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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 선사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찾는 인간적 삶
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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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박물관 필수템. 저 오랜 석기시대를 통해 오늘의 나를 보게 될줄이야. 나 생각보다 손을 쓰고 발로 뛰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은 덤. 석기시대가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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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 선사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찾는 인간적 삶
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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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뿐 아니라 생각도 대신해주겠다는 세상에서의 답사란

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는 한반도 석기시대 유적지 답사를 통해 인간의 오래된 삶에서 오늘의 삶을 사유하는 책이다. 오선민 작가는 구석기(공주, 단양, 연천)’, 신석기(양양, 시흥, 창녕, 부산)토기()’, 신석기(울산, 울진, 제천) 암각화, 묘지, 동굴의 영성을 중심으로 답사를 한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천장 없이 고공행진하고 코스피가 6000을 돌파하며 이대로 있다가는 벼락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때, AI가 일상의 풍경을 구석구석까지 바꿔놓는 동시에 나와 일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는 이때, 한가하게 역사시대도 아니고 수천, 수만 년 전 돌 조각, 흙 파편, 암각화를 보겠다는 것은 무슨 배짱인가? 게다가 복잡한 머리를 식히러 한적한 교외 박물관을 살짝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맛있는 만두전골에 향이 좋은 로스터리 커피를 즐기는 여유도 아니고 50권이 넘는 참고 문헌을 읽고 범인이라도 추적하듯 이어지는 질문을 따라서 답도 없이 두루 돌아다니면서’(P.18) 할 일인가? 도대체 석기시대 사람들이 오늘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상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책을 읽으면서 선사시대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과 지난함이 먼저 들어왔다. 주먹도끼 하나 만들려면 알맞은 돌을 고르고 깨고 다듬어야 하고, 추위를 피해 옷이라도 걸칠라치면 일단 뼈바늘을 만들고 바늘귀를 뚫을 도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동물 피부 가죽을 벗겨 무두질하고 잘라야 한다. 또 독성이나 영양을 알아야 채집도 할 것이다. 현대를 사는 나는 이 얼마나 편하고 풍족한지 새삼 느끼며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선사시대를 현대의 편리함 등을 기다리는 궁핍하고 위태로운 시공간’(P.11)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 그리고 선사시대 사람 걱정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내 생활을 보고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선사시대의 유물에서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과 지난함을 떠올리는 것은 나의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기계와 사람을 시키고 편리해진 나는, 그렇다면 그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는 시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늘 쫓기듯 허덕이고 있는 나 역시 기계와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시키거나 시키는 일을 하는 일 말고는 없을까. 선사시대라는 좁고 작은 문으로 기꺼이 내 몸을 밀어넣어 오늘의 나를 만나봐야겠다.

 

만드는 사람을 보며 비로소 보는 소비하는 사람

오선민 작가도 선사시대 사람이 아니기에 답사를 통해 기존의 관념이 부서지는 경험을 적고 있다. 부서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꺼이 부서질 마음과 상상력이다. 기존 관념이란 실용이라는 목적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 관념은 굳이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아차차 자신의 시선을 비로소 느낀다. 주먹도끼라는 완성품을 위한 인내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보람을 생각하는 여유로 상상(p.29)한다.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의 최대 규모의 석기를 보고 생산력 높은 공장을 떠올리다가 <국립중앙박물관> ‘분장놀이에서 이익 없이도 정성을 쏟는 예를 보고 보상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DNA(P.64)를 떠올린다. 손 많이 가는 신석기 갈대집의 유지 보수를 해치워야 하는 로 생각하다가 수고 속에서 느끼는 보람(P.150)을 상상한다. 신석기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방이 필요한 이유가 없었음(P.176)으로 바꿔 생각해본다. 이렇게보면 선사시대는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진 시대가 아니라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들고,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관찰력과 솜씨가 발휘되는 생각이 폭발하고 구현되는 시대로도 상상할 수 있다.

