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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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라고 하기는 많이 거창하고, 말하자면 러시아 현대사란 내게 걸그룹 아이돌의 역사와 비슷하다. 두 역사의 내용에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지적 수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전혀 모르기도 참 어렵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리모노프라는 이 실존(게다가 심지어 생존) 인물은 바로 그 러시아 현대사라는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거의 전형적인 역사적 의미에서의)남자다. 그래서 러시아 현대사에 대해 실은 걸그룹 아이돌에 대한 역사만큼이나 속속들이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거의 판타지 세계인냥 독서가 흥미와 혼돈의 연속이었다. 잘은 몰라도 러시아의 현대사가 대개의 민중들에게는 무채색이나 주로 붉은색으로 뒤덮인 시간이었다면, 소수의 지배계층, 그리고 바로 이 리모노프에게는 총천연색, 물론 붉은색이 포함된 시간이었다고 하면 개떡 같으나마 감이 잡힐까?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화신 같은(그래. 만물은 유전하고, 세계는 불이며, 전쟁 만세!) 이 남자의 기록성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부끄럽게도 거의 판단을 중지하고 말았다. 내 눈앞에 단테의 지옥과 연옥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이는 마당에, 또 그 복판을 헤집고 다니는 개자식이자 망나니이면서 예술가, 지식인, 명예성애자, 믿기 어렵지만 성인 같기도 한 모습을 갖춘 남자를 두고 무슨 온전한 판단을 내린단 말인가. 그저 폭포수 같이 흐르는 한 남자의 삶과 서사 앞에 인생 참... 하고 일종의 경계와 경이를 동시에 표할 뿐이다.

절대 이 인간만큼은 닮고 싶지 않은, 동시에 이 인간처럼 살아봤으면 싶은 야누스적인 인간 리모노프의 삶을 음미해볼 만한 이야기로 남겨준 엠마뉘엘 카레르의 필력에는 그저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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