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행복한 물리학자 파인만에게 듣는 학문과 인생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정영목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기대도 하지 않고 파인만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어서 언젠가 헌책방에서 구입을 해두었던 책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제외하면 나는 파인만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좀 괴짜스러운 물리학자라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흥미가 있었다. 식사 중 심심풀이 삼아 읽을 책을 찾다가 집어 들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진지하다는 의미에서).

 

 

저자의 경력이 재미있다. 레너드 믈로디노프라는 저자의 이름은 내겐 생소하다(그의 이름이 『시간의 역사』,『위대한 설계』에서 스티븐 호킹과 나란히 적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는 전도 유망한 물리학 박사였지만 결국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언뜻 보면 어딘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의문이 해소가 될 것이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의 내용이 믈로디노프가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으로 불리며 최고의 연구시설로 유명함)의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전설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그리고 '머레이 겔만')과의 대화와 추억 속에서 편집된 학문과 삶의 이야기(대단히 유익하고 진지한)이니까 말이다.

전도유망하고 젊은 물리학자인 믈로디노프는 천재들(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들)의 집합소인 '칼텍'에서 자신을 채용했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젊은 물리학자로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것이라고 믈로디노프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물리학자들의 세계였다. 기대라는 것은 언제나 열정과 부담을 동시에 안기지 않던가. 믈로디노프의 연구실은 당시 물리학계의 두 거인이었던 파인만과 머레이 겔만 사이에 있었고,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웠던 그는 이들에게, 특히 파인만에게 스승의 역할을 기대하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의 글이 소설이 아니라고 미리 밝혀두지만 도대체 소설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런 문제를 논의할 수도 없거니와 단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글이 소설과도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물리학에 관한 이론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양자 물리학과 초끈 이론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일반 교양 수준의 정도에서 다루어 질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몰랐던 사람은 감이 잡히는 정도이고(나는 여기에 속한다), 이미 잘 아는 사람은 시시할 수도 있는 수준이리라. 그러니 내용의 본질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소설처럼 읽힌다. 물론 소설이냐 아니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명성(혹은 안정)과 행복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하는 한 명의 인간이 자꾸 도드라진다. 그리고 파인만은 이야기 속에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를 인도하는 탁월한 스승이다. 파인만은 전설의 물리학자이자 자신의 일(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다)에서 행복의 원천을 느끼는 삶의 지배자이다. 그는 창조적인 인물인 동시에 자신에게 충분히 진지하고 솔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리학자로서의 재능과 삶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믈로디노프가 어떤 결과를 선택했는지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이야기가 뻔한 한 편의 주제를 되풀이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하라는 위대하고도 낡은 주제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책을 읽는 와중에 현명하고 열정적인 파인만의 조언에, 믈로디노프가 처한 상황과 선택의 무게에서 방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한 개인의 인생이란, 진지한 선택의 순간이란 결코 낡은 주제가 될 수 없으니까.

 

 

"누가 무지개의 진짜 기원을 처음으로 설명했는지 아세요?"

내가 물었다.

"데카르트지."

그는 잠시 후에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두드러진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가 물었다.

"어, 무지개는 사실 원뿔의 일부인데, 스펙트럼의 색깔들을 가진 호로 보이죠. 물방울들이 관찰자 뒤의 햇빛을 받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감의 원천은 이 문제가 물방울 단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분석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적합한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죠."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가 말했다.

"네? 그럼 그의 이론에 영감을 준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

- 본문의 믈로디노프와 파인만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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