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 개정판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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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지만 시작이 반이다. 무슨 글을 쓰려고 하든지 일단 쓰기 시작하는데 성공하면, 그 뒤에는 어떻게든지 쓰게 된다. 지금까지 이 두 문장을 썼으니 이제 이 글 한 편은 어떻게든지 완성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글 한 편 쓰지 못하던 나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다.

물론 글을 아무리 많이 쓰고 내가 올곧은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아무리 선언해 봐야, 결국 본질이 혼돈인 자연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미물로서 스스로 끝없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천명한 이성에 따라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최소한 존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을 것이며, 나는 그 조건을 글쓰기로 여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지 뭐라도 쓰려고 애쓴다.


하지만 몇 자도 쓰지 않아 바로 키보드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춘다. 벌써 지쳐버린 것이다. 지난달에 '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 - 자살한 교육학과 학우를 추모하며'를 쓰면서 밝혔듯이, 언제까지 사회를 비판하는 글만 쓰면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아무리 사회를 비판해 봤자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며 민중을 힘들게 하며, 사회를 좀 더 많이 알아갈수록 사회에 비판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내가 실제로는 난도질당해야 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 현실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나를 괴롭히며,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민으로 자리 잡은 채 나를 꽁꽁 옭아맸다. 거대한 괴물 문어가 휘감은 여객선이 아무리 동력 장치 출력을 높여도 문어에게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잠겨드는 것과 같다.


에미넴이 'If I Had'에서 주절거린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자면 글 쓰는 것 말고도 어딘가에 지쳤다는 말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살고 있다. 너무 많이 지쳐서 몸과 마음이 모두 내 실제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늙어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젊게 살아보려고 한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지치고 힘들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힘을 낸다. 그렇게 낸 힘은 온몸을 타고 돌면서 구석구석을 칼로 벤다. 거악에 맞서 싸우는 인물이 겪는 좌절과는 전혀 다른 좌절이 나를 휘감는다.


침묵과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에 저항하다 지쳤다고 해서 사랑을 할 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몸과 마음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쇠해져 버렸다. 사랑하는 그녀에게는 나이가 나보다 겨우 두 살밖에 많지 않으면서 늙었다고 한탄하지 말라고 간절하게 다그쳐 놓고, 정작 그런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수 십 년을 평지풍파 속에서 보낸 볼 장 다 본 늙은이와 같다고 봐도 좋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도 찾아보기 드물다. 제발 상처가 많지만 정말 고운 그 마음을 나에게 열어달라고 부탁해 놓고, 정작 나는 그녀에게 내가 마음을 닫고 있는 까닭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것도 기가 막히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 어이없는 일도 전부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회피하는 비겁한 짓일 뿐이라는 비난을 애써 무시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 모든 비난이 내가 만든 방어 막을 뚫고 들어와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런 고통을 잊으려고 나는 온갖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온갖 현실 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나는 정말 기구한 운명에 휘말려 삶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진 이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책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쓴 홍세화도 그 앞에서 내가 명함을 내밀지 못할 그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남민전 사건(1979년에 남민전 조직원 74명이 검거되고 4명이 수배된 사건. 정부는 '폭력으로 정부 전복을 노린 최대 규모 자생적 공산주의 조직 적발'(1차 발표), '북괴와 관련된 무장간첩단'(2차 발표)이라고 서슬 시퍼렇게 발표했지만, 재야에서는 유신 말기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필요에 따라 조작한 사상범 조작사건이라고 불렀다)'에 휘말려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뒤, 프랑스에서 20여 년 동안 이방인으로서 삶을 이어갔다. 2002년에 귀국한 뒤에도 여전히 일제 시대와 군사 독재 정권이 남겨놓은 온갖 부조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이방인으로서 남아야 했다.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에서 그려낸 인생 근본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조리에 싫증을 느끼고 인간 전체와 대립하는 이방인과, 온갖 다양한 사회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일그러진 국가이자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둘 다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 세계 전체에서 이런저런 까닭 때문에 이방인으로 남는 사람보다는, 대한민국과 같은 배타성이 강한 사회에서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인 홍세화에게 주목하고 싶다.


