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나에게 두 가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 가지는 감정 영역(affective domain)이 인지 영역(cognitive domain)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감정이 이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편에 좀 더 기울었다는 것이다(임용고시를 준비한답시고 공부한 내용을 이런 곳에 써 먹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내가 부경 아고라에서 활동을 중단한 뒤,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부경 아고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세력이라고 칭하는 이들을 더욱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둘 다 특별한 일이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다. 항상 그랬듯이 모든 일에서는 무슨 요소든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모호함 때문에 오는 짜증과 불안을 없애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이성과 감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확고한 결론을 내린 마당에, 한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봤자 뚜렷한 차이는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약 넉 달 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부경 아고라를 내가 무조건 감싸고 돌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부경 아고라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 요소와 헛점들을 내 나름대로 열심히 비판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는, 나름대로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프고 쓰리더라도 인정하고 가자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내부 비판자'로서 구실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맨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일이 특별하다고 굳이 강조한 까닭은 분명히 있다. 촛불 예비군 카페에서 부경 아고라로 일터를 옮긴 뒤 부경 아고라에서 추진하는 일에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하면서, 부경 아고라에 쏟아지는 여러 가지 비판을 반박하고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부경 아고라뿐만 아니라 지금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대전환이 일어난 근본 까닭이 중요하다. 그 근본 까닭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매우 길기 때문에 핵심만 말하자면, 맨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감정 문제이다. 예전에는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부경 아고라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경 아고라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판'이라는 개념 속에는 좋아하는 감정과 싫어하는 감정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 내가 지금 부경 아고라에 품은 감정은 싫어하는 감정에 속한다. 

 

이성에 따른 같은 비판이라도, 비판 대상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 보일 수 있다. 심지어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이 보여준 행적에 따라 비판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토록 거부했던 논리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토록 신봉했던 논리를 한 순간에 짚신짝 내팽개치듯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감정이 이성에 미치는 영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 가운데 한 가지이다.

 

