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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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느 만큼 재미있어야 하는가.

고대의 동양에서 소설이란 말 그대로 '사소한 이야기'로서 정치적 사상이라는 지배자들의 담론 반대편에 자리한다. 그것은 집안을 무대로 이루어지는 아녀자들의 이야기였다. 서양 역시 소설(Novel)은 로망스라는 기사들의 연애와 무용담의 모태에서 비롯되어 나온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설의 원천으로서의 주요 기능은 오락의 문제였다. 근대 이래 소설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 데에는 소설이 덜 재미있어졌다는, 심지어는 아주 지루해졌다는 이유가 무겁게 버티고 있다.

 

 

쿤데라는 『이별의 왈츠』를 통해 (내용의)무거움을 (형식의)가벼움에 담아내려고 애를 썼고 그것이 자신이 중요시하는 바라고 말했다. 『이별의 왈츠』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극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형식이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기대하지 않던 과장의 일치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빈 틈 없는 연결이라는 정교함과 여유를 두지 않는 속도감에 힘 입어 자연스럽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그럴싸한 하나의 실제로 인식된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조심스럽지만)통속적이라고 부른다.

 

 

온천이 유명한 조그마한 관광도시에서 닷새 동안 벌어지는 해프닝을 우리는 지켜본다. 유명한 인기 트럼펫 주자인 클리마는 루제나라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과의 하룻밤 사이에 생긴 아이를 낙태시켜야만 한다. 루제나는 이 잘나가는 트럼펫 주자를 잡기 위한 유일한 무기가 아이임을 알고 낙태를 거부한다. 루제나를 끔직이도 사랑하는 연하의 남자 프란티셰크는 두 사람을 감시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몽상적인 산부인과 의사 슈크레타는 조국에서의 불행한 삶을 형제애로 이겨내기 위해 불임 치료차 찾아오는 여성 환자마다 자신의 정액을 몰래 투입한다. 당원인 친구의 밀고로 수감 생활을 한 야쿠브는 망명을 앞두고 친구인 슈크레타와 자신을 밀고했던 친구의 딸을 찾아 온천 도시를 찾아 온다. 야쿠브를 밀고한 당원의 딸인 올가는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자 아빠와도 같은 야쿠브를 유혹한다. 트럼펫 주자의 아름다운 아내인 카밀라는 남편의 끝 없는 바람기에 대한 확고한 의심으로 온천 도시를 찾는다. 여기에 돈 많고 허풍스러운데다가 여성 애찬론자인 베르틀레프라는 미국인 요양객이 더해져 사건은 톱니바퀴 맞아 떨어지듯 굴러간다.

 

 

결국 한 여성의 우스꽝스러운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정교한 초침은 점점 귓 속에서 큰 소리로 울리고 마지막 순간엔 오로지 그 초침 소리만이 가득해진다. 이것이 쿤데라가 말하는 형식적 가벼움이다. 그것은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지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내용의 무거움은 그 안에 담긴 온갖 죄의식과 죄의식에 대한 무감각과 이미 무감각으로 점철되어 버린 지나온 삶의 행적이다. 쿤데라의 말 대로 이것은 우리 삶의 무의미함을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인간이 지닌 무거움(기억의 순간)은 삶이라는 형식의 가벼움(망각의 연장) 안에서 소진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망각 속에서 모든 것을 지워버릴 운명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어느 만큼 재미있어야 하는가.

이제는 위상이라고 할 만한 양말도 갖춰 신지 못한 소설의 신세를 두고 우습기 짝이 없는 질문이겠지만 나로선 대답은 해야겠다. 소설은 '너무' 재미있어선 곤란하다. 극적인 이야기라는 괴물이 한 인간의 실존을 잡아 먹어버려선 소설은 오락거리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노력이란 최소한 기억에 남기려는 것이 하나의 이야기를 등에 진 인간이어야 한다. 이야기가 모든 것을 잡아 먹는다면 남는 것은 오직 재미 뿐이다. 모든 추리 소설 속의 흥미로운 인물들이 하나의 '캐릭터'는 될 수 있어도, 한 명의 '인간'이기에는 미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설의 책장을 덮고 나니 가벼움만 남고 무거움이 소멸하는 헛헛함을 나는 아직도 심드렁하게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설령 그것이 똥이라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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