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무려 6명이나 죽었다. 용산 지구 재개발 계획이 공포된 뒤 보상금이 새로운 삶을 꾸려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용산구청 앞에서 정부에서 그토록 권장하는 '평화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용산구청 앞에 붙어 있던 것은 '떼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이미 넉넉하게 보상 받고 재개발 계획이 현실이 된 뒤 거기에서 돌아올 막대한 이득만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용산구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2년 동안이나 온갖 평화로운 방법을 전부 다 써 봤지만 사시사철 붙어 있는 현수막만큼이나 용산구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화가 폭발한 철거민들은 강경 투쟁을 결정했고 용역 업체와 강경 진압에 대비하고자 망루를 쌓고 여러 가지 생필품과 시너 따위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대화와 소통 따위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답만 강요하는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그러자 정부는 곧장 본색을 드러냈다. 협상도 제대로 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망루를 쌓고 대치하기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전문 테러리스트 같은 심각한 범죄자들을 잡는 데나 동원될 경찰특공대가 최후 저항 수단으로 화염병을 준비해 놓았던 철거민들을 '때려잡고자' 투입되었다. 진압 작전 전문가들조차 이번 작전은 시작부터 어긋난 실패작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평소에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법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작전 결과는 참담했다. 철거민들은 촛불을 든 100만이 넘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법 폭력 시위꾼'으로 몰렸고 강제 진압 대상이 되었다. 안전 확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들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원 1명도 아까운 목숨을 잃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그 뒤에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정부 편에서는 '불법 폭력 시위꾼'들이 또다시 법을 우습게 알고 법치 근간을 뒤흔드는 난동을 피워 이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낳았다고 일갈하고, 정부 홍보 언론 같은 주류 언론들은 '정의로운' 경찰이 죽었고 그를 죽인 이들은 철거민들이 내놓은 돈까지 떼먹으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전문 불법 폭력 시위꾼'이라고 선전했다. 그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지만, 이미 지난 시간 동안 민중을 탄압하고 자기 이득만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수구 세력이었기에 그 오만방자함과 뻔뻔함은 도를 넘어섰다.

 

그 뻔뻔한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 보기 바란다. 수구 세력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필요 없다. 자기들도 월급 받아서 그냥 밥만 먹고 살면서 세상이 온통 썩어 빠졌다고 욕을 바가지로 하는 주제에, 왜 이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근원을 옹호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한 결 같은 논리만 들이대며 무작정 비난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자기들은 이번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자기들은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올바르게' 살고 있는 '준법 정신'이 투철한 '모범 국민'이라서 계속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것 같은가? 경제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에서 자기 맡은 바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될 것 같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수구 세력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요즘에는 성공이라는 말도 가당찮게 들린다. 과연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에서 누구든지 제대로 성공할 기회가 보장이 되기라도 하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특권 의식을 지닌 사람들은 서민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자기들 능력 없으면 능력 없는대로 사는 게 당연한 것이며, 그 따위 능력이 없어서 괜히 지금 길거리에 나자빠져서 떼 쓰고 폭력 시위나 하는 사람들이라고 일갈하는 이들이 왜 같은 서민이어야 하는가? 서민이 자기와 다를 바가 없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던 철거민들을 비난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가?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순수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강하게 느낀다. '운동권'과 '비운동권', '이성에 따른 준법 정신이 투철한 민주 시민'과 '불법 난동을 일삼는 이성 따위는 없는 이기주의자', 이 따위 모든 것에 '순수'와 '불순'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분법이 적용되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철학계에서도 사변 철학이 진정한 진리를 발견하는 왕도라는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당에, 순수 문학이라는 것이 이 시대 속에서 도대체 무슨 긴요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저 회의가 들 뿐이다.

 

류비셰프가 주장한 바를 나름대로 고쳐서 지금 현실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러운 현실을 떠나 순수한 이상을 문학 속에 담는 것을 추구하는 게 진정으로 이 세상과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며, 상아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그고 현실이 요구하는 바를 뻔뻔하게 외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진정으로 순수한 문학과 시간을 헛되이 날리기만 하는 말장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과 사회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실상은 순수 문학도 사회 참여 문학도 아닌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넘쳐난다. 둘 다 이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0년 가까이 꾸준히 변하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해서 사랑받고 있는 걸작을 읽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리라. 

 

작가 조세희는 이명박 정권은 30년 전보다 더 악랄한 정권이라면서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대한민국을 노다지 금 캐 가듯이 착취하라고 생겨난 나라인 줄 알고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추악한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문학이 절실하다. 이와 같은 명작이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자책만을 일삼아 오고 분노로 이 책을 읽고 글을 끼적이는 부끄러운 대학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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