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30대까지의 기나긴 시간을 나는 그렇게 충실하게 보냈다. 지금도 그 충실함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디디고 선, 그야말로 단단하다고 굳게 믿어왔던 대지가 그렇게도 간단하게 무너져버릴 살 얼음이었다는 건 까맣게 몰랐었다. 그러나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든 물밑에서 이제 나는 꼼짝없이 얼어죽는구나 했더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남아도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흥건히 누워서 지내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아늑했다. 더구나 나는 그 밑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를 어떤 동기도, 어떤 목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네이키드)-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