일단 다행히 앞 문단 뒤에서 이야기한 그런 극단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부 비판자'로서 부경 아고라를 비판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뒤 앞으로 내가 내놓는 부경 아고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외치는 세력 자체에 내놓는 비판은 예전과는 분명히 뭔가 다를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부경 아고라 안에서 내가 그렇게 강조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그토록 이성을 신봉하던 나로서는 굉장히 실망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쏟아내는 비판은 객관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동안 쏟았던 애정만큼 상처도 굉장히 컸을 뿐만 아니라 미련을 버리기도 굉장히 어려웠기에, 그런 걱정은 더욱 크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어쨌든 간에 부경 아고라에서는 내가 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라고 해도, 한 번 상한 감정이 그 사실을 인정하도록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감정이 상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실천 활동을 그만 둔 것이다. 한 성인으로서 사회에서 자립해야 한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좋은 핑계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 핑계를 댄다고 해서 내가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상쇄시킬 수는 없다. 정말 내가 이성에 철저하게 따른다면 다시 운영진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부경 아고라를 정말 제대로 개편해 보겠다는 의지에 따라 그 제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그토록 비난하던 현실에 무작정 복종하는 대학생이 되어 취업 준비에만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그토록 당당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 비참함과 굴욕감은 2주 가까이 나를 괴롭혔다. 그 때문에 괴로워한 기간이 그나마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격렬한 수치심과 굴욕감을 간신히 달랜 뒤에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 덕분에 얻은 장점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부경 아고라뿐만 아니라 지금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논리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상황을 좀 더 객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여러 가지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부경 아고라 종합 분석 & 평가 보고서'를 쓸 때 거기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그 주장 하나만으로 수구 세력이 주장하는 모든 논리를 헛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광우병 논란에서든 국가보안법 논란에서든 어느 세력이든지 헛점은 지니고 있었고, 그 헛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지적에는 대개 반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때는 보통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당위론을 강조하면서 그 중요성을 흐리게 하는 임시방편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나는 그런 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오로지 논리에 따른 최소한 균형만 추구하는 이론 체계를 만들고자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그런 방대한 체계를 제대로 세우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일한다는 대의명분을 지닌 채 쉴 새 없이 변하는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새로운 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도 벅찼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느낌을 감추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야기한 '구경꾼'이라는 개념을 대학교 1학년 때는 나름대로 내 삶에 충실하게 적용했지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강하게 사로잡혀 그에 따라 행동하면서, 분명히 뭔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이때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 잃어버린 것은 '구경꾼'으로서 바라보는 시선만이 알아낼 수 있는 온갖 모순을 객관으로 파악하고 지적하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그런 구실을 정말 잘 해냈던 인물이 다치바나 다카시였으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그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류비셰프도 소련 과학계에서 그런 구실을 맡아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온갖 비판에 맞서 꿋꿋하게 싸워 나갔던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로는 한국이 낳은 저명한 경제학자 가운데에서는 장하준이 그런 구실을 하고 있다. 세계 경제학계에서도 폭넓은 실증 연구와 균형 잡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으로써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장하준 교수이건만, 최근에 와서 매우 크게 주목받고 있기는 하더라도 예전에는 지금만 못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있는 수구 세력은 장하준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뿜어내는 강한 비판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수구 세력을 타도하자고 일어선 사람들도 장하준이 제시하는 논리를 모두 인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장하준이 자기는 개혁에 관해서는 분명히 '우파'라고 밝혀서 그런지 몰라도 재벌 개혁 방식에 관한 논란, 박정희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논란 따위에 관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민주주의 운동 세력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정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인터넷에서 여러 서평이나 독후감을 읽어봐도 앞에서 이야기한 그 정설에 부합하거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들만을 골라 부각시킨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파'에게 유리한 것은 무시하는 것 같았다. 곧 앞에서 이야기한 '헛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지적'에 관해서는 반격에 나서기 싫어하거나 미처 반격에 나서지 못하는 바람에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는 전술과 유사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분명히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한민국에서 흔히 말하는 좌우 논쟁이나 케케묵은 이념 대립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 틀을 버리고 조금 복잡하더라도 가장 시대상에 잘 들어맞는 유연한 틀을 확립해야 하는 것만이, 쓸데없는 논란 따위는 끝내고 장하준 교수가 이 책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배우려면 가려서 제대로 배우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포장한 논리가 지닌 허구성을 깨닫고', '극심한 대립만 고집하지 말고 타협을 이루려는 자세'를 지닐 줄 알아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그것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보호무역을 잘못 써서 실패한 나라는 있어도, 보호무역을 쓰지 않고 경제 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모든 나라들은 경제 성장을 시도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강력한 보호 무역을 추진하였고, 경제 성장에 성공한 뒤에는 자유 무역을 주장하였다. 이는 모든 나라가 보여줄 수 있는 흔해빠진 위선이다.

 

2.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는 절대절명 추진 과제인 세계화는 진정한 세계화가 아닌 '영미식' 세계화일 뿐이다. '영미식' 세계화가 불러오는 폐단이 이미 대한민국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므로, '영미식' 세계화가 아닌 '대안적' 세계화를 모색해야 한다.

 

3. 자유 무역을 부르짖는 경제 선진국들은 보호 무역을 강력하게 주창하였던 과거를 일부러 없앴다. 대한민국은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세계화'라는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된 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한국 체질에 맞는 경제 구조를 확립하고자, 영미식 자본주의만이 아닌 여러 가지 대안을 함께 비판하면서 검토해야 한다.

 

4. '작은 정부' 신화는 이미 오래 전에 깨졌다. 시장 만능주의를 버리고 시장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장 실패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적극으로 개입해야 한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강대국들이 다른 나라에서 더 많은 수익을 짜내고자 내세우는 허울 좋은 이념일 뿐이다.

