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 조모컵 공식 홈페이지]
 

어제 저녁,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은 2009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J리그 올스타에게 1대4로 무너졌다. 패배 자체보다도 K리그 올스타의 실망스러웠던 경기력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한판이었지만, 경기 후에 쏟아지는 많은 비판성 기사들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 결국 무엇보다도 '패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논란과 비판을 양산하는 원인인 듯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패배'에만 집착해서는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 이후에 비판 받는 대목들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서울에서 갑자기 인천으로 장소를 바꿨다거나, 현재 K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는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거나, 감독의 전술이 애초부터 문제였다거나, 선수 선발과 합숙 훈련 문제로 잡음이 있었다거나,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이 부족했다거나 하는 등의 비판들은 모두 나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이러한 비판의 가장 주요한 근거는 결국 K리그 올스타가 '패배'했다는 데에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러한 비판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어제 경기 이후에 나온 비판의 많은 부분은 실상 이미 경기가 치러지기 전에 나옴직한 것들에 불과하다. 장소와 선수 선발, 그리고 합숙 훈련 등의 문제들은 이미 K리그 연맹에서 확고한 원칙들을 정했어야 마땅했고, 특히 감독 선정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의 우승팀이 올해 부진에 빠질 수도 있음을 예상해서 다른 방식으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원칙이 부족해서 약간의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조모컵이 이제 2회째를 맞이한 새로운 대회인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비판들은 앞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소소한 운영상의 지적에 불과하거니와, 특히 '패배'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비판이 집중되는 감독과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해에 처음 열렸던 2008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경기력 측면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비해 전혀 나을 게 없었지만, 결국 문전 앞에서의 찬스를 놓치지 않은 덕택에 3대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수장은 공히 감독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했고, 양 팀 선수들은 진지한 승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었다. 그리고 어제 경기를 앞두고도 그러한 인식과 각오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년의 경기 직후 차범근 감독이 환하게 웃고, 일본 선수들이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면 반대로 어제, 차범근 감독은 경기 내내 웃을 수 없었고, K리그 올스타들은 프로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혹독한 비판과 직면해야만 했다.  

이렇게 위치가 뒤바뀐 이유는 단 하나, 경기의 '승패'일 뿐이다. 물론 지난해 패배를 당했던 J리그 올스타가 상대적으로 전의를 불태웠던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제한된 역할의 감독과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단지 '승패'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특히 실점 상황들이 대개 선수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 결과를 두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세밀한 플레이에 경기 내내 밀렸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그건 작년과 다르지 않은, 한일 간의 축구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어느 특정 감독이 잠깐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선수들이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결국, 작년의 '어설픈 승리'에 가리어져있던 문제점들이 올해의 '완벽한 패배'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셈이다. 당연히 경기 이후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일정 부분 감독과 선수들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오직 감독과 선수 탓만을 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패배(지난 승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은 '사람'보다 언제나 빠르다."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K리그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이나 용병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K리그의 선수들은 모두 빠르고 기술도 좋지만 정작 공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K리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게 바로 어제 경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K리그 올스타는 일단 공을 잡으면 치고 나가려는 성향을 보이면서 몸만 빠져나가려 할 뿐 정작 공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던 반면, J리그 올스타는 간결한 패스로 중원을 효과적으로 점유하면서 K리그 올스타들을 하릴없이 우왕좌왕하며 체력만 소모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J리그 올스타의 경기력은 충분히 아름답고 효율적이었으며, 세밀한 패스 게임의 강함은 최근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가 증명한 바와 같다. 즉, 이제 세밀한 패스 게임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세계 축구의 지향점이며, K리그는 바로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어제의 패배 이후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조모컵이 득보다 실이 많은 대회라고 하지만, 그건 패자가 하기에 그리 적합한 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이제 고작 한 경기를 졌고, 또 그것이 현재 K리그와 J리그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두 경기 동안 얻을 것이 많았던 팀은 분명 K리그 올스타였다. 더욱이 올시즌 들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J리그 팀들의 훌륭한 경기력에 K리그 팀들이 고전했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더 이상 K리그가 그저 막연히 K리그의 강함을 자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J리그를 배워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조모컵은 그러한 자극과 교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나는 K리그 올스타전보다 조모컵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기투표를 통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설렁 설렁 골만 많이 넣는 올스타전보다,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진심으로 한번 부닥쳐보는 조모컵이 축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경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때로는 패배의 쓰라림도 맞보게 마련이겠지만, 본래 축구 경기란 건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조모컵을 환영하는 것은 패배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승리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모컵은 꽤나 재미있는 축구경기이기 때문이다. 축구팬으로서 축구경기를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나머지는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ps. 어제 경기를 중계했던 SBS는 K리그와 J리그의 연맹로고 대신 한국과 일본의 국기를 사용했는데, 이건 정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령, K리그 올스타의 리 웨이펑이 한국인이고, J리그 올스타의 이정수가 일본인이란 말인가.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대로, SBS가 그 경기의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내셔널리즘에 기대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캐스터의 다소 편파적인 발언들 또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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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줄을 묶어둔 채 그 줄의 길이를 조금씩 늘여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마침내 두 날개를 활짝 편 매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묶은 줄을 없애야 한다고, 소년은 설명한다. 소년의 이름은 빌리. 무엇 하나 관심을 가진 것이 없는 허약하고 소심한 소년 빌리는, 그러나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물게도 당당하게 빛난다. 그리고 그 순간, 빌리를 향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심과 주의가 집중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소년을 둘러싼 환경도 마치 매가 날 때의 고요와 사뭇 닮아 있다. 