근대 민족 국가가 드러낸 여러 가지 문제란 문제는 모두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한민국에서, 열 세 자리 주민등록번호와 황인종다운 피부와 모국어로서 구사하는 한국어라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방인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에 시달려 왔는지는, 어느 정도 양식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순수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그 차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같은 국민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기에도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차별을 당하고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면서도 영어 쓰는 분명한 이방인인 백인들 앞에서 굽실거리며 사족을 못 쓰고, 그들이 쓰는 영어를 모국어와 같은 위치로 격상시키겠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한민국 권력층, 사람이 아닌 훈장을 숭배하는 인간 상실이라는 비극, 후안무치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을 누구보다도 현실에서 더 잘 증명하는 기득권층, 가난한 사람들이 배제된 채 추구되는 국가 경쟁력, 양비론을 즐겨 쓰면서 상아 욕조에 푹 잠긴 채 정작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는 응답하지 않는 기회주의 지식인들……


일일이 쓰다 보니까 머리 뒤끝이 뻣뻣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도저히 더는 못 쓰겠다. 그 모든 부조리가 모여 있는 곳이 내가 먹고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온갖 부조리가 판치는 대한민국 안에서 최소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도 온갖 이해관계에 따라 아주 쉽게 침해당하기 십상인 현실을 바라보며, 이방인 홍세화는 그가 느낀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전문가로서 온갖 사회학 개념을 동원해 깊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이방인으로서 그가 대한민국 사회를 다른 거울로 비춰볼 수 있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그가 쓴 글에는 색다른 힘이 넘친다. 박노자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 1,2' 같은 여러 책을 읽을 때 받았던 그런 느낌을 여기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


뜬금없이 글을 시작할 때 쓴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다시 끄집어내자면, 대한민국은 과연 시작이 어떠했는가 생각해 볼만하다. 물론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근본이 잘못되었다. 쎄느 강은 좌우를 갈랐지만 '똘레랑스'가 몸에 배여 있는 프랑스 사람들은 쎄느 강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강은 남북을 갈랐고, 한강 하구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남한군과 북한군이 서로를 바라보며 적으로 간주하듯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와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앵똘레랑스'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국가라는 괴물과 그 괴물에게 쫓기다가 자기도 모르게 미쳐버린 사람들이 서로 피 터지게 싸워가며 희생시킨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홍세화 또한 일그러진 대한민국에서 원하지 않는 이방인이 되어야 했던 대한민국에 희생당한 인물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에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대한민국에서 판치고 있는 '앵똘레랑스'가 '똘레랑스'로 바뀌는 시기 또한 현재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그는 그 날을 항상 꿈꾸면서 온갖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열심히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 그를 나는 2008년 5월에 부산대학교에서 처음 봤고, 그 당당한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느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그렇게 부조리가 판치는 사회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이 빠져 있던 기운을 다시 살리려고 발버둥치는데, 마침 내가 교육실습을 나가고 있는 연제고등학교에 그가 강연을 하러 온다고 한다. 다시 그를 보러 가겠다. 그리고 그가 하는 강연을 열심히 듣는 연제고등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암울한 대한민국 사회를 비추는 희망을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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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
손영철 지음 / 작은씨앗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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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어나라는 명령도 없었는데 오전 3시부터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몸단장한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지도관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다. 이제 정말 집에 간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보다.

 

느직하게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약속했던 대로 남는 체육복을 모두 걷어서 지섭이에게 넘겨주었다. 붉은대게살찜은 예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전역교육대 청소를 하고 검사를 받는데 몸이 너무나도 심하게 달았다. 버스에 올라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버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문을 통과하는 순간 환호성은 극렬해져서 지도관들이 귀를 막을 지경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두 고함을 지르며 바깥으로 뛰어나가 마음껏 뛰어다녔다. 너무 기뻐서 울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고, 포항시외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북대구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서 부모님과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면서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몽환 같은 현실이라고 하는가 보다……

 

 

위에 인용한 글은 2008년 2월 3일에 쓴 일기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2월 3일에서 정확하게 한 해 전, 곧 2008년 2월 3일에 나는 전역했다. 오늘은 내 전역 1주년 기념일이다.