 

5. 세계화 덕분에 국적이 없다는 '초국적 자본'이나 국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외국인들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관련된 나라들이 손을 쓰게 되어 있다. 엄연히 국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포장 아래 퍼뜨리는 거짓말을 믿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국내 제도와 관행이 이치에 맞게 개선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6. 기존 제도와 관행을 완전히 깨부수는 것이 개혁이 아니다. 기존 제도와 관행이 지닌 좋은 점을 살리고 나쁜 점을 없애는 장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그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지금 극도로 대립하고 있는 세력 사이에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하준 교수가 주장한 이대로 대한민국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강한 호기심 또는 극렬한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신비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 맨 마지막에 나오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한국파의 괴로움'이라는 사설에 장하준은 그 현실을 간결하게 잘 설명해 놓았다. 군대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으면서 실증 자료에 따른 명쾌한 분석에 저절로 탄성을 내뱉었으면서도, 그 탄성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지금까지 내가 잊고 있었던 길을 걷고 있는 자에게서 나오는 하소연이다. 쉽지 않다 하더라도 나도 앞으로 그런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설은 거의 한 결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흔히 극도로 대립한다고 알려져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사들과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신문사들이 모두 신문에 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내용이 같더라도 시간 차이가 있다면 사회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차이라는 것도 김대중과 노무현이 집권하고 있던 1999 ~ 2004년 사이에서 나타날 뿐이니, 정권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뜻 깊은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어느 신문이든지 앞다투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데 장하준 교수가 제시하는 견해를 이용했다는 뜻이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실증 연구에 충실할 뿐인 객관으로 바라보는 이가 신기하게 비춰지고 온갖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기묘하고 복잡하게 비틀어져 있는 한국 논쟁 지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지금까지는 그 논쟁 지형을 뚜렷하게 분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부경 아고라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그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객관성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던 온갖 현상과 논리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앞으로 가만히 두고 보고 있기만 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객관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한들 대한민국이 지금 절대절명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참담한 현실은 민주주의에 관한 소양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있고 사회 현상에 어느 정도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깨닫지 못할 까닭이 없다. 한 성인으로서 사회에서 자립해야 하는 최소 조건을 갖추고자 일단은 잠시 물러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마저 외면하지는 않겠다.

 

2008년에는 썩어빠진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벅차 그토록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내 능력과 한계를 깨달았으니, 2009년에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 능력과 한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야 한다. 해야 할 일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일에 내 모든 것을 걸면 그만이다. 새해에 이런 큰 깨달음을 준 장하준 교수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리셋할 때 필요한 62가지 플러스 발상법
혼다 신이치 지음, 신주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2010년 중등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공 원서 몇 십 쪽과 영어회화 모임 말고는 그다지 한 게 없다. 이제 졸업까지 1년밖에 남지 않았으니 졸업 학점도 채워야 하고, 다른 동기들에게 견주었을 때 절대 좋은 편이 아닌 학점도 어느 정도 끌어올려야 한다. 곧 이번 겨울방학과 2009년 여름방학 때 말고는 임용고시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그다지 한 게 없다는 평가를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으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온갖 논리를 들이대면서 애써 억눌렀던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토록 혼신을 다했던 온갖 일이 어떤 뚜렷한 성과라도 나타냈다면, 그래도 지난 시간을 그렇게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는 보람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해를 결산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부족했는지만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며, 그렇게 깨닫는다고 해서 새해에는 뭔가 달라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한 일 덕분에 어떤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토록 강조했던 자기 관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며 거리 위에서 목청 높여 외쳤던 처참한 대한민국 공교육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주장들은 거의 모두 공염불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민주주의 가치는 2007년 12월 19일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일했던 단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도 실패만 거듭했고, 마지막으로 몸을 담았던 단체에서는 격렬한 충돌 끝에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만 남기고 활동을 접어야 했다.
 
임용고시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좋은 구실이 생겼으니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가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기왕이면 뭐라도 성과가 분명히 나타나고 내가 그에 만족했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이런 자괴감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안 그래도 현실이 얼마나 험난한지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면서 내 등에 짊어져야 할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그 부담을 짊어지고 버티는데 필요한 힘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생기는 자괴감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계획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불안이 빼앗아 가고 있다.
 