배리 하인즈의 소설 <케스ㅡ매와 소년>을 원작으로 한 켄 로치 감독의 1969년 작 <케스>는 날개를 펴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과 날개를 활짝 펴는 매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대조시켜 보여주는 영화다. 되풀이 되는 엄마와 형의 날 선 대립과 가정 내에서 겪는 소외, 선생님의 묵인 혹은 선동 하에 자행되는 학교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 그리고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교육 속에서 생기를 잃어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소년이 훈련시킨 매가 여전히 야생성을 간직한 채 화려하게 비상하는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되고, 이를 통해 영화는 과연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또는 교육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이 자신의 현재에 진저리를 치고 감히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이유를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소년의 날개를 펼쳐 주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년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대화와 소리 높인 훈시와 매서운 체벌에 근본적으로 결여된 어떤 가치들은, 소년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매를 훈련시킬 때 매를 매개로 하여 고스란히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고 하늘을 나는 매의 모습은 그 완벽한 증거다. 그리고 그 가치란 곧, 매를 훈련시키는 소년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된다. "세상에 길들이다니! 매는 길들지 않아요. 훈련될 뿐이죠."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해서, 소년에게 필요하고 매에게 투영된 것, 그것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존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며 체득하고 증명한 몇몇 가치의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소년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아니, 외려 영화는 소년의 날개가 그저 움츠러드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심지어 완전히 날개가 꺾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예견조차도 서슴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날개가 꺾인 소년이 시련을 계기로 성장하여 날개를 활짝 편다.'라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도식을 <케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도리어 현실의 극한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뜻밖의 결말을 제시하는 <케스>의 마지막 장면이 다소 허무하고 급작스러운 느낌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편으로 그 개운치 않은 뒷맛의 적나라함은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을 거듭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 현실이란, 소년의 발에 묶인 '줄'에 다름 아니다.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칠판에 적은 줄(leash)이라는 단어가 '구속'과 '속박'을 아울러 의미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발에 묶은 줄을 없앤 매가 하늘을 나는 모습과의 대비를 통해 날지 못하는 소년에게 묶인, '구속'과 '속박'이라는 '현실'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단순히 소년의 '성장'이 아니라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ㅡ가정과 학교와 교육의 문제와, 나아가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결여ㅡ을 똑바로 응시한다. 물론 그 시선의 끝에서 마주하는 결말은 끝내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케스>는 '줄에 묶여 있는 한 매는 날 수 없는 법'이라는 '진실'을 결코 외면하려 하지 않고, 그런 이유로 비극적 결말을 서슴지 않는 <케스>의 의연한 시선은 또한 믿음직하기만 하다. 설령 어떤 희미한 희망을 꿈꾸든, 그것은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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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 - 이재호의 경주 문화 길잡이 33 걷는 즐거움
이재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의 뇌도 컴퓨터처럼 '검색' 기능의 활용이 가능하다면, '경주'라는 키워드로 내 뇌를 검색해보면 제법 많은 기록들이 딸려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몇 번의 수학여행 중 경주는 언제나 필수코스였고, 가끔은 경주와 인근한 지역에 사는 덕분에 소풍으로 경주에 가기도 했으며, 더러는 경주를 꽤 좋아했던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일없이 따라가 보기도 했으며, 드물게는 가족과 함께 경주를 찾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많은 단편적인 기록들은 다만 '경주에 가 보았다'는 사실만을 되풀이해서 보여줄 뿐, 정작 경주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본 것인지는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이라는 꽤 감상적인 제목의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실은 낯설기만 한 '경주'의 진면목이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그다지 친절한 책은 아니었다. 천년고도였던 경주를 사랑하고, 우리 문화재를 아끼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저자의 마음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정작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은 온전히 그의 것인 것처럼만 여겨졌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저자가 경주의 이곳저곳을 자신의 두발로 걸어 다니며 "아! 숨이 막힌다.(p36)"라거나, 혹은 "아! 달빛 부서지는 밤이여.(p41)"라거나, 또는 "아! 인생은 연극이고 사랑은 예술이라 했던가.(p50)"하고 감탄성을 발할 때,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 동조를 표하기는커녕 저자의 신출귀몰한 감정선을 차마 따라잡지 못하고 이렇게 투덜거렸다. "아! 뭥미"