 

전역 1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전혀 없었다. 남자들에게는 나름대로 기념할 만한 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당사자를 챙겨줘야 한다고 인정받지는 못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서 조용히 2009년 2월 3일이 되자마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전역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데 늦잠 때문에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수강 신청을 하고 난 뒤에는 방에서 정신 없이 곯아떨어졌다. 푹 자고 일어난 뒤 책가방을 싸 들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교육론 원서에 파묻혔다. 그러고 난 뒤 하루가 끝나가는 오후 11시쯤이 되어서야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3학년 1학기 수강 신청을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다른 새해를 맞이하고 2008년 결산을 할 때, 그 많은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초한 많은 좌절과 절망에 지친 삐쩍 마른 한 20대 중반 청년(?)이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발랄하던 사람이 그렇게 참담하게 변해버린 것일까?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도 싫어서 사회에 나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잘 해 낼 것처럼 후임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온 뒤에 군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이야기를 툭툭 뱉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흠칫 놀랐던 것은 나만이 겪는 경험이 아닌 모든 예비역들이 겪는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군대에서 내가 그렇게 짜증을 냈던 까닭이다. 사회에 나가서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할 정도라면 굳이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전역 날짜만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계속 군대에 남아서 그 장점만 살리고 단점은 없애고자 힘쓰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 장점과 단점 가운데 필요한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하거나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군대, 특히 대한민국 국군에 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예비역들이 군대에서 '잃어버린' 2년이라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온갖 서러움과 분노를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가? 지나간 시간이라서 그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군대와 다른 점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공교육 구조 안에서 자율성을 억압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특히 남자들은 더욱 심한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뿐만 아니라 나와 형님들이 속한 세대도 그랬다. 그렇게 12년 동안 병영 같은 학교에서 살았으니, 어찌 대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자유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는 본산인 군대에 가게 된다. 대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누리던 남자들은 그와 정반대인 환경인 군대에서, 엄청난 혼란과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12년 동안 겪은 게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적응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대학교에서 누리던 것이 있는 데다가 학교와 군대는 비슷하더라도 결국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낯설 수밖에 없다.

 

군대 가기 전부터 군인 같았다는 나도 막상 군대에 간 뒤에는 뭐 이런 곳이 다 있느냐고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소리치면서, 군대와는 상극인 내 모습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훈련이고 뭐고 다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신 교육만큼은 꾹 참고 받기가 힘들었다.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국방일보는 대개 병들 사이에서는 취사장에서 튀긴 건빵 담아올 때, PX에서 라면이나 냉동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거리 사 와서 펼쳐놓고 먹을 때, 그리고 페인트칠 할 때 쓰는 약간 두툼한 종이뭉치일 뿐이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국방일보도 그러한데 수시로 나오는 온갖 정훈 교육 자료를 병들이 챙겨 읽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훈병은 아니었더라도 해병대사령부와 해군본부에서 주최하는 정훈 퀴즈 대회에 해마다 꼭 나갔기 때문에, 항상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이병과 일병 때는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는 판국이라서 뭔가 읽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글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기 때문에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읽었다는 것이다. 한 달 정도만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도 앞으로 나올 내용을 웬만하면 전부 예측할 수 있다. 단지 변하는 것은 온갖 사례를 가져다 붙이는 것뿐이다. 가져다 붙이는 사례와 정보 그 자체는 상식을 늘리는 데는 좋았지만, 정훈 교육 내용 자체에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국방부에서 자료에 성의는 참 많이 표시하지만, 전역한 뒤에 반드시 '군대 정신 교육 비판'이라는 논문을 꼭 쓰겠다고 이병 때부터 마음 먹었던 판국에 그런 성의가 고맙게 느껴질 까닭은 전혀 없었다.

 

국방일보, 정훈 자료, 대통령 훈시문, 국방부 장관 훈시문, 참모총장 훈시문, 사령관 훈시문, 사단장 훈시문……쏟아지는 명령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 와중에 군대에 속한 내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당했다. 그 수많은 문서에 파묻히기 전에도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를 읽을 때는 나름대로 수긍할 수 있었지만, 이 책 '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를 읽을 때는 거부감이 잔뜩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정한 아버지가 한 달마다 보내는 편지 스물 네 통이라는 구성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예비역 장성이라고 해서 훈시문과 같은 구성이 없었기에 그나마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라는 제목이 이등병이었던 나에게 나도 언젠가는 전역한다는 희망을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침 또한 이 책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는 나무랄 내용은 거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쓰신 편지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묘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입견이라도 해도 할 수 없다. 육군 포병으로서 군 복무를 마치신 아버지와 공군 장교로서 군 복무를 마친 손영철 예비역 공군 준장은 분명히 달랐다. 병과 장교는 어쩔 수 없이 다르다고 느끼는 바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군대에서 높은 사람들이 훈시문을 내리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면서 무조건 복종하는 행태에 넌덜머리가 났던 터라 더욱 그렇다. 결국 군대 자체에 대한 진저리로 이어진다.

