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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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일반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인용으로 더 유명한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진 이 격언은 대체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무지의 상태에 놓여져 있음을 상기시키기에 더 없이 적합하다. 인류는 끊임 없이 모든 것과 변별되는 자아로서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 물어왔고, 데카르트의 '코기토(이성적 존재)'는 그 물음의 종착점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미궁을 헤매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의심할 바 없는 분명한 주체로 존재하는 것 같으나 사실 우리는 나 아닌 수 많은 타자, 집단,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자아의 정체는 매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주의 별처럼 셀 수 없는 광고, 홍보, 이념, 선전 등등의 공세는 현대인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마약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러한 선전 전략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지금에서는 '프로파간다'라는 용어가 대단히 음흉한 것, 본의를 뒤로 감춘 악질적 선동의 의미로 거의 굳어져 버렸지만 본래 이 용어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가 프로테스탄티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포교 활동이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카톨릭의 교세를 감안할 때 본 용어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차 세계대전 중 행해진 영미 국가의 독일군에 대한 악색선전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며 오늘날의 프로파간다적 의미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자신의 저서인 『프로파간다』를 출간한 해는 1928년으로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프로파간다라는 단어가 주는 음흉함이 굳어져 있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프로파간다의 권위 회복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의 가장 중요한 기질적 요소로 보이는 굳건한 엘리트주의적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에 관한 평가는 근대적 선전 전략의 개척자 답게 극과 극으로 양분되어 전해진다. 그러나 나로서는 다음의 몇 가지 일화를 통해 그와 선전 전략이라는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지성을 가진 이들의 몫이란 그들의 능력으로 대중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이것이 민주사회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매커니즘이라고 확신했다. 대중의 우매함은 무질서를 낳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소위 지성인의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태연하게 담배를 피는 여성을 따가운 눈초리로 흘겨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의 자유권이 충분히 침해 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의 미국 역시 여성들은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 확대를 위해 여성들에게도 남성만큼이나 많은 담배를 판매하고 싶었던 아메리칸 토바고의 의뢰를 받아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여성들의 흡연과 권리의 신장을 교묘하게 결합시켰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모델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매혹적이었고 아메리칸 토바고의 럭키 스트라이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60년대에 이르자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흡연의 유해함에 절감하여 反흡연 운동에 앞장 서게 된다. 그는 평생 자신의 업적 중에 담배광고를 성공시킨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한다.

또 하나 에드워드 버네이스에 관한 유명한 일화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바나나 무역 독점에 기여한 사건이다. 당시 바나나의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이었던 과테말라는 오랜 군부 통치 시절을 지나 민주 정부가 들어서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로부터 바나나 재배지의 매입을 통해 토지 분배를 실시하려 하였고, 이를 저지하려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와 미국 정부의 공조는 과테말라 정부의 행위를 공산주의 국가로의 이행으로 판단하면서 안보의 명목으로 과테말라 민주 정부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과테말라를 미국 안보에 있어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되게끔 하는데 대단한 활약을 펼친 것이다.

 

 

본서의 6장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선전과 정치 지도력>이라는 소제목으로 정치와 대중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음은 본문에서 내용을 발췌한 부분이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신조는 선출된 사람들을 유권자의 눈치나 보는 하인으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일부 비평가들이 늘 불평하는 정치 무기력 현상은 다는 아니더라도 바로 이런 신조에서 기인한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지성을 갖춘 소수의 엘리트야말로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자이다. 그리고 프로파간다는 엘리트에 의해 대중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작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전가의 사고의 기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들의 선전이 세계에 미칠 파급력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결국은 자신과 자신의 우군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묻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이미 죽었고 세계는 여전히 그가 남긴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분명한 건 우리가 스스로 너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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