저자의 감정선을 따라잡기 어려웠던 데에는 내 무식함이 단단히 한몫을 했겠지만, (감히 말하자면) 저자의 글이 꽤 중구난방 식이고, 더욱이 비문(非文)이 더러 섞여 있어서 책을 읽어가기가 그리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주어가 생략되었다거나 혹은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가 맞지 않는 등의 비문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얘기를 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저 얘기를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이 얘기로 돌아와 "아!"하면서 감탄을 하면, 나는 한숨을 내쉬고 "아! 환장 하겠네"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천년고도를 홀로 즐기는 사람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이의 당혹스러움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즐거움 속에는 내가 함께 즐길 여지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덮을 때가 다가올수록 사정은 좀 나아졌다. 저자의 문체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정작 내 고장에 있으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반구대 암각화나, 혹은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에 대해 새삼스런 흥미가 생긴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차를 타고 후닥닥 백 번 보는 것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한 번 걸으면서 느끼는 게 낫다는 저자의 조언이 그의 진정어린 발걸음과 더불어 가슴에 조금씩 와 닿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을 홀로 누리는 사람을 보는 당혹감으로 불만스러웠다면, 오히려 나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천년고도의 즐거움은 오직 직접 천년고도를 걸은 그 사람만이 홀로 누려야 마땅하다는 단순명쾌한 사실이 뒤늦게 머리를 때린 것이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저자의 글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이건 취향의 문제라고 해도 좋다).

어쨌거나 본래 의도라면, 언젠가 경주를 작심하고 찾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 갈 요량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인데, 이제는 경주에 가게 되더라도 굳이 이 책을 들고 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별로 친절한 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저자의 조언은 경주로 떠나기 전에 반드시 가슴 속에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누리는 '천년고도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금언으로도 손색이 없을 뿐더러, 내가 경주에 꽤 자주 가보고도 그리 대단한 느낌을 받지 못한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을 테니까.

문화유적을 감상할 때도 많은 시간을 들여 걸으면서 느끼고 보면서 감동받기보다 차로 쏙 들어가서 빨리 후닥닥 보는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백 번 보아도 한 번 걸어서 간 것보다 못하다. 무수히 유적지를 다녀본 내 경험으로 볼 때, 같은 곳이라도 차를 타고 급히 본 것은 수십 번 갔다 와도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번 걸어서 갔던 곳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가슴 찡한 그리움이 아련히 파고든다. (p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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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로 떠나다 - 앙니와 룬희의 거침없는 EPL 축구기행, 2007~2008 개정판
최성욱 외 지음 / 엠에스디미디어(미래를소유한사람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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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로 떠나다'라는, 축구팬이 감히 외면하기 어려운 매력 넘치는 제목과 달리, 책 내용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이 책은 앙니(남자)와 룬희(여자)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그들이 대학생 명예기자로 선정되어 프리미어리그를 취재하러 떠난다,를 기본적인 설정으로 취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떠남'과 '여행'과 '축구'가 한 데 어우러질 때 기대함직한,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은 확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과연 제 역할을 하는 것일까, 하고 룬희가 의문을 표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앙니가 박지성 선수에 대한 맨유 선수들 혹은 관계자들의 호평을 알려 준다거나, 또는 설기현 선수를 만나러 갈 때 설기현 선수가 직접 차로 마중을 나와 준다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혹은 기사화된 일들을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으로 재구성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이때 재구성되는 대화나 사건들은 4명의 공저자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하기는 했겠지만, 아무래도 생동감 넘치는 프리미어리그의 매력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결코 환영받기 어려운 방식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룬희와 앙니가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종종 읽는 내가 민망할 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게다 룬희와 앙니의 어설픈 러브 스토리까지!). 