 

모두 다 인정할 수 있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군대에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계급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언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이렇게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도 군대에 가면 나아질 확률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군 복무 시절에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군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자기를 규제하는 것은 절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권장해야 하지만, 다시 군대로 스스로 돌아가서 그 올가미에 얽매이는 미련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어차피 이 책도 기본 논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이니, 이미 예비역 병장인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쯤이야 그 정도야 이 책을 쓴 작가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 글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구성에 따라 아버지에게 쓰는 진심 어린 편지 한 통과 같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글을 마무리하려는 이 시점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손가락을 부지런히 잘 놀리고 있던 나를 황당하게 했다. 글을 언제 쓰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 하더라도 구성 방식과 내용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매우 큰 깨달음을 나도 모르게 얻었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전역 1주년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는 아마 충분할 것이다. 전역 2주년 기념일에는 임용고시 최종 합격이라는 선물을 줘야 할 텐데, 그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해서 큰일이다. 글을 다 쓴 뒤에 다시 중앙도서관으로 올라가서 책을 펼쳐야겠다. 2008년에 그렇게 스스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면서 살았으니, 올해에는 좀 얌전하게 살 필요도 충분히 있다. 조용히 살면 자기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데 필요한 원칙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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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간다
박양근 지음 / 한언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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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5일. 나와 여러 동기를 태운 건빵 버스(군용 버스 색깔이 군용 건빵 봉지 색깔과 똑같을 뿐만 아니라, 모양이 건빵처럼 직사각형이라서, 흔히 건빵 버스라고 부른다)는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달렸다. 훗날 전역할 때도 그렇게 해병대 제 1사단 정문을 통과할 것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갓 수료한 이병이었기에, 그저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빠져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누구라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뛸 지경이었다.
 

그토록 무섭기 짝이 없던 교관들도 우리가 수료할 때가 다 되어가자 갑자기 그들에게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냥함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를 마산까지 인솔한 교관이 버스 안에서 보여준 그 친절함도 우리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2월 초에 훈련단에 들어가서 3월 말에 수료했으니, 자칫하다가는 교관들도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턱도 없는 말을 믿을 뻔했다.

 

마산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해군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는 우리를 해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해군행정학교 안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민간인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훈련단에서 갓 수료한 이병들에게는 정말 그만한 파라다이스가 없었다. 밥도 양껏 먹을 수 있었고 PX도 갈 수 있었고, 행사 때도 훈련단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간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정한 시간마다 여유롭게 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종일 훈련을 받느라 온 근육이 비명을 질러댈 필요도 없었다. 훈련 대신 종일 공부를 해야 했다. 낙제를 하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 기수는 다행히 낙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덧붙여서 말썽도 그다지 피우지 않는 편이었기에, 교관에게서 칭찬도 받았고 수료하기 전에 중국집에서 그토록 귀한 자장면과 탕수육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 동기들과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던 적은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먹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포상 휴가를 노리고 군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험을 한 번 잘 못 치자마자, 바로 학과(?) 공부는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이 책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와 같은 책이 많아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 결산 소감문인 '2006년을 되돌아보다 - 2월 초순 ~ 4월 중순'에도 썼듯이, 나는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정신 혼란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그 정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맨 처음으로 도와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남자라면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 군대이다. 자기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헌법 제 39조 1항에 따라 좋든 싫든 군대에 가야 한다. 문제는 거기에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든지 빠지려고 안달인 놈(제목에서 대놓고 놈이라고 하니 나도 놈이라고 하겠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군대에 얼마든지 가겠다고 웃는 놈은 그야말로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다.