이런 자괴감과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어떻게든지 내 삶은 만족스러웠다고 인정할 수 있게 근거를 대는 것, 흔히 말하는 '합리화'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지니고 있는 단점을 내가 너무나도 싫어하기 때문에, 방법을 안다 하더라도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죽음을 피하려고 발버둥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벗어날 수 없는 이치를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다'라는 자조 섞인 말이 지니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에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합리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삶에 책임감을 지니고 더욱 열심히 살기 시작할 때부터 더욱 열심히 내 삶이 지니고 있는 뜻을 찾고자 애썼다. 그 뜻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을 규정하고 행동하면서, 그 모든 것을 내 삶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근거로 삼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행동을 하는 근거가 된 원칙들은 이 책 '마음을 리셋할 때 필요한 62가지 플러스 발상법'이 제시하는 것들과는 거의 정반대였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만족하지 말 것, 자기를 칭찬하지 말고 항상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더라도 시간만 알뜰하게 쓰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하고 싶은 일이라면 능력껏 시도해 볼 것……이 말고도 원칙은 많은데, 지금까지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나는 매우 괴로워했다. 
 
제목이 '마음을 리셋할 때 필요한 62가지 플러스 발상법'이라고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가운데 하나가 눈 앞에 다가온 만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도 더 크다. 지금까지 내가 세웠던 원칙은 나에게는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가 되었나 보다. 원칙대로 이루어진 것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고,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야 할 20대에 이렇게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까닭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삼았던 것들, 곧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과는 정반대이니 말이다.
 
좋든 싫든 계기는 만들어졌고, 예전에 내 삶을 통째로 뒤바꾼 2004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자 내가 어떤 자세를 지녔는지 돌이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2003년에 내가 발휘했던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끌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나에게 '마이너스'였던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플러스'가 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이 책에서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세 번 읽어서 겨우 몇 가지를 깨달았을 뿐이지만, 그 효과는 나름대로 크다.
 
하지만 여기에서 '플러스'라고 제시하는 것들은 지금까지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안이한 자세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상처투성이인 몸과 마음을 바로잡고 새로운 힘과 열정을 끌어내는데 활용하지만,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면 다시 내가 지금까지 지켰던 원칙을 끄집어내서 적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때쯤이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조화를 이루어서 예전보다 균형이 더 잘 잡힌 안정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 글을 마무리짓는 이 순간부터 이 쓸데없는 자괴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면 그 일을 하는 데만 온 힘을 쏟으면 그만이다. 가훈인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늦은 밤에 되새겨 본다.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자. 도시락을 싸자.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나오지 말자. 단순하지만 이 따위 원칙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해서, 한심하게도 자책만 일삼았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원칙을 지키며 내 자신에게 떳떳해지자.
 
 
 
<마음을 리셋할 때 필요한 62가지 플러스 발상법>
 
 
1. 자신감을 갖는 방법
 
 
‘하고 싶은 일’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각해두자!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주문을 마련하자
인생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
이번에야 말로 꼭 잘 된다
집착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힘든 오늘’에서 ‘밝은 내일’이 생겨난다
아침형 인간이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간다
마음을 일구는 나만의 장소가 있는가?
걷다 보면 어깨 힘이 자연스럽게 빠진다
지금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2.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는 사고법

 
먼저 ‘잘 되는 일’부터 시작하자
언제까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만 있을 것인가?
‘바보 같은 자신’을 즐기는 사람, 혐오하는 사람
싫어하는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자신에게 없는 것은 탐하지 마라
인생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도망쳐도 괜찮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왜 ‘나다움’이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때로는 삶의 무대를 확 바꿔보자
 
 
3. 마음을 키우는 사람, 마음을 괴롭히는 사람

 
‘왜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자책하지 마라
잘못은 언제나 내 탓인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꾸짖지 마라
마음이 메말랐을 때의 처방전
그릇이 큰 사람은 일처리 방법도 다르다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욕심은 이렇게 버리자
마음의 상처는 건드릴수록 악화된다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효과 있는 6가지 충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힌트
 
 
4. 인간관계를 아주 조금만 변화시켜보자

 부모와의 관계, 문제없는가?
자신도 타인도 희생시키지 마라
농락당한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지켜주자
대화 상대를 만드는 방법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정당했다면……
스스로를 믿고 살아가자
애정이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부부는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에 성숙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기회
이런 단정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자신의 성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 즐기지 못하는 사람

