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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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의 작품을 발표 된 시간 순으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이것도 순전히 쿤데라의 에세이로 인해 생겨난 욕망이니 계획을 실행하는 동안 나는 단순히 이 작가의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다. 나는 예전에도 감히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런 식으로 읽으려다가 그것이 순리라는 듯 책장에 모셔만 둔 적이 있으니까.

 

 

쿤데라의 첫 소설인(그는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농담』을 나는 극도로 경직된 전체주의의 폭압으로부터 농담으로 인해 송두리째 자신의 삶을 유린 당한 루드빅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전체주의라는 정치적 체재 속에서 지극히 협소함을 강요 받거나 상실되어버린 실존의 가능성. 이것이 『농담』을 읽는 독법의 한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농담』을 읽으면서도 어느정도까지 그러한 독법은 충분히 유효했다.

 

 

독자에 따라서 쿤데라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얼마나 서정적인 장면과 분위기를 연출해내는데 탁월한 소설가인가 하는 물음에 있어 호응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놀라고 경탄했던 부분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서정성이다. 자기연민과 붕괴된 자아라는 상실감 속에서 루치에를 향했던 루드빅의 사랑은 어찌나 아름답고 또한 우스꽝스러웠던지. 통속적인 사건이 결코 저수지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비단 그의 날카로운 통찰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쿤데라의 소설에서 서정성이란 그가 가진 재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주목을 받을 만큼 아름답다.

 

 

루드빅,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 그리고 루치에의 이야기는 서로 절묘하게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대단히 혼란스럽고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영역으로 소설은 도망가기 시작한다. 이 인물들은 정치적 신념, 복수, 사랑, 신앙, 전통과 같은 추상의 의지에 자신의 삶과 신념을 헌신하려 했다. 이것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시대에서, 20세기 중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였으며 누군가에겐 그것이 20세기 중반의 시기라는 역사의 순간과는 관계없이 영원무구하도록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추상의 의지가 개인에게 하나의 도그마로 굳어지는 순간, 생은 그 단단함으로 인해 반드시 드러나는 틈새를 통해 농담처럼 짓궂은 장난을 걸어온다. 농담으로 유린 당한 삶, 복수라는 영원한 헛발질, 깨어진 환상, 진지한 자에겐 언제나 이중적인 세계. 무거움은 가벼움의 조롱 앞에서 분노하고 좌절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지럽도록 성찰적인 인물들의 해부도인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 소설가는 인간을 조롱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질문을 던지도록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나마, 도저히 설명되어질 것 같지 않은 사고의 파편들을 머릿속에 주워담아, 아주 끝난 것은 아니라는 불충분하지만 분명한 무언가가 마음 속에 남는다. 의외로 마음 속에 무언가가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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