전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을 위한 프리미어리그 소개 만화를 만든다면 딱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제법 알지만 조금 덤벙대고 잘 까부는 앙니와 상대적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조금 알지만 침착하고 예리한 면이 있는 룬희가 때맞춰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하려는 의도이지만 불행히도 꼭 그렇지는 않은 방식으로) 풀어 나가는 건, 대체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면서 약간의 교육적 효과를 더하고자 하는 만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면 이 책은 실제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등장인물들의 작위적인 대화와 행동을 남발하여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었을 '생생함'을 과감히 포기해버렸다는 것이고(물론,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꼭 어설픈 등장인물들과 작위적인 대화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로 인해 얻는 장점이라면 실제로는 적은 분량을 대화로 구성하면서 늘릴 수 있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찾지 못하겠다(그런데도 정말로 '사족'에 불과한 'part5. 프리미어리그에 사족달기'를 제외하면 고작 20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솔직히 이래서야 굳이 왜 프리미어리그로 떠났는지 모르겠다. 미안한 말이지만, 근사한 제목과 책값(13500원)이 많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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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이종남 옮김 / 민음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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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국과 일본의 WBC 결승전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내가 느지막이 TV를 틀었을 때, 옆에서 한국이 경기 종반까지 1대3으로 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이제 일본에 진거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야구계의 격언을 그대로 읊어 주고 아직은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었지만, 엄마가 내 말을 이해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국의 8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가 2루타를 치고 나갔다. 나는 갑자기 흥이 올라 TV화면을 손으로 짚어가며 투수가 공을 던지면 타자는 그 공을 치고, 진루한 주자가 홈으로 돌아오면 점수가 나는 거야, 하는 둥의 설명을 엄마에게 하다가는, 이내 관두어 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야기할 게 많아지는 '야구'에 대해서 나는 도저히 엄마에게 설명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반세기가 넘도록 야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엄마 역시 더는 내게 묻지 않았다. 대체 '야구'를 무어라 설명해야 좋단 말인가.

내가 아는 한 야구에 대한 가장 짧은 정의는 '야구는 공놀이다.'라는 것인데, 이 간단명료해서 심지어 철학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정의는, 그러나 오직 '야구'만이 지닌 특성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실상 '공'을 가지고 하는 거의 모든 스포츠가 '공놀이'라고 불려도 전혀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야구의 특징을 좀 더 드러내 줄 수 있는 정의로는 '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는 스포츠다.'를 들 수도 있겠는데, 야구의 역동적인 면만을 특히 부각한 이러한 정의는 보다 '정적인' 스포츠인 야구를 설명하는 데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잘은 몰라도, 야구는 던지기 직전, 치기 직전, 그리고 뛰기 직전이 훨씬 더 긴장되고 재미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핏 들으면, '던지고 치고 달리는 스포츠다'라는 것은 흡사 미국 프로 레슬링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인정해야 할 것은, 야구가 결코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야구는 단순하게 공을 빠르게 던져서 될 것도 아니고, 그저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며, 무작정 바람같이 달린다고 되는 것도 아닌 스포츠다(물론, 기본적으로는 공을 빨리 던질 수 있고, 배트를 힘차게 휘두를 수 있으며, 빨리 달릴 수 있다면 나쁠 리 없다). 또한, 비록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이기는 해도 당연히 그저 '공놀이'일리도 만무하다(물론, 종종 어떤 상징적 의미로 그저 '공놀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던지고 치고 뛰기 전에 헤아려야 하는 점들이 수없이 많고, 따라서 공이 없는 곳에도 항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야구다. 요컨대, 야구란 결코 한 마디 말로 정의되거나 혹은 손쉽게 설명될 수 없는, 알아야 할 것이 꽤나 많은 복잡다단한 스포츠라는 것이다.