 
 
5.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면 사는 것이 훨씬 편해진다
 
 
취업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저것 헷갈릴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오늘은 쉬자. 기분이 좋아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사표 제출의 조건
리더쉽은 이렇게 생각하자
취직?이직의 ‘성공 지도’를 갖고 있는가?
매스컴에서 일에 대한 힌트를 얻지 마라
‘남자들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시스템이다


 
 
6. 인생은 마음만 풍요로우면 된다
 

먼저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부터 생각하자
인생은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줄어든다
혼탁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은 맑아질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뿌리를 내리자
이 ‘룰’을 지키면 틀림없다
어차피 기도할 거라면 모든 신에게 부탁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인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어 옮김 / 창비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에는 배움을 사람의 도리로 익히며 성격을 도야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에 치중했다. 옛 사람들은 지식보다도 마음가짐을 중요시했고, 처신하는 법이 피와 살처럼 몸에 배도록 노력하였다. 배운 사람이 존경받았던 이유도 지식뿐만이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단련된 사람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로 볼 때 지금의 학문은 좀 씁쓸하게 여겨진다. 공부나 연구도 성격 단련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답안지로 정답인지 아닌지만을 판정하는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오카다 다카시 지음. 유인경 옮김. '나만 모르는 성격'. 5쪽

 

 

학생을 성폭행한 교사도 겨우 정직에 그치는 마당에,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가정 통신문을 보낸 전교조 교사 7명이 무더기로 해임되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학원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고자 입시 지옥을 장려하는 공정택 서울특별시 교육감에게 선거 자금 가운데 7할 정도를 지원했지만, 검찰은 손도 대지 않았다. 공정택 교육감은 사과 한 마디도 아쉽다는 듯이 고개 한 번 숙이고 자기 멋대로 교육을 망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곧바로 주경복 전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 출마자에게 선거 자금을 댔다는 혐의를 들이대며 전교조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이라는 난데없는 단체는 개인정보관리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엉터리에 가까운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하면서, '사교육을 조장해 대한민국을 도탄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 반국가교육으로 친북 좌파 세력을 양성하는 무서운 빨갱이 집단'을 척결하겠다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이미 수 십 년 동안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며 썩은 똥에 모여드는 파리와도 같이 사익을 열심히 챙기는데만 몰두했던 이들이다. 수 십 년 동안 사회 전방위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교육과 언론으로써 민중을 세뇌시킨 이들이다.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가면서 조금이나마 일궈놓은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그들은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이 펼치는 집요한 공세를 견디지 못했다. 그 비극이 2008년 한 해를 선진화와 세계화와 법치라는 탈을 쓴 야만과 횡포와 폭력으로 물들였다.

 

그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그들에게 맞서 싸우고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결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교육 분야에서 내 전공을 살려서 일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용문 뒤 맨 처음 문단에 약간 길게 썼듯이 그들 또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교육마저 자기 입맛대로 하고자 줄기차게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현실을 알고 있는 예비 교사로서 절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교육 현장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거둘 수는 없었다. 희망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무리들에게 아이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며, 그 순간 정말로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말 것은 분명했다. 내가 아무리 온갖 고민과 좌절 때문에 힘들고 괴롭더라도, 이 따위 나약한 모습으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생각과 전혀 다르게 지내는 내 모습을 가차없이 비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또 힘을 잃고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뒤에 헛되이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계속 그렇게 악순환만 이어지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뇌가 멈춰 버린 듯한 그 느낌이 그렇게 끔찍한 것인 줄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생각했다. 답은 분명했지만 그 답까지 다시 이르는 과정에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을 항상 일목요연하게 잡아낼 수만 있었다면 이미 천재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난데없는 생각들이란 게 주로 이 사회와 관련된 온갖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연결하면서 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가운데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우리는 근본에서부터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맨 앞에 인용한 글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 앉아서 오로지 주입식 교육만을 강요당한 옛날 학생들은 시대를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렸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로지 국가에 충성하는 산업 역군으로 거듭나 국가가 장려하는 대로 뼈 빠지게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만들어 놓은 국가는 분명히 물질 자체는 예전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후대가 그 덕을 분명히 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물질만 풍요로웠지 정신은 너무나도 심하게 썩어빠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풍족해진 물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실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온갖 폭압과 부정을 못 본 척하며 그저 조용히 밥만 먹고 살았던 이들은 물질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국가를 찬양했다. 하지만 현실에 의심을 품고 사회 전반에서 국가가 저지르는 폭압과 부정을 깨달은 뒤, 그에 맞서려고 한 이들은 모두 가혹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게다가 국가가 만들어 놓은 충성스러운 역군들에게서도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집회, 표현, 사상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현실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말이 뜻이 없어질 만큼 이 사회는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인 교육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손아귀에 넣고 자기들에게 충성하는 샛노란 새싹을 기르고자 발악하고 있다. 수구 친일 세력이 주도하는 현대사 특강과 4.19 '데모' 동영상 배포 따위가 최근에 벌어진 그 천박한 사례이다.

