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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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접한 서구의 교리에 감화된 자들을 지금 다시 복원하는 일은 낯설다. 그들은 나와 멀다. 우리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동정하는 듯 동정하지 않고, 아끼면서도 두려워하며 관조할 수밖에 없어 관조하는 작가의 태도가 미덥다.

배 곯아 죽고, 노동과 착취가 흐르는 물처럼 끝이 없고, 가뭄에 마른 땅 위에 이따금 지나는 소나기처럼 눈물이 터지는 민초들이 위험을 알면서도 예수를 찾는 이유를, 위정자들은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언어가 있어 그 바깥의 언어에 귀 닫고 눈 감는다. 귀 닫고 눈 감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언어 아닌 언어의 혀를 뽑고 목을 쳐 핏물로 흘려보낸다.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는 극과 극에 다다라 황사영의 백서로 이어지니 그 또한 피를 부르는 언어가 된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언어의 뜻을 헤아리고픈 작가의 소망을 떠올리면 등이 굽고 외롭고 고적하다. 고뇌는 글로 남고 맑은 정신은 글로 남길 수 없으니 더 그러하다.

‘여기는 배반의 삶, 저기는 구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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