소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만드는 수고로움을 안해도 되는 복받은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 수고롭지 않음을 목표로 하면 그렇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지식, 솜씨가 없어도 돈을 벌어 소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대 공장에서 만들고 쇼핑몰에서 팔더라도 더 추적해보면 누군가가 집, , 옷을 만들고 있다. EBS 극한체험에서 본 10시간을 서서 멍게를 손질하는 분 덕에 내가 멍게를 먹을 수 있고, 오선민 작가가 언급한 이제는 힘든 일을 다 마다해 외국인들이 맡고 있는 멸치잡이, 멸치털이만 봐도(P. 158)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모르고 있었을 뿐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노고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다. 사서 먹을 때는 모른다. 선사시대를 공부하고 답사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주를 비롯한 삶이 어디서 오는지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내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다시, 생각하는 사람으로

책을 읽고나서 정말 손발을 최대한 덜 쓰고, 생각을 덜 하는 것이 과연 내가 바라는 바인가 묻게 되었다. 지금 전쟁이 한창이다. 전쟁으로 직접 고통받고 있는 이란 사람들보다 당장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주식, 다금바리도 아닌데 시가로 판매되고 있는 기름값이 걱정이라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 생각을 하면 그런 내가 무섭다. 하지만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인가? 육탄전이나 창과 방패로 내 눈앞에서 싸우면 피부로 와닿겠지만 지금은 지상전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미사일 버튼을 눌러 초토화가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생중계되는 세상이다.

이 책은 창던지개 장식에 드러난 비실용과 상징을 통한 사냥감에 대한 사냥꾼의 야심과 미안함을 설명하고 있다. 창을 더 멀리 던질 수 있는 일종의 팔 길이 연장이자 속도 증강 장치에 왜 굳이 장식을, 그것도 사슴이 새를 낳는 모양을 넣었을까?(P.118) 당연히 석기시대 원작자에게 의도를 물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소비와 가성비라는 관념을 조금 내려놓고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볼 수는 있다. 왜냐면 호기심은, 잊고 있었지만 인류의 아주 오래된 DNA이니까. 다행히도 나에게는 아직 그런 DNA가 있는 것 같다. 내 가시거리 바깥에 있는 사냥감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척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윤리적인 부하를 조정할 필요도 있는 일이었다. 많은 악행은 의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다만 무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어디서 오고 있는지, 어디고 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뭘 모르고 있는지, 그 무지가 벌이고 있는 일들까지도.

박물관을 가는 것은 과도한 긴장과 무게를 덜기 위한 기분 전환만으로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사전 정보 없이 전시 설명을 읽어가며 유물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궁금함을 사전 장착하고 해석의 길을 따라 참고서처럼 지참해서 여기저기 질문을 품으며 관람하는 것은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인간이란 무릇 호기심 많고 손발을 움직이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며 살 때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단순히 소비하는 것보다 손발을 쓰고 머리를 써서 연결을 생각해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점과 함께.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박물관 갈 때 필수템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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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
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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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미학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모두 봤다고, 여러 차례 봤다고,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그라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읽는다면 아마도 그런 장면이 있었나, 그런 의미가 있었냐며 영화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오선민 작가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를 훨씬 많이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요 이유는 횟수가 아니라 시선에 있다. 그 시선은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해도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을 향하고 있다. 그 디테일은 나, 인간, 주인공, 목적 중심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의 연결 고리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놓쳤던 영화 장면을 재생해 본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이웃집 토토로> 자매가 엄마를 보겠다는 목적이 무산되자 마루에 완전히 뻗어버린 것, 그 아이들 곁에서 간다네 할머니가 빨래를 같이 개키자고 한 장면을 다시 본다. 목적을 가진 기다림의 고통,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작고 사소한 배려의 힘을 생각해 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몰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큰 몸의 무의 신이 치히로를 가려줘 위기를 모면한 장면을 다시 본다. 치히로의 모험은 드러난 하쿠의 호의 이외에도 의도하지 않은 무의 신의 도움, 또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마녀 배달부 키키>2층 하숙집을 다시 본다. 이제야 라떼 다해본 고생담쯤으로 치부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키키의 어둑한 방, 우울한 모습이 보인다. 모두 나에게 그저 목적지로 가는 길에 만난 엑스트라, 우여곡절 정도로,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서 삭제된 장면이었다.