 

어쩌면 그들도 천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아 그토록 달콤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 낸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희생자라고 해서 자기들이 저지르는 만행이 어쩔 수 없는, 심지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부와 권력 앞에 충성하는 앞잡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부조리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나 모두 같은 국가에서 같은 입시 지옥 속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세상으로 나왔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교육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내용 또한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지닌 교육에 관한 생각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교육 과정에서 배운 바른 생활, 도덕, 윤리 같은 과목 이름과 그 과목이 요구하는 지식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비판할 줄 모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원인을 뿌리뽑아야 한다.

 

그 방법을 아마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엮은 박희병 교수는 동아시아 사상 전통 속에서 근대를 넘어서는 생태주의 대안을 모색하다가, 자기 학문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가 온통 서양 근대학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 자각과는 상관 없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박희병 교수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통한다고 본다.

 

서양 근대학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형식 논리 가운데 하나인 'A=A이고 B=B이다'와 다르게 동양철학에서는 'A=B이고 B=A다'라는 변증법으로 표현한다. A와 B를 각각 앎과 삶이라고 치면, 바로 결론이 나온다. 이는 박희병 교수가 머릿말에서 적어놓은 '공부의 활법(活法)', 곧 몸과 마음으로 동시에 깨닫는 공부와 통한다. 공부는 특별한 것이거나 어떤 것을 얻고자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사람답게 살려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논리가 교육과정 속에서 반영되어 있는 현실성 없는 이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학생들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단 앎과 삶이 분리되도록 철저한 주입식 교육만을 강조해서, 아무리 정의와 법과 윤리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진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그런 것들을 지키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받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교육 환경이 철학이라는 근본에서부터 조금씩 개선되자, 수구 세력은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교사와 학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남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경쟁으로 내몰아, 비판할 힘도 없을 정도로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들게 했다. 그리고 설사 뭔가 깨닫더라도 사회 자체가 그런 이들이 하는 저항을 비난하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길들이고 교육시킨다. 그마저도 무시하고 투쟁에 나서는 이들은 '정의로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짓밟았다.

 

아무리 학생들 개성을 살리고 존중하는 쪽으로 개편된다는 허울 좋은 구실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앎과 삶이 연결되지 않고 분리된 사람들이 짜는 교육과정은 그 본질 자체가 추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리 바뀌어도 진정한 교육이 지니는 이념을 실천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인재(?)들이 과연 교육이 추구하는 근본 이념인 올바른 의식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주장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띨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전달하겠다고 하는 여러 가지 지혜 또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흔해 빠진 것이다. 그런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다 하더라도 그 지혜와 삶을 꾸려가는 주체인 자기가 온전히 하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현실을 깨닫고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평생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끊임없이 찾아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 책은 그저 읽은 뒤에 그냥 자기가 뭘 좀 아는 체 하려고 할 때 읊을 구절이나, 궤변을 늘어놓을 때 필요한 좋은 소재를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배우는 자세에 관해 설파하는 학자들이 모두 현실에서 도리를 지키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곧 누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하려는 자세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분명히 긍정할 만한 점도 보여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때까지 어떤 종교도 한국 고대사와 중세사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극렬한 배타성을 보여주었다. 그 배타성은 정치에서도 줄곧 이용되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고상하고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예비 교사에서 교사로 새롭게 거듭나려면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임용고시와 사범대 가산점을 놓고 지난 2004년과 2005년에 서울과 부산에서 그토록 열심히 거리를 걷고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 바뀐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었고 나도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할 형편에 처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예비 교사들도 무한 경쟁에 시달리면서, 오로지 임용고시 준비만 죽어라 한 뒤에 교사가 된 이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문제점을 이 책이 주는 깨달음과 연결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앞으로 내가 임용고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공자

