때문에 회사를 그만 둘 수 없고 좌절과 절망 섞인 회사 생활을 하면서 또 그 스트레스를 먹고, 마시고, 사는 데 쓰기 때문에 다시 카드빚이 생기고..그래서 나는 영원히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다.

바야흐로 구매자 천국의 시대이므로 나는 소비자일 때만 대우를 받는다. 생산자로서의 나는 그 까다로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일신우일신, 발바닥에 땀냄새 가득하도록 뛰어야 한다. '저는 차라리 적게 먹고 적게 쌀래요'하면 사회에서는 소비의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한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옷 사세요~ 라는 이야기이다. 사회의 소비 조장은 늘 은유적으로 다가온다. 절대 직설적인지 않다. 프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포장을 하고 숨을 죄어온다. 너는 프로가 되어야해.

왜 그렇게 앞만 보고 뛰기만 하는건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 데가 있다는 게 행복이라고. 과연 그럴까? 갈 데는 분명이 있지만 거기서 뭘, 왜 하는지도 모르는 건 그냥 인생이 그런거라고 생각하고 잠자코 있으면 되는걸까?
삼미의 기록적 패배와 뺑이치듯 사는 우리네 인생과의 비유와 연결. 너무 잘 쓴 소설이다.

새삼스럽게 이 소설가가 이 많은 끼와 철학을 가지고 매우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어떻게 했으까 싶다. 물론 매우 잘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꿈틀거리는 기질을 어떻게 감추고 또 누르고 살았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그가 회사원에서 소설가로 전향하며 내던진 출사표 같은 느낌이다. 그가 내놓게 될 차기 작품이 벌써부터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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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 선인들의 일화에 담긴 일탈의 미학 학고재 산문선 10
이강옥 엮어옮김 / 학고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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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란 만든 이에 따라 평민일화와 사대부일화가 있는데 둘 모두 결국 사대부가 한문으로 기록한 문학이다. 따라서 여타의 구전문학과 구분되고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허구적 서사 문학과도 구분된다.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초기부터 발달했다. 즉, 일화는 논픽션 조선 한문문학이다.

이 책은 엮은이가 <용재총화>,<패관잡기>등 40여편에서 발췌,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의 소개대로 나는 일화를 통해 사대부가 고쳐 쓴 평민일화, 설화와는 다른 서사문학의 모습과 그에 따른 설명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모음집이었다. 장의 마지막마다 해설이 있었지만 1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일화에 대한 각각의 설명은 없었다. 게다가 같은 장에 포함된 여러 일화가 왜 같은 제목으로 묶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았다. 내가 너무 친절한 작가들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국문과 전공자들만 읽는 참고서를 집어 들고서 불평하고 있는걸까? 내가 보기에는 국문과 학부생들에게도 버겁게 보인다.

요사이 대중에게 성큼 다가와 묻혀졌던 우리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책들이 많다. 예를 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조선 뒷골목 풍경> 등 다수이다. 하지만 어느 주제보다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잠재력이 많은 우리 옛 문학은 상대적으로 홀대 받는 듯하다. 나의 이런 개인적인 불평이나 바람이 대표정서도 아니고 또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그 책임을 이 저자가 져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모든 책이 대중적일 필요도,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국문학자가 쓴 친절한 우리 옛 문학 설명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국문학자가 아닌 고종석의 <제망매가>, <언문세설>, <감염된 언어>, <국어의 풍경>을 한 번 보자. 우리 옛 것에 대한 사랑과 지식, 그리고 철학이 얼마나 고맙기까지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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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영목, 정태원 옮겨엮음 / 도솔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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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을 보면서 사기꾼이 나쁜 직업임에는 틀림 없지만 저렇게 치밀히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인정을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회면 뉴스를 보라. 주식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덜컥 아이를 납치부터 했다가 아이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자 저녁에 결국 집 앞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다시 아무 특별한 계획 없이 다음 희생양을 납치한 다음 이번엔 골목길에서 마주 오는 경찰차에 수상한 행동을 해서 바로 잡힌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최소한 추리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고 고민을 했다면 그런 식의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홍콩 영화 등을 보면서 범행 준비를 했다는 자백이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를 몰아 넣지만 이것 역시 단순히 그 방법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범행 방법이 엽기적이고 폭력적일 뿐이다. 지능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의 성의 있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죽일 필요도 없는데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백을 한다. 아니 그럼 끝까지 비밀로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그 허술한 방법으로?

이 책 <마니아를 위한…>은 세계의 유명 추리 소설 작가가 쓴 40여편의 작품집이다. 물론 이 책은 범행 계획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인간 군상들의 입장과 알리바이 속에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물씬 풍겨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작은 실마리를 탐정이 찾고 범행의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끊임 없이 자극한다. 그리고 책 속으로 끌어 당기는 데에 성공한다.