 

나는 군대에 가기 전에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기대 때문에 웃어볼 수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해낸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2년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서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웃기는커녕 태연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모든 가능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된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군대에 갈 수 없는 가능성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책은 단 한 가지뿐이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수많은 예비역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군대에서 금쪽 같은 20대 인생에서 무려 2년을 날리게 될 수밖에 없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는 제목은 결국 그런 뜻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내가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좀 더 솔직하게 '피할 수 없으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되도록 많이 얻어내라고 앞에서 했던 그대로 말한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매우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에 무조건 거부감만 느끼지 말고 조금이라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이 책이 매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군대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1~2학년 때는 많은 남자 선배들을 군대에 보내고 복학한 남자 선배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2006년 2월에는 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군대에 갔다. 2008년 2월에 전역한 뒤에는 나도 복학생이 되어 먼저 복학한 남자 선배들과 여러 후배들에게서 환대를 받았고, 이제는 후배들이 전역하고 복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축하와 위로를 건넨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에게든지 삶은 소중하며, 그 삶을 알차게 꾸려나갈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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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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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무려 6명이나 죽었다. 용산 지구 재개발 계획이 공포된 뒤 보상금이 새로운 삶을 꾸려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용산구청 앞에서 정부에서 그토록 권장하는 '평화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용산구청 앞에 붙어 있던 것은 '떼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이미 넉넉하게 보상 받고 재개발 계획이 현실이 된 뒤 거기에서 돌아올 막대한 이득만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용산구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2년 동안이나 온갖 평화로운 방법을 전부 다 써 봤지만 사시사철 붙어 있는 현수막만큼이나 용산구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화가 폭발한 철거민들은 강경 투쟁을 결정했고 용역 업체와 강경 진압에 대비하고자 망루를 쌓고 여러 가지 생필품과 시너 따위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대화와 소통 따위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답만 강요하는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그러자 정부는 곧장 본색을 드러냈다. 협상도 제대로 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망루를 쌓고 대치하기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전문 테러리스트 같은 심각한 범죄자들을 잡는 데나 동원될 경찰특공대가 최후 저항 수단으로 화염병을 준비해 놓았던 철거민들을 '때려잡고자' 투입되었다. 진압 작전 전문가들조차 이번 작전은 시작부터 어긋난 실패작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평소에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법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작전 결과는 참담했다. 철거민들은 촛불을 든 100만이 넘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법 폭력 시위꾼'으로 몰렸고 강제 진압 대상이 되었다. 안전 확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들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원 1명도 아까운 목숨을 잃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그 뒤에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정부 편에서는 '불법 폭력 시위꾼'들이 또다시 법을 우습게 알고 법치 근간을 뒤흔드는 난동을 피워 이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낳았다고 일갈하고, 정부 홍보 언론 같은 주류 언론들은 '정의로운' 경찰이 죽었고 그를 죽인 이들은 철거민들이 내놓은 돈까지 떼먹으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전문 불법 폭력 시위꾼'이라고 선전했다. 그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지만, 이미 지난 시간 동안 민중을 탄압하고 자기 이득만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수구 세력이었기에 그 오만방자함과 뻔뻔함은 도를 넘어섰다.

 

그 뻔뻔한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 보기 바란다. 수구 세력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필요 없다. 자기들도 월급 받아서 그냥 밥만 먹고 살면서 세상이 온통 썩어 빠졌다고 욕을 바가지로 하는 주제에, 왜 이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근원을 옹호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한 결 같은 논리만 들이대며 무작정 비난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자기들은 이번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자기들은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올바르게' 살고 있는 '준법 정신'이 투철한 '모범 국민'이라서 계속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것 같은가? 경제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에서 자기 맡은 바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될 것 같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수구 세력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요즘에는 성공이라는 말도 가당찮게 들린다. 과연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에서 누구든지 제대로 성공할 기회가 보장이 되기라도 하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특권 의식을 지닌 사람들은 서민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자기들 능력 없으면 능력 없는대로 사는 게 당연한 것이며, 그 따위 능력이 없어서 괜히 지금 길거리에 나자빠져서 떼 쓰고 폭력 시위나 하는 사람들이라고 일갈하는 이들이 왜 같은 서민이어야 하는가? 서민이 자기와 다를 바가 없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던 철거민들을 비난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가?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순수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강하게 느낀다. '운동권'과 '비운동권', '이성에 따른 준법 정신이 투철한 민주 시민'과 '불법 난동을 일삼는 이성 따위는 없는 이기주의자', 이 따위 모든 것에 '순수'와 '불순'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분법이 적용되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철학계에서도 사변 철학이 진정한 진리를 발견하는 왕도라는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당에, 순수 문학이라는 것이 이 시대 속에서 도대체 무슨 긴요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저 회의가 들 뿐이다.