2.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몸으 다스린다 - 대학, 중용

3. 학문이란 안에서 찾는 것이다 - 정자

4. 공부하는 사람은 기가 가벼워서는 안된다 - 장자

5. 공부는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 - 주자

6.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의 공부가 된다 - 왕양명

7. 학문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데 비유할 수 있다 - 이황

8.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 서경덕

9. 경은 학문의 시작이요 끝이다 - 조식

10.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 이이

11. 훌륭한 스승을 만나려면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 이익

12.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 홍대용

13.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이 천하에 미친다 - 박지원

14. 학문은 천하의 공변된 것이다 - 정약용

15. 글쓰기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 김정희

16. 상등의 학문은 기로 듣는다 - 최한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 3.0 - 김광수 소장이 풀어쓰는 새시대 경제학
김광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보다도 현실을 더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자가 풀어내는 솔직한 개혁담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2004년 4월 15일부터 류비셰프가 26세부터 평생동안 썼던 시간 통계법을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너무 많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라는 얇다면 얇고 내용도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책 한 권을 달랑 손에 쥐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체조차 드러나지 않은 시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류비셰프가 성공했으니 나라고 성공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었다. 일단 내가 처음에 파악한 문제는 수학으로 접근해서 생기는 변수 문제였다. 처음에는 몇 가지 안 되는 초기 조건이 너무 민감해서 시간 기록이 어려운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동안 기록하면서 내용을 분석해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예상보다 변수가 너무 많은 비선형 방정식이 시간 통계법 안에 숨어 있었다. 그 해를 찾아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 해를 찾고자 나는 대학교에서 보낸 2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러다 보면 두 해 안에 뭔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수 천 년 동안 나보다 훨씬 발달한 지성을 지닌 셀 수 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매달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남긴 시간을, 그 보잘것없는 시행착오로 모두 파악해 보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유치한 젊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치기였다. 해를 찾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나는 변수를 고려하는 작업에도 엄청나게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한 달과 한 해를 결산할 때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못 찾아낸 것 같다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에 시달리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을 뒤져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구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기록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토론할 이도 찾을 수 없었다. 류비셰프에 관하여 내가 구할 수 있는 자료는 오로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라는 책 한 권뿐이었다. 이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얻어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은 너무 많았다. 일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숨만 쉬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공들여 쌓은 것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처음부터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은 계속 진행되는데 무엇인가 계속 어긋나고 있다면, 분명히 시작이나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했던 일을 침착하게 돌이켜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헛된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일과 시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는 일은 일단 그만두기로 했다. 작업 효율과 겹치는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까지 나름대로 고안해서 써 봤지만, 자기를 관리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는 일을 그만두자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가장 근본에 가까운 문제는 숫자나 방정식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전개념과 원개념 같은 추상과 현실 논리를 이어주는 방식을 설명한 '수량화 혁명'이나 '수학 유전자' 같은 걸작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숫자나 방정식을 고친다고 해서 내가 쓰고 있는 방법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하나만큼은 분명히 옳다고 생각했다. 류비셰프가 뛰어난 통계학자이며 유물론자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 셈이었다. 그런 특성을 지닌 그는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했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한 가지 편견에서 벗어난 뒤 나는 내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시간통계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면서도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베르나드스키가 스물 세 살에 쓴 글에 나오는 것처럼 '지혜와 지식, 재능을 가능한 많이 쌓아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지식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말 그대로 공부뿐만 아니라 일, 사랑, 놀이, 체력, 운동 따위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잘 챙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닌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일생을 구성하는 시간도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결국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것은 되도록 높은 효율이다. 그것은 주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제대로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나는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단순히 시간만 기록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심지어 뭔가 잘못되었거나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시간을 기록하는 데만 매달렸을 뿐 자기 반성에는 소홀히 했다.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시간 기록 방법을 알아내고 체력을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실행 과정일 뿐, 그 실행 과정이 내 삶 속에서 밀도가 더욱 높아지는데 필요한 열정과 의지에 관해서는 연구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때서야 그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닌 인생 철학과 진지한 성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나이 24세. 아직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정신 속에서 인생 철학이 여물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진지한 성찰만큼은 어설프게라도 흉내나마 내 볼 수 있었다. 그런 성찰에 도움이 되고자 수많은 책을 잡히는 대로 무작정 읽었으며, 그 가운데 이 책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는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에게 왜 가장 유익한지는 뚜렷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 책을 몇 해 동안 계속 읽으면서 답을 찾기는 찾았다. 평범해지면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 사라지는 것이 왜 가장 우리에게 이로운지는 분명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욕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야 했다.