여기에는 만화책을 읽는 듯한 박진감과 스피드, 프랑스 소설 같은 후반 대반전이 있다. 또 독자가 함께 사건을 풀어가도록 초반 암시가 되어 있는 작품도 있고 현장에 있는 탐정의 눈으로만 감으로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마지막에 해답처럼 실려있는 것도 있다. 또 인도 출신 노동자, 평생을 가난으로 살아야 했던 한 여성 노동자, 빈민 구제소의 아이들, 아일랜드 독립파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도 있다. 또 상속과 치정을 둘러싼 가족간 분쟁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어느 것 하나 플롯이 개연성과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CD 한 장 사면 한 두곡 들을만 하고 나머지 곡은 끼워팔기의 냄새가 역력한데 이 책은 작품성이 검증된 컴필앨범이라고나 할까. 하나도 버릴 작품이 없다. 하지만 책을 사보면 알겠지만 책이 매우 두껍다. 1000페이지 가량 되므로. 따라서 들고 다니지 말고 집에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분량은 두껍지만 그 읽히는 속도나 재미를 감안하면 그다지 두껍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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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
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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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6세기 양반인 미암 유희춘이 11년간 쓴 일기를 중심으로 작가가 주제별로 현대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유희춘은 그냥 양반이 아니고 기대승, 송순, 이황, 이이, 정철과 교유했고 임금의 스승을 지낸 고위관료였다.

그의 일기를 토대로 보면 조선시대 전기는 아들과 딸이 제사를 함께 지내거나 장자 상속 대신 자녀균분 상속이 폭넓게 시행되는 등 후기에 비해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또 대가족제도라 외가, 처가 등이 함께 모여 살고 바깥 출입이 잦은 대감 마님에 비해 일상적으로 많게는 100여명의 식솔을 관리하던 안방 마님의 실세가 대단했다. 즉, 대가족 조선 안방 마님의 ‘곶간 열쇠’ 는 핵가족 시대 현대 부인이 관리하는 남편의 ‘급여 통장’ 을 스케일면에서 크게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 밖에 왕실, 정국 동향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가계 살림살이, 혼례, 제사, 노비 관리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유희춘이 조선의 양반으로 그 당시 민중의 대표도 아닌데다 일기의 특성상 밥 먹고 일하는 매일 되풀이 되는 평범한 일상 – 그러나 후대에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신변잡기- 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16세기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에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작가 정창권이 가부장제가 조선 전반의 조류인 것인 양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전기까지만 해도 여권 존중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특별한 의도로 이 책을 집필한 것 같고 그 의도는 부인 송덕봉이 유희춘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만 놓고 보더라도 성공한 듯하다 -그 편지는 논리적인 명문이었고 결국 유희춘은 말발에 있어서 부인에게 K.O패를 당한다.- 그래서 이 책은 16세기 생활사 참고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16세기를 살던 조선시대 할아버지의 일기 훔쳐보기로 접근을 하면 맘 편할 것 같다.

부언컨데 조선 시대의 생활사를 알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가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면 <일상으로..>는 유희춘의 일기뿐만 아니라 신윤복 등의 풍속화나 기타 의복사, 음식사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문헌을 참고로 하여 기생, 형장, 마마, 호환, 담배 등 10여가지 주제로 참고 문헌을 넘나들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포괄하는 우리 역사의 잘못 알려진 오해와 그 진실을 파악하려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의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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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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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제목만으로 갖고 싶은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노동자의 고단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던 이 시집 제목은 얼마전 내가 메신저 대화명으로 썼다가 “너 무슨 화나는 일 있냐?” 심지어는 “너 누굴 죽이고 싶냐?”라는 종류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이 쇄도하여 의외로 이 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가 아니라는 점과 사람들이 평소에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깨닫고는 소심해져 서둘러 대화명을 바꾼 적이 있다 - <사랑이라니, 선영아>도 평범하지만은 않은 제목이다. 작가는 몇 년전 전봇대와 지하철 광고판을 도배했던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의 여성 전문 포탈에서 이 제목을 착안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소설 제목처럼 대중성을 띈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공안검사 비트 파는 소리하네……문학도 모르는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개그콘서트 옥동자)”라든지, “사랑해 선영아.(마이클럽)”라는 사랑 고백. 거기에 주인공이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거부 당한 후 “어떻게…..사랑이 변하니?(봄날은 간다)”라고 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주인공은 텔레비전, 광고,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인간이다. 또 여자 집 앞에서 술이 진탕으로 취해서 ‘얄미운 사람'을 온동네 떠나갈 듯 불러대고는 사태 진압에 나선 여자에게 놀이터에서 – 그 여자의 남자동생과 어머니가 멀리서 모니터를 하는 가운데- 하는 기가 막힌 고백..등등 나는 더 말하고 싶지만 더 이상 전개하면 ‘식스 센스’상영관 앞에서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외치는 격이므로 그만 하련다.

또 막 결혼생활에 접어든 남자를 '달에서 귀환한 사람'으로 그 무게와 중력을 설명하는 신선한 비유를 던진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호두'와 같다. 깔려면 힘든데 깐 노력에 비해 허망하리만치 없는 내용물.. 하지만 이 소설이 이렇게 대중적인 대사와 절묘한 비유들로 점철이 된 가벼운 소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공감가고 설득력 있는 후일담 소설이랄까? 가볍지만 진지한, 무거운 듯 하지만 시트콤 같은 자연스러운 웃음이 가득한 우리네 현실 스케치이다.

제목 때문에 처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김연수라는 작가가 너무 신선해서 동작가의 <굳빠이, 이상>이라는 작품을 그 다음날 바로 사서 읽었다. 두 작품을 읽고 난 후, 이유를 딱 꼬집어 설명하기가 힘이 들지만 소설가 김연수는 저력 있고 기대가 많이 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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