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카뮈답지 않은 소설이다. 마치 카뮈가 쓴 《지하로부터의 수기》 같다. 여기에서 《페스트》의 세속의 성인은 잊혀진다. 하지만 소설의 화자인 장 밥티스트 클라망스에게서 내가 보게 되는 것 또한 카뮈다.

전직 변호사인 클라망스는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에서 초면의 어느 신사와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클라망스는 자신의 도덕적인 성품을 자랑한다. 변호사 시절 법률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선뜻 변호하던 일,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을 앞장서 돕던 일 등을 떠벌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위선이었음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자신의 위선을 고백하는 클라라망스는 심지어 즐거워 보인다. 타인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을 우선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나 나나. 피장파장.

이 소설을 쓰던 시기의 카뮈는 좋지 않았다. 정치적 논쟁에 시달려 가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의 만성적이라 할 수 있는 폐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마흔이 넘어가는 시기였고, 아내 역시 병이 들었다. 아마 자신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카뮈는 역부족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했다. 희곡 대본과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카뮈는 그런 것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장 밥티스트 클라망스는 신랄하고 명철하지만 빈정거리는 사람이다. 카뮈는 자신의 어두운 지점을 포착했을 것이다. 음지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이제는 노크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자는 카뮈에겐 현대인의 특성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모두(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방관함으로써 그에 일부분 동의했으므로) 어느 정도 죄인이며, 중요한 것은 나 아닌 타인이 나를 심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바닥에 내려갈 것. 그곳에서 납작 엎드려 공중에서 추락하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을 비웃을 것.
카뮈는 이 소설을 쓰고 난 뒤에야 자신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실현시키게 된다. 물론 그 작업은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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