나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과 디테일을 사소하다는 이유로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재생하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다. 많은 것을 띄엄띄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만물의 의존, 일상의 철학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 11편 전() 편을 일상의 애니미즘으로 해석한 책이다. ‘일상의 애니미즘에서 애니미즘(animism)’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도 혼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고이다. 애니미즘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만물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 오선민 작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마 할아범의 일터를 사물 중심으로 묘사한다. 거기 낡은 시계, 오래된 도자기, 하도 많이 봐서 뚱뚱하게 부푼 책, 자주 사용하는 칫솔, 재떨이 꽁초가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 사물 하나하나가 할아범의 살아온 세월, 그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한다. 그 사물들이 없는 할아범은 그 할아범이 아니다. 오선민 작가는 정리된 테이블을 보면 그 테이블을 정리했을 누군가, 또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썼을 세면대, 수건을 통해 공간에 참으로 많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알든 모르든 만물과 할아범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누군가가 고치고 닦았을 집기, 책상 위에 놓인 사소한 사물이 많다. 몰랐지만 나도 만물과 서로 의지하고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도입부는 키키가 바람 부는 언덕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장면이다. 오선민 작가는 이 순간 바람이 불 때 만물이 어떻게 의존하는지 사운드에 주목한다. 하늘의 구름이 이동하고, 호수에는 잔물결이 만들어지고, 키키 주위의 꽃이 각자의 무게로 흔들리고, 머리카락과 치마도 제멋대로 움직인다. 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벌레 날갯짓 소리까지 한데 섞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보면 키키라는 인간이 바람 부는 언덕에서 라디오 듣는 것에 불과한 장면이 아니다. 그곳은 모든 것들이 모든 방식으로 서로 의존하는 애니미즘 현장이다.

일상의 애니미즘에서 일상은 무슨 의미인가? 오선민 작가는 영화의 사건이 일상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바로 요리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책 읽기이다. 지구를 구하고 아픈 엄마를 걱정하고 친구를 저주에서 벗기려고 해도 식음을 전폐하고 전투력에 불탄다고 될 일이 아니다. 먹고 자고 치우는 일상을 보내지 않고 해낼 방법이란 없다. 지금, 여기라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는 없다.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의 일상은 책 읽기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울던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를 돕기 위해 낯선 길을 간다. 자신의 욕망만 붙잡고, 자신만 생각하던 마히토가 함께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향한 것은 책을 읽고 나서이다. 마히토가 읽은 책은 친구 때문에 울고 웃으며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이 아는 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연결된 누군가와, 어떤 일도 겪을 수 있는 커진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 중심이 아니라 만물이 의존하는 관계로 들어가는 힘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일상에 있다.


반복해서, 많이, 계속 쓴다

애니미즘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가 아니라 누구의 무엇으로 존재한다. 만물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를 그대들은 누구의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탐구로 해석한다. 책의 맨 마지막 <보론>에는 미야자키 감독이 미리 정한 시나리오를 그림과 영화로 구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야자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자기만의 기술을 반복해서 그린다, 많이 그린다, 계속 그린다로 간단히 정리한다. ‘반복, 많이, 계속은 동어 반복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 자신이 찾아야 할 이미지를 발견할 때까지 반복하고, 이렇게 포착한 이미지를 많이그려서 정교화하고, 여기에 계속디테일을 붙이는 다른 그리기이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장면을 수정하는 동안 콘티는 매번 바뀐다. 그의 영화가 압도적인 디테일은 있지만 전지적인 조감도는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집단적 전승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는 없고, 창작자는 방아쇠를 당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누구의 무엇인지도 매번 마주치는 만물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하고 있다.

