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줄을 묶어둔 채 그 줄의 길이를 조금씩 늘여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마침내 두 날개를 활짝 편 매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묶은 줄을 없애야 한다고, 소년은 설명한다. 소년의 이름은 빌리. 무엇 하나 관심을 가진 것이 없는 허약하고 소심한 소년 빌리는, 그러나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물게도 당당하게 빛난다. 그리고 그 순간, 빌리를 향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심과 주의가 집중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소년을 둘러싼 환경도 마치 매가 날 때의 고요와 사뭇 닮아 있다.
배리 하인즈의 소설 <케스ㅡ매와 소년>을 원작으로 한 켄 로치 감독의 1969년 작 <케스>는 날개를 펴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과 날개를 활짝 펴는 매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대조시켜 보여주는 영화다. 되풀이 되는 엄마와 형의 날 선 대립과 가정 내에서 겪는 소외, 선생님의 묵인 혹은 선동 하에 자행되는 학교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 그리고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교육 속에서 생기를 잃어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소년이 훈련시킨 매가 여전히 야생성을 간직한 채 화려하게 비상하는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되고, 이를 통해 영화는 과연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또는 교육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이 자신의 현재에 진저리를 치고 감히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이유를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소년의 날개를 펼쳐 주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년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대화와 소리 높인 훈시와 매서운 체벌에 근본적으로 결여된 어떤 가치들은, 소년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매를 훈련시킬 때 매를 매개로 하여 고스란히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고 하늘을 나는 매의 모습은 그 완벽한 증거다. 그리고 그 가치란 곧, 매를 훈련시키는 소년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된다. "세상에 길들이다니! 매는 길들지 않아요. 훈련될 뿐이죠."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해서, 소년에게 필요하고 매에게 투영된 것, 그것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존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며 체득하고 증명한 몇몇 가치의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소년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아니, 외려 영화는 소년의 날개가 그저 움츠러드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심지어 완전히 날개가 꺾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예견조차도 서슴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날개가 꺾인 소년이 시련을 계기로 성장하여 날개를 활짝 편다.'라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도식을 <케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도리어 현실의 극한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뜻밖의 결말을 제시하는 <케스>의 마지막 장면이 다소 허무하고 급작스러운 느낌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편으로 그 개운치 않은 뒷맛의 적나라함은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을 거듭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 현실이란, 소년의 발에 묶인 '줄'에 다름 아니다.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칠판에 적은 줄(leash)이라는 단어가 '구속'과 '속박'을 아울러 의미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발에 묶은 줄을 없앤 매가 하늘을 나는 모습과의 대비를 통해 날지 못하는 소년에게 묶인, '구속'과 '속박'이라는 '현실'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단순히 소년의 '성장'이 아니라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ㅡ가정과 학교와 교육의 문제와, 나아가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결여ㅡ을 똑바로 응시한다. 물론 그 시선의 끝에서 마주하는 결말은 끝내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케스>는 '줄에 묶여 있는 한 매는 날 수 없는 법'이라는 '진실'을 결코 외면하려 하지 않고, 그런 이유로 비극적 결말을 서슴지 않는 <케스>의 의연한 시선은 또한 믿음직하기만 하다. 설령 어떤 희미한 희망을 꿈꾸든, 그것은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