 

류비셰프가 주장한 바를 나름대로 고쳐서 지금 현실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러운 현실을 떠나 순수한 이상을 문학 속에 담는 것을 추구하는 게 진정으로 이 세상과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며, 상아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그고 현실이 요구하는 바를 뻔뻔하게 외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진정으로 순수한 문학과 시간을 헛되이 날리기만 하는 말장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과 사회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실상은 순수 문학도 사회 참여 문학도 아닌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넘쳐난다. 둘 다 이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0년 가까이 꾸준히 변하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해서 사랑받고 있는 걸작을 읽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리라. 

 

작가 조세희는 이명박 정권은 30년 전보다 더 악랄한 정권이라면서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대한민국을 노다지 금 캐 가듯이 착취하라고 생겨난 나라인 줄 알고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추악한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문학이 절실하다. 이와 같은 명작이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자책만을 일삼아 오고 분노로 이 책을 읽고 글을 끼적이는 부끄러운 대학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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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다 보면 화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나머지 허탈한 웃음을 저절로 낼 수밖에 없는 일이 '너무나도'라는 형용사가 그 수를 드러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정도로 많다. 가장 좋은 사례를 한 가지 들어보겠다. 예전에 '장발장' 서문에 관해 매우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쓰려는 것이 그와 묘하게 통하는 것 같다.

 

생활비가 없어서 단 돈 몇 천 원치 생필품을 훔친 이(조카에게 먹일 빵을 훔친 장발장과 같은 인물라고 볼 수 있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자기 앞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미친 듯이 피한다. 그리고 그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정의로운' 법에 따라 형량을 받고 유치장에 수감된다. 차디찬 감옥에 갇힌 그가 홀몸도 아니라 아내와 자식이 있는 가장이라면, 어떻게 보면 감옥보다도 더 차가운 사회에 가장 없이 남은 그 가족은 당장 살아갈 일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으로 몇 십 억 단위로 온갖 부패 행각을 저지른 뒤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이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고 당당하게 법원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죄에 비추었을 때 상식으로 생각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는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력을 동원해 보석으로 풀려나는 일이 많다. 때로는 죄가 없다는 판결이 나와서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자기 발로 법원 밖으로 걸어나간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다. 온 세상. 그리고 지금이 아닌 지난 세월 동안 사회를 유지하고자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당위론에서 나타난 법률은, 금권(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는 특권이라는 말이 더 적당할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돈과 권력은 예전에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으니 그냥 쓴다)을 가진 사회 지배층이 가진 것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악용되려는 성향을 때로는 교묘하고 은밀하게, 때로는 대 놓고 드러냈다.

 

그 괴물 같은 법이 삶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민중들은 그동안 안에 쌓아놓았던 것을 폭발시켜 무기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갔다. 그러면 지배자들은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면서 엄포를 놓았고, 법에 따라 보장된 폭력으로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하지만 민중들은 그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웠고, 그 결과 지배자들은 하나 둘씩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사회는 조금씩 발전해 나갔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법률 또한 발전해 나갔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폐기 처분되는 일, 그리고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법 속에 스며드는 일은 매우 더디지만 차분하게 이어졌다. 여기에서 매우 더디지만 차분하게 이어졌다는 뜻은,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피를 흘려야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그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가 주는 자유로움이라는 설익었지만 그래도 설익은 대로 상큼한 과일을 먹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도 그 피비린내 나는 더디기 짝이 없는 과정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조선 시대에 국가 통치 근간을 이루었던 경국대전을 그 당시 중국뿐만이 아닌 유럽 열강과 신생 미국까지 포함한 세계 정세에 비추어서 비판하는 건, 그 때가 국제 정치라는 개념 자체도 중국으로 극히 한정되어 있던 시대이니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밖에 안 된다고 그냥 넘긴다고 치자.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1949년 7월 17일에 제정한 뒤,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 사법계가 온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던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

 