오선민 작가는 21년 그림 동화 인류학을 시작으로, 22년과 23년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신화학해석서, 이번 신간까지 만물의 공생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해석한 책과 영화는 다르지만 누구의 무엇이 되는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했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로 235월부터 매주 11회 인문공간세종에서 <달살롱> 특강을 진행했다. 238월부터 35주 연속 북드라망 블로그를 통해 감독의 전() 작품을 배경, 사건, 캐릭터로 나누어 연재했다. 이어 수정을 거쳐 이 책을 썼다.

나는 매주 <달살롱> 특강을 듣고, 매주 북드라망 연재를 읽었던 운 좋은 독자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읽은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봤다. 미야자키의 에세이는 물론, 지브리 먹방, 미야자키의 비행과 숲, 지브리 사람들, 미야자키가 영향받은 작품,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생각, 미야자키가 그린 콘티 모음집이 망라된 책이었다. 나는 그가 받은 인세보다 참고 도서 책값이 더 들었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는 이 책들을 읽고, 정리하며 따로 공책에 수없이 이런저런 도표로 그렸다. 미야자키 감독은 대충 떠오르는 심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오선민 작가도 어쩌다 드는 느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음을, 나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고, 글을 여러 번 썼는데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여러 번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가 처음 <달살롱>에서 했던 생각을 이번 신간에 그대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참고 도서 참조, 특강, 연재, 수정을 거치며 반복해서, 많이, 계속 썼다. 특강, 연재, 여러 책 집필을 통해 인간 이외의 타자까지 경유한 시선으로 계속 탐구했다. 책을 쓰는 동안 만났던 무수한 타자를 통해 그와 신간은 누구의 무엇이 되고 있다. 진행형이다. 이 책이 선보이는 디테일은 그런 시선에서 나왔다. 책은 서점에, 디테일은 이 책에 있다. 만물의 의존에 대한 디테일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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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
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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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열정의 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그 지독함과 감히 견줄만한 열정의 오선민 작가. 활기는 멀리 있지 않아 지금 나의 일상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있어 지금 내가 할 일을 하자. 쓰레기 없는 순백은 없어. 엉망진창 뒤죽박죽 속에서 사는거야. 책을 읽고 그런 장면이 있었나 찾아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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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없는 건축 - 토속건축의 짧은 소개
Bernard Rudofsky 지음, 김미선 옮김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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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없는 건축19643달간 뉴욕 소재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전시회 작품집이다. 건축가 없는건축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원후 1,800년 이전, 5,000년의 건축 역사를 다룬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남짓 건축을 우리가 아는 건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또 다른 건축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건축물은 작가 미상이며 공동체의 공동작업에 의한 것으로서 건축가라는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 현대 건축이 편리, 안전,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방해물(자연환경)을 불도저로 밀어서 평탄화시키고 그 위에 비슷한 유형의 건물을 올리는 것과 다르다. 자연이 만든 지형지물을 그대로 둔 채로 인간이 필요한 것을 이용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환경과 더불어있는 건축이다.

화폐는 조개에서 지금의 전자 화폐로 진보했다기보다 조개로 관계, 화폐로 등가교환을 하는 다른길을 걸어왔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은 지형지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보는 작가 미상의 건축에서, 뭐든 지을 수 있고 방해가 되면 밀어버릴 수 있는 건축가의 건축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다. 건축가 있는 건축이 진보라면 그 전에 있던 건축물은 자연으로 만들어진 동굴로 들어가거나, 보이는대로 나뭇가지 몇 개를 땅에 ㅅ자로 교차시키고 그 위를 대충 짐승의 가죽이나 덮어 씌우거나, 바닥이나 파서 겨우 몸을 보호하던 낙후한 건축이 된다. 건축가가 있고 없고는 자연환경과 더불어있느냐 정복하느냐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산간 오지 높고 높은 곳에 어떻게, 누가, 왜 자재를 나르고 건물을 지었는지 경이롭다. 둘러보면 세상 어디에도 직선은 원래 없다. 곡선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곡선의 자연환경을 직선화하기 이전, 자연과 더불어 있던 곡선의, 아주 오래된 다른 건축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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