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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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장에 적어둔 독서 기록을 보니 이번이 3회 차 독서다. 마지막으로 읽은 때가 약 4년 전이다. 나는 이전까지 《위대한 개츠비》가 왜 미국 문학의 금자탑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문학 전체를 낮춰 보게 될 정도였다. 이제 고요한 중에 깨어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읽었던가 싶을 만큼 아름답고 흥미롭다. 이제는 내가 《위대한 게츠비》를 쓸 당시의 피츠제럴드 보다 나이가 조금 연상이기 때문에 뒤늦게 탄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쓰인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실감이 나는 듯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타인에 비해 몇 년은 뒤쳐진 인간인 듯도 하고).

그때에 붙잡을 만한 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어느새 잊혀지고 마는 반딧불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이토록 섬세하게 피츠제럴드가 포착해냈다. 개츠비는 위대하다기보다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개츠비를 둘러싼 군상들은 경멸스럽다.
개츠비를 보면 보바리 부인이 연상된다. 플로베르가 살아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면 미국땅에서 쓰인 보바리 부인이라고 평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의 죽음이 싸구려 기삿거리가 되지 않도록 진실에 가까운 회상을 하는 작업이라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친구의 자살이 언론에 의해 희화화되는 데에 항변하기 위해 쓴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질링》도 연상된다. 소설이 소설을 부르고 과거의 독서가 현재의 독서와 만나는 경험이라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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