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이라는, 역사의 주목을 받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하고 촌스러운 아프리카의 한 도시에 페스트가 창궐한다. 그것으로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이 바뀌었다.

페스트는 삶을 송두리째 장악한다.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다고 상상할 수도 없다. 곧 누구라도 페스트에게 목덜미를 휘어잡히게 된다. 그러니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이것에 저항하거나 굴복하거나. 전부가 아니면 무. 카뮈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글에 대한 반응에선 그것이 호평이든 비난이든 간에 가히 만족스럽지 못한 편이었다. ˝인간조건에 대해서라면 부정적이지만 인간에 대해서라면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그로서는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 결과물 중에 하나이자 대단한 성공작이 바로 이 《페스트》이다.

의사 리유를 비롯한 동료들의 패배를 감내한 저항의 드라마는 묵직한 위안과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공감을 자아낼 것이다. 페스트의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계속되는 패배와 낙담 속에서도 할 일을 해나가는 성실성의 가치, 의당 그러해야만 하는 단순함의 인간적 가치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생이별이라는 그리움의 망치질과 죄 없는 어린 아이의 죽음 앞에서 실감하는 무자비의 세계라도, 그러한 세계이기에 옳은 일을 해야한다는 정당한 바로 그 도덕적 교훈 말이다.

페스트가 하나의 은유라는 것은 새삼 말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타루의 말처럼 누구나가 저마다의 페스트를 지니고 있는 법이며 또 그것은 죽음을 모르는 영원한 질병이다. 우리에겐 우리 시대의 페스트가 없을 수 없고, 카뮈는 우리에게 언제나 옳을 수 있는 진실한 조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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