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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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감상입니다*

귀신을 몰래 숨겨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수리와 그런 수리에게 종종 잡도리당하는 저승사자 신산. 어느 날 저승사자가 데려가야 할 ‘귀한 영혼’이 사라지고, 둘은 그 영혼을 찾기 위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출입 금지인 회사 8층과 수상한 민 팀장, 대체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까지 하나둘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수리가 늘 끼고 다니는 반지도 계속 궁금증을 남긴다. 복잡하게 추리해야 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이건 뭐지?’ 싶은 요소들을 군데군데 놓아두어 하나씩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하게 만든 것들을 결말에서 흐리지 않고 깔끔하게 닫아주는 점이 좋았다.

귀신과 저승사자가 등장하지만 무섭기보다는 유쾌하고 따뜻하게 흘러간다. 처음에는 ‘도피자들’이라는 말 때문에 어딘가 위험하고 무거운 존재들을 떠올렸지만, 읽다 보면 그들도 저마다 살아온 삶과 생각 이승을 떠나지 못한 이유가 있는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제목의 ‘처마’는 비나 눈, 바람이나 뜨거운 햇빛을 완전히 막아주는 곳은 아니지만 잠시 몸을 피하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다. 완전히 숨어버리는 곳이 아니라, 잠깐 쉬었다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

작가의 말에서 작은 그늘도 누군가가 잠시 쉬었다 더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을 읽고 나니 ‘처마 밑’이라는 공간이 더 좋아졌다. 이곳의 도피자들도 무섭거나 위협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유로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도피자’라는 말은 무거운데, 그들이 숨은 곳은 고작 처마 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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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애장판)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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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감상입니다*


처음 만난 《어리석은 자의 독》. 같은 날 태어난 두 여자, 요코와 기미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길지가 궁금했는데, 읽을수록 사건보다 인물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두 사람뿐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정한 사람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그 사람의 전부가 악한 것도 아니고, 힘들게 살아왔다고 그 선택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나누기보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를 더 많이 생각했다. 처음 받은 인상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흔들리는 것도 이 책의 재미였다.

“가슴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입니다.” p.135

책에서는 독과 약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독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 있다. 독을 품는다는 말은 이해가 된다. 한을 품듯, 독기를 품듯.

그런데 왜 하필 ‘어리석은 자’일까. 그리고 그 독을 ‘유용하게 쓴다’는 건 누구에게 유용하다는 뜻일까.

끝까지 읽고도 답 하나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품고 있는 독도 달랐고, 같은 독도 누구에게는 살아갈 힘이나 약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표지의 화사한 핑크색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예쁜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다시 보니 두 여자와 저택, 소나무, 까마귀까지 처음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내용과 표지가 전혀 따로 노는 게 아니라는 느낌도 재미있었다.


화사한 겉모습 아래, 저마다의 독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문제는 그 독을 어떻게 쓰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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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주에서 ㅣ 트리플 34
최수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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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주에서>에는 [99], [삼각주], [구]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읽히지만, 세 편 모두 누군가를 잃은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군가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기억은 남아 있는 사람의 일상에 섞이고, 때로는 선택에 영향을 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다시 떠오른다.


상실의 감정을 크게 쏟아내지 않는 책.

오히려 설명하지 않는 빈자리로 인해 기억되는 책.

누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두 알려주기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그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세 편 중에서는 [삼각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같은 사람을 기억한다고 해서 함께했던 기억까지 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함께 걸었던 길이, 누군가에게는 나눴던 대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니었던 하루가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이별하는 모습이 유난히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구]에 이르면 책의 분위기도 조금 달라진다. 상실에만 머무르기보다 그 기억을 품은 채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시간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결국 <삼각주에서>는 떠난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책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떠난 사람의 자리는 더 선명해진다.


죽은 사람은 기억 속에 남고, 산 사람은 그 기억을 가지고 계속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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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탑승합니다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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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감상입니다*



처음에는 여행을 싫어하는 작가님의 우당탕탕 출장기라고 생각했다. 

<저주토끼>가 해외에서 알려진 뒤 라의 도서전과 문학축제, 시상식에 초청받아 15개국 32개 도시를 다니게 되는데, 여행을 싫어한다는 사람치고는 너무 알차게 돌아다니셨다. 


초반은 생각보다 유쾌하다. 작가님의 애착 연고가 타이거밤이라는 TMI부터 프랑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공중화장실이 부족해서라는 이야기, 이름부터 강렬한 ‘지옥의 엉덩이 음악’까지. 평소 관심사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저 지금 탑승합니다>는 단순한 출장 에피소드 모음은 아니었다. 

작가님은 출장지에서도 평소 궁금했던 것을 직접 확인하고, 관심을 가져온 문제를 현장에서 바라본다. 베를린에서는 교통약자의 지하철 접근성을 살펴보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성소수자, 전쟁, 노동자 시위 같은 사회의 모습도 기록한다.


이런 문제들을 무겁게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기억한 일들을 차분하게 풀어내서 오히려 잘 읽혔다. 작가님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고, 공부한다는 느낌 없이 내가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됐다.


중간중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저주토끼>표지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다. 특히 프랑스판은 기괴한 토끼보다는 묘하게 우아한 파리의 여성 같은 인상이라 신기했다. 해마다 출장 동선과 그 시기의 정치적·문화적 사건을 함께 보여주는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초반에는 작가님의 TMI와 유쾌한 이야기로 금방 빠져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사람과 사회, 전쟁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쌓이며 생각보다 진지한 책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무엇보다 여행지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보라 작가님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전까지 정보라 작가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면 <저 지금 탑승합니다>를 읽고 난 지금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게 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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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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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사이코패스 소재를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범죄자나 살인마로 감정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괴물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 연구와 연쇄살인, 복수를 위해 대학에 들어온 사이코패스 클로이의 조합이 궁금했다.

음침하고 조용하고 차가운 심리 스릴러를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클로이는 예상과 전혀 다른 소녀.

해맑고 낭창하고 오로지 직진!


대학에 들어온 목적은 복수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대학생활을 잘 즐기며, 심각한 순간에도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 개성의 소유자였다. 찰스가 잘생겼으면 잘생겼다 감탄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겁먹고 물러서기보다 궁금한 걸 쫒아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클로이 덕분에 복수극이 가볍고 쾌활했다.


책을 두 번 읽었지만 첫인상과 마지막에 남은 감상은 그대로다.


‘경쾌한 스낵 복수물.’


클로이가 톡톡 튀는 탄산음료라면 찰스는 묵직한 맥주 같았다.

클로이는 어디로 튈지 몰라도 원하는 게 분명하다. 반면 찰스는 타인을 관찰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속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같은 연구 안에 모이고, 연구와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할수록 의심할 사람도 늘어난다.


‘사이코패스니까 의심스러운 건가?’


범인을 추리하면서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이코패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판단할 수 있을까.

추리 스릴러 자체는 조금 아쉽다. 사건과 살인 방법은 기발하고 여러 인물이 의심스러워 범인을 맞혀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범인에게 도착하는 과정은 그만큼 치밀하지 않아 앞선 사건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쾌감은 부족했다.


가벼운 것과 허술한 건 다르다.


경쾌한 스낵 복수물이라는 색은 좋았는데, 사건까지 스낵처럼 후루룩 끝나버린 느낌이지만, 사건보다 클로이와 찰스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책을 두 번 읽었는데도 아직 이 둘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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