대한민국이 동북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네 마리 용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던 서양 세계에서도, 대한민국을 통치하던 독재 정부가 저지르는 온갖 만행을 보면서 역시 후진국은 어쩔 수 없다는 비웃음 섞인 논평을 알게 모르게 쏟아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공산당 독재 체제인 중국을 비웃는 것을 보면서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지난 20세기에 대한민국을 바라보던 선진국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한에게는 공산주의와 유혈 혁명만을 외치는 북한이라는 빨갱이 괴물이, 북한에게는 자본주의와 사대주의에 물든 남한이라는 친미 괴물이 나타날 때부터 그 비극은 싹트고 있었다. 북한이야 애당초 인권을 논할 가치도 없는 세계에서 최악인 나라 가운데 하나이니 무시한다 하더라도, 그토록 놀라운 저력을 보여준 남한에서 그 따위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은 절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욕할 처지도 아니고 중국을 욕할 처지도 아니다. 다른 이를 비난하려면 자격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자격을 애써 회복하려고 지난 10년 동안 힘썼지만, 지난 해에 집권한 이명박 정권과 그 아래 숭미숭일 수구 세력은 지금까지 간신히 길러낸 민주주의라는 설익은 열매를 너무나도 쉽게 짓밟고 있다. 출범할 때부터 '법치'를 강조하더니, 그 법을 마음대로 주물러서 민중을 탄압하고 억누르고 있다. 기만스럽고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법률 위에 올라타 국민을 가소롭게 알고 있는 이들을 몰아내고자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수구 세력이 외쳤던 것은 '정의로운' 법에 따른 '법치'였다. 그 법을 수호하는 경찰과 검찰과 사법부는 '정의로운' 세력으로서, 이에 맞서는 이들은 정의를 파괴하려는 '불법' 시위자들이다.

 

정의를 수호하는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은 사회 질서 유지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된다. 사회 전체라는 맥락에서 벗어나 특정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편협한 관점을 공권력이라는 법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받은 특수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미 그 공권력 때문에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이들이 내뱉는 욕설과 울분과 폭력은, 정의로운 공권력을 위협하는 '미치광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한 마디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막되먹은' 짓이라는 것이다.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평화롭게 저항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 안다고 그들은 일갈한다. 하지만 그들이 평화와 이성을 강조하는 진정한 까닭은 따로 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이 저항하면 그 저항을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와 소통 따위는 아예 할 생각이 없는 이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이들은 대화와 소통 따위는 모르는 불법 폭력 시위꾼, 심지어 내란 선동자들로 몰아가는 작태를 보면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그들이 비폭력주의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자체가 간디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치욕이다.

 

민중은 인권을 존중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헌법을 외친다. 하지만 헌법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 1조는 지금까지 제대로 실현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그나마 가장 나았다고 하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도 부족한 점은 너무나도 많았다. 어쩌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민중들이 해낸 일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보잘것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헌법에 따라서 보호를 받는 이들이 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헌법에 따라 천부 인권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은 여전히 살기 좋은 나라인데 불순 분자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립이라고 외치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주류' 언론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피해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다면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은 법에 따라 탄압받고 처벌받는다. 그들은 따지고 보면 소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 불순 분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공권력은 더욱 정의로워 보이고, 수구 언론은 그런 공권력을 온갖 미사여구로 찬미한다. 헌법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고 하는 법률이 어떻게 민중을 이토록 극심하게 탄압할 수 있는지 헌법이 지닌 정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헌법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법치 국가를 수호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면 헌법을 무시할 수도 있고 한 술 더 떠서 바꿀 수도 있다는 독재 정권 시대에나 통할 사고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금 정부에게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단지 지금 헌법이 바뀌고 있는 헌법을 바꾸려면 국민 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민심이 국민 투표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부지런히 민중들 눈과 귀와 입을 모두 막으려고 언론 장악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은 지금 '나는 이탈리아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이다'라고 외치며 무솔리니와 같은 존재로 거듭나려는 이탈리아 독재자 베를루스코니와 같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법률은 시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제함으로써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법률가들이 시민의 이익 대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길 때 사회의 정의는 힘 없이 무너지고 만다.'

 

 

책 뒤표지에 있는 이 문구만 봐도 이 책 '헌법의 풍경'이 무엇을 고발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헌법은 제정된 뒤부터 우리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아니,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배한 거의 모든 정권이 항상 헌법은 껌 씹듯이 무시해 버렸다. 굳이 내가 위에 쓴 것처럼 그렇게 길게 쓰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이 고발하는 현실이 지금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귀중한 책들을 읽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김두식이라는 용감한 법학자가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면, 우리는 그 비판에 따라 사회를 바로잡고 헌법을 살리고자 눈을 똑바로 뜨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람 앞 등불과도 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 그러지 않을 때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눈을 감고 봐도 앞에 환하게 떠오른다.

 

만약 훗날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조차 답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 이탈리아와 같이 변해버린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이 시대를 대상으로 '광인일기'와 같은 소설을 쓴다면 이와 같은 말이 나오면서 소설이 끝나지 않을까.

 

 

"헌법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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