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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 제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이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7월
평점 :

에세이인데, 꼭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의 문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다.
마치 휘몰아쳤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 잔잔해진 뒤, 그때의 일을 하나씩 꺼내놓는 것 같다.
"아버지는 무연고로 죽었다." p.12
이 한 줄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는 내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주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남기지 못한 쪽에 가까웠다. 감당 못할 빚이 생겼고, 그 뒤로는 도망치는 삶을 택하고 사라졌다. 주민등록은 거주지가 불명으로 말소 처리되었다." p.15
마치 드라마같은 내용.
내가 직접격지 못한 일이라 빚때문에 도망가는 이야기로 인해 더욱 소설 같이 느껴진 것 같다.
"'무연고'는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었다. 처리를 위해 붙이는 말이었다. 서류는 내 이름을 요구했다. 마지막 연고가 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듯." p.17
'무연고'라는 단어를 보면 막연하게 외로운 죽음, 주변에 아무도 없이 떠나는 죽음만 떠올랐다.
하지만 책으로 만나는 '무연고'는 다르게 보인다.
담담하고 차갑지만 그 안의 또 다른 감정이 들어있는 단어같다.
"아침엔 당뇨약. 저녁엔 혈압약. 그리고 그 아래, 마지막 줄.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p.18
아들이 찾아간 아버지의 마지막 주소.
방 안에 남아 있던 로또 용지에 적힌 짧은 메모.
글은 담담한데 이상하게 먹먹했다.
일부로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는 글이 아닌데도,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조용한 글인데 왜이렇게 가슴이 먹먹할까?
"내가 안고 온 건 내려놓을 수 있는 무게였는데, 아내가 품고 있던 무게는 길었다." p.25
책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읽을수록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까지 나를 비롯한 가족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
특히 어머니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자꾸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병원은 돌발성 난청으로 청력이 일부 소실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귀 안의 삐 소리와 울림까지 안고 하루를 이어 붙였다." p. 39~40
그 뒤 보청기를 끼고 난 뒤 어머니가 한 말.
"이제...... 말해도 되겠다." p.40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갑자기 눈물이 났는데, 글로는 표현할 수없는 그 감정이. 진짜...
엄마가 보고싶다.
글은 2025년에 봤던 〈폭싹 속았수다〉를 떠오르게한다.
그 드라마를 볼때도 거창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감정으로 인해 펑펑 울었는데, 이 책 또한 펑펑 울게 만든다.
거창한 사건보다 이런 짧은 한마디. 담담한 문장에서
"나는 피할 곳이 없어." p.57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싸웠고, 그 후 집을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내의 말.
짧은 한마디인데도 얼마나 막막했을지 그대로 전해졌다.
묘한 책이다.
계속 담담한 문체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담담한 문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읽고만 있는데도 내가 그 상황을 함께 겪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을수록 아버지가 왜 마지막 메모에'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라고 남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의 무릎에서 흙을 털어주는 법, 넘어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법을, 끝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법을, 마땅히 우리의 연고가 되어 있었다." p.191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어머니를 담고, 아내를 그리고, 아이들을 품는다.
평범한 가족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야기인데도 어느 순간은 내 이야기 같았고, 우리 가족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됐고, 더 오래 여운이 남았다.
'무연고'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