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항쟁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3
김원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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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10일.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루키의 소설 『1Q84』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덴고는 자신이 고작 한 살이었던 시절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자문한다. 대개는 자신의 젖먹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87년 6월 10일, 나의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그저 그날이 민주주의와 연관되어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구나, 하는 정도의 수준 낮은 역사 지식과 의식을 갖고 오늘날까지 잘도 살아왔던 셈이다.

 

 

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한 이후 전두환 군사 정권이 그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다. 뒤이어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반대한 광주에서의 항쟁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폭력과 언론 탄압, 냉전 논리에 기반한 선동으로 국민을 유린하고 권력을 유지하던 전두환 정권에서 한 명의 대학생이 의문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반정부 운동을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대학생이 취조 중 사망한 것이다. 그 학생의 이름이 바로 '박종철'이다. 조용히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정부가 마지못해 발표한 내용이라는 게 <(책상을)'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 같잖은 변명이었다. 사인은 쇼크사였고 국민들이 분통해 마지 않았으리라는 건 말을해 무엇할까. 유신 이후 지속된 헌법의 개헌을 요구하며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든 묵살시켜버릴 기회만 엿보던 전두환 정권은 88올림픽의 안정적인 유치와 현 사태의 외교적 긴박함이라는 냉전논리로 기존의 대통령 간접 선거제를 유지하겠다는 호헌 조치를 4월 13일 선언한다. 이후 정부의 개입으로 은폐될 뻔했던 박종철 사건의 전말이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밝혀지고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당시 정치, 문화, 종교 단체 등등의 재야 인사들로 조직된 국민운동본부(흔히 '국본'으로 불린다)를 중심으로 6월 10일 전국적 규모의 시민항쟁이 계획되고 그렇게 하나의 역사가 쓰여진 것이다. 이것이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게 된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6월 항쟁을 다루고 있는 책을 몇 권 읽다 보니 김원의 『87년 6월 항쟁』이 내용으로나 분량으로나 추천할만 하다 싶었다. 최근 돌베게에서 나온 서중석의 『6월 항쟁』은 훨씬 다양하고 방대한 사료로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그만큼 분량을 무시할 수가 없다. 최규석의 『100˚c』는 만화를 통해 6월 항쟁의 주체인 학생과 시민들의 드라마적 요소를 부각시켰다. 실제로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부록처럼 실린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은 막연하게 민주주의의 환상을 가진 나 같은 독자에겐 일침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역시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의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보충할 독서를 필요로 한다(사실 이 책은 청소년들의 학습 보조교재용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본 책의 저자인 김원은 역사적 사실이 사학자의 관점이라는 막대한 영향력 내에서 의미가 생성된다는 점을 고백하면서, 당시 항쟁의 실질적 주체였던 대학생,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자), 노동자, 그리고 기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소설적 형식을 빌려 6월 항쟁의 의미를 추적한다. 6월 항쟁의 의의 못지 않게 한계점이랄까, 못내 아쉬운 지점에 대한 비판과 현실정치(이 책이 다루는 현실 정치의 시점은 2009년이다)의 규탄 역시 대체적으로 공감이 된다. 특히나 MB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몰아세우던 당시 언론의 틀이 자칫 차기 정권에서 우리가 획득해야 할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시의성을 갖고 있다. 독재 정권이라는 틀에 묶인 현정부 이후 차기 정부의 민주적 성취가 자칫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소박한 범주로 제한되거나 만족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의 시기를 지금이라도 뒤돌아보며 내가 민주화를 위한 숭고하고 치열했던 희생과 열정이라는 과거의 영광에만 젖지 않을 수 있었던 지점도, 바로 내가 서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광장의 입구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현실의 시점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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