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
손영철 지음 / 작은씨앗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일어나라는 명령도 없었는데 오전 3시부터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몸단장한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지도관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다. 이제 정말 집에 간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보다.
느직하게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약속했던 대로 남는 체육복을 모두 걷어서 지섭이에게 넘겨주었다. 붉은대게살찜은 예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전역교육대 청소를 하고 검사를 받는데 몸이 너무나도 심하게 달았다. 버스에 올라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버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문을 통과하는 순간 환호성은 극렬해져서 지도관들이 귀를 막을 지경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두 고함을 지르며 바깥으로 뛰어나가 마음껏 뛰어다녔다. 너무 기뻐서 울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고, 포항시외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북대구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서 부모님과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면서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몽환 같은 현실이라고 하는가 보다……
위에 인용한 글은 2008년 2월 3일에 쓴 일기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2월 3일에서 정확하게 한 해 전, 곧 2008년 2월 3일에 나는 전역했다. 오늘은 내 전역 1주년 기념일이다.
전역 1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전혀 없었다. 남자들에게는 나름대로 기념할 만한 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당사자를 챙겨줘야 한다고 인정받지는 못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서 조용히 2009년 2월 3일이 되자마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전역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데 늦잠 때문에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수강 신청을 하고 난 뒤에는 방에서 정신 없이 곯아떨어졌다. 푹 자고 일어난 뒤 책가방을 싸 들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교육론 원서에 파묻혔다. 그러고 난 뒤 하루가 끝나가는 오후 11시쯤이 되어서야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3학년 1학기 수강 신청을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다른 새해를 맞이하고 2008년 결산을 할 때, 그 많은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초한 많은 좌절과 절망에 지친 삐쩍 마른 한 20대 중반 청년(?)이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발랄하던 사람이 그렇게 참담하게 변해버린 것일까?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도 싫어서 사회에 나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잘 해 낼 것처럼 후임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온 뒤에 군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이야기를 툭툭 뱉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흠칫 놀랐던 것은 나만이 겪는 경험이 아닌 모든 예비역들이 겪는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군대에서 내가 그렇게 짜증을 냈던 까닭이다. 사회에 나가서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할 정도라면 굳이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전역 날짜만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계속 군대에 남아서 그 장점만 살리고 단점은 없애고자 힘쓰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 장점과 단점 가운데 필요한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하거나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군대, 특히 대한민국 국군에 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예비역들이 군대에서 '잃어버린' 2년이라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온갖 서러움과 분노를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가? 지나간 시간이라서 그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군대와 다른 점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공교육 구조 안에서 자율성을 억압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특히 남자들은 더욱 심한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뿐만 아니라 나와 형님들이 속한 세대도 그랬다. 그렇게 12년 동안 병영 같은 학교에서 살았으니, 어찌 대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자유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는 본산인 군대에 가게 된다. 대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누리던 남자들은 그와 정반대인 환경인 군대에서, 엄청난 혼란과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12년 동안 겪은 게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적응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대학교에서 누리던 것이 있는 데다가 학교와 군대는 비슷하더라도 결국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낯설 수밖에 없다.
군대 가기 전부터 군인 같았다는 나도 막상 군대에 간 뒤에는 뭐 이런 곳이 다 있느냐고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소리치면서, 군대와는 상극인 내 모습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훈련이고 뭐고 다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신 교육만큼은 꾹 참고 받기가 힘들었다.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국방일보는 대개 병들 사이에서는 취사장에서 튀긴 건빵 담아올 때, PX에서 라면이나 냉동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거리 사 와서 펼쳐놓고 먹을 때, 그리고 페인트칠 할 때 쓰는 약간 두툼한 종이뭉치일 뿐이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국방일보도 그러한데 수시로 나오는 온갖 정훈 교육 자료를 병들이 챙겨 읽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훈병은 아니었더라도 해병대사령부와 해군본부에서 주최하는 정훈 퀴즈 대회에 해마다 꼭 나갔기 때문에, 항상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이병과 일병 때는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는 판국이라서 뭔가 읽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글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기 때문에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읽었다는 것이다. 한 달 정도만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도 앞으로 나올 내용을 웬만하면 전부 예측할 수 있다. 단지 변하는 것은 온갖 사례를 가져다 붙이는 것뿐이다. 가져다 붙이는 사례와 정보 그 자체는 상식을 늘리는 데는 좋았지만, 정훈 교육 내용 자체에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국방부에서 자료에 성의는 참 많이 표시하지만, 전역한 뒤에 반드시 '군대 정신 교육 비판'이라는 논문을 꼭 쓰겠다고 이병 때부터 마음 먹었던 판국에 그런 성의가 고맙게 느껴질 까닭은 전혀 없었다.
국방일보, 정훈 자료, 대통령 훈시문, 국방부 장관 훈시문, 참모총장 훈시문, 사령관 훈시문, 사단장 훈시문……쏟아지는 명령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 와중에 군대에 속한 내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당했다. 그 수많은 문서에 파묻히기 전에도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를 읽을 때는 나름대로 수긍할 수 있었지만, 이 책 '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를 읽을 때는 거부감이 잔뜩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정한 아버지가 한 달마다 보내는 편지 스물 네 통이라는 구성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예비역 장성이라고 해서 훈시문과 같은 구성이 없었기에 그나마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라는 제목이 이등병이었던 나에게 나도 언젠가는 전역한다는 희망을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침 또한 이 책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는 나무랄 내용은 거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쓰신 편지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묘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입견이라도 해도 할 수 없다. 육군 포병으로서 군 복무를 마치신 아버지와 공군 장교로서 군 복무를 마친 손영철 예비역 공군 준장은 분명히 달랐다. 병과 장교는 어쩔 수 없이 다르다고 느끼는 바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군대에서 높은 사람들이 훈시문을 내리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면서 무조건 복종하는 행태에 넌덜머리가 났던 터라 더욱 그렇다. 결국 군대 자체에 대한 진저리로 이어진다.
모두 다 인정할 수 있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군대에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계급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언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이렇게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도 군대에 가면 나아질 확률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군 복무 시절에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군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자기를 규제하는 것은 절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권장해야 하지만, 다시 군대로 스스로 돌아가서 그 올가미에 얽매이는 미련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어차피 이 책도 기본 논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이니, 이미 예비역 병장인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쯤이야 그 정도야 이 책을 쓴 작가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 글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구성에 따라 아버지에게 쓰는 진심 어린 편지 한 통과 같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글을 마무리하려는 이 시점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손가락을 부지런히 잘 놀리고 있던 나를 황당하게 했다. 글을 언제 쓰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 하더라도 구성 방식과 내용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매우 큰 깨달음을 나도 모르게 얻었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전역 1주년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는 아마 충분할 것이다. 전역 2주년 기념일에는 임용고시 최종 합격이라는 선물을 줘야 할 텐데, 그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해서 큰일이다. 글을 다 쓴 뒤에 다시 중앙도서관으로 올라가서 책을 펼쳐야겠다. 2008년에 그렇게 스스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면서 살았으니, 올해에는 좀 얌전하게 살 필요도 충분히 있다. 조용히 살면 자기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데 필요한 원칙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