<야구란 무엇인가>는 이렇듯 간단치 않은 야구를 압도적인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이는 책이다. 잠깐 목차를 그대로 옮기자면, 타격, 피칭, 수비, 베이스러닝, 감독, 사인, 벤치, 지명타자, 심판원, 구장 등을 다룬 1부 '야구의 현장'부터 미디어, 원정 경기, 프런트, 스카우트, 통계, 기록, 구단주, 선수노조, 커미셔너, 에이전트 등을 다룬 2부 '막후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동계 훈련, 포스트 시즌, 타격 실종, 가장 위대한 투수, 명예의 전당, 구단 증설, 공과 배트, 규칙의 변천, 장래의 야구상 등을 다룬 3부 '위대한 야구'까지, 이 책은 '야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요소들을 총망라해서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위에서 나열한 어떤 요소도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야구의 모든 것(이때의 '야구'는 물론 '미국야구'를 가리킨다)'을 거의 '완벽하게' 다루고 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야구'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이나 맹목적인 설명과는 거리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야구 현장을 누빈 야구기자 출신의 저자는 야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실상'과 '허상'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야구팬들이 '야구'를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타격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이나 인조잔디 구장의 효과 그리고 구단 증설에 따른 변화 등이 야구팬들이 간과하는 '실상'이라면, 감독의 역할이나 커미셔너의 절대적 권력 그리고 통계의 효능은 야구팬들이 맹신하는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오직 '실상'과 '허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보통의 야구팬이 지나치거나 오해하기 쉬운 것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한편,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실제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명료하게 해석해낸다. 그리고 이로써, 독자는 지금껏 알던 '야구'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야구와 맞닥뜨릴 수 있게 된다. 즉, 이전에는 무심코 넘겼을 야구의 구석구석이 비로소 시야에 가득 들어오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야구의 모든 것'을 다루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유용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저자의 지극한 '야구사랑'이 아닐까 싶다. 야구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에게서 야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건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야구에 대한 날카롭고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자랑하는 저자가 한편으로는 그저 막연한 낙관만이 넘쳐흐르는 동계 훈련을 예찬하고, 야구의 화려한 역동성만을 특히 주목하는 텔레비전에 의해 "유유히 진행되면서 서서히 긴장이 고무되는 야구 특유의 리듬"이 가리어지는 것을 염려하며, 심지어 야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예술'로 대하는 모습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함께 해온 야구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복잡다단한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이 전혀 어렵지 않고, 그저 즐겁고 흥미로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내가 엄마에게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금세 그만둔 건, 내게 야구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게 유일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야구의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야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야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야구를 즐기는 일임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자,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야구팬이라면, 야구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인생에 대한 풍부한 은유로 가득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야구를 사랑하는 한 야구팬의 "가장 완벽한 야구 예찬서"인 이 책을 읽고, 당장 야구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이 모든 게, 다만 야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일에 다름없으니까(아, 근데 난 축구팬이었지 참!).

다음은 필자가 지금까지 한 말 중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빌 스턴이 라디오 토크쇼에서 부린 익살 한 토막.
임종 직전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애브너 더블데이 장군을 불렀다.
"여보게, 야구를 꼭 살리게. 이 나라에선 언젠가 그게 필요하게 될 거야."
필자는 누군가가 야구 당국 관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으면 싶다.
"야구 이야기가 끊이지 않게 하시게. 언젠가 필요하게 될 게 아니고 매일, 지금 당장 필요한 거니까."
자, 우리끼리도 지금 당장 야구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p6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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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개막 카운트다운에 해가 뜨고 지는 2월입니다!
야구 관련 도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다 들어왔습니다.:)
찌질하고 부조리한 삶은 이제 모두 삼진 아웃! 국내최초의 문인야구단 구인회에서 우익수로 뛰고 있는 박상 작가가 야구장편소설 <말이 되냐>로 야구무한애정선언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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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시작되겠죠. 야구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