 

그 욕심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완벽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그 지식인은 류비셰프와 같이 같은 시간 안에 되도록 많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간 기록이 아닌 시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마음가짐과 철학이다. 1분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현실로 옮기려면 주의를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쓸데없는 일에 쏟아붓는 에너지, 어제와 내일에 쏠려 있는 에너지를 모두 자기가 살아있는 지금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 그 날 하루가 주는 것을 되도록 많이 이용하는데 필요한 집중력과 의지가 생긴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실수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정확하게 지적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지 계획을 세우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할 일이 없으면 실행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 그 시간 자체는 보람이 있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 어제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며, 오늘 써야 할 힘을 내일을 상상하는데 써서 결국은 힘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단순히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모두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류비셰프가 그 사실을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듯이 나도 결국 그랬다. 내가 시간통계라는 작업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업을 하는 자체가 보통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부족하기에 괜한 시간을 더 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업인 시간통계 방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네 가지로 나눠 그에 따라 시간을 기록하고, 내가 얼마나 하루를 가치 있게 보냈는지 계산했다. 굳이 분류 기준에 이름을 붙이자면 제 1 업무는 학술 업무, 제 2 업무는 생활 업무, 제 3 업무는 사교 업무, 제 4 업무는 생존 업무이다. 지금까지 제 1 업무를 뺀 나머지 시간에는 매우 적은 가치를 두었다. 특히 3-3, 곧 사교에 쓰이는 시간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제 3 업무가 지니는 가치는 자기가 어떤 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곧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거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이를 만나면, 그 시간은 가치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런데도 나는 유난히 사교에 들어가는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기록하는데도 주저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는 사교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이 매우 많으면서도 말이다. 결국 사교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훌륭한 이들을 따라가야 하며 훌륭한 이들이 나를 보고 쓸만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스스로 수양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을 돌이켜 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수단이,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명상이다. '선물'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현재에 집중하여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자 힘쓰는 방법을 명상과 수행이라는 방법으로써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선물'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아서 읽고도 그다지 큰 감동이 없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가슴에 팍 꽂힌다는 말이 적절했다.

 

되도록 늦추라고 하는데도 나는 이 책을 계속 뒤적거리면서 읽었으니, 그저 저자가 말하는 수준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책 읽고 글 쓰기에 아주 좋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가을이 온 만큼 명상을 한 번 해 볼 만도 한데, 명상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명상을 할 시간에 글 한 편을 더 쓰겠다고 생각하는 판이니 말 다 한 셈이다. 이 책을 나는 과연 제대로 이해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곧 고쳐먹었다. 시간통계가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명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대로 차분하게 열심히 일하고자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성과는 보잘것없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굳이 보잘것없다고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물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 지옥에서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는 악한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그 때는 다시 이 책을 찾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 글을 마치는 순간만큼은 정말 차분하고 평온하다. 명상이 주는 기쁨에 빠져든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