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 조모컵 공식 홈페이지]
 

어제 저녁,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은 2009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J리그 올스타에게 1대4로 무너졌다. 패배 자체보다도 K리그 올스타의 실망스러웠던 경기력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한판이었지만, 경기 후에 쏟아지는 많은 비판성 기사들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 결국 무엇보다도 '패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논란과 비판을 양산하는 원인인 듯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패배'에만 집착해서는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 이후에 비판 받는 대목들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서울에서 갑자기 인천으로 장소를 바꿨다거나, 현재 K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는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거나, 감독의 전술이 애초부터 문제였다거나, 선수 선발과 합숙 훈련 문제로 잡음이 있었다거나,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이 부족했다거나 하는 등의 비판들은 모두 나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이러한 비판의 가장 주요한 근거는 결국 K리그 올스타가 '패배'했다는 데에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러한 비판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어제 경기 이후에 나온 비판의 많은 부분은 실상 이미 경기가 치러지기 전에 나옴직한 것들에 불과하다. 장소와 선수 선발, 그리고 합숙 훈련 등의 문제들은 이미 K리그 연맹에서 확고한 원칙들을 정했어야 마땅했고, 특히 감독 선정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의 우승팀이 올해 부진에 빠질 수도 있음을 예상해서 다른 방식으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원칙이 부족해서 약간의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조모컵이 이제 2회째를 맞이한 새로운 대회인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비판들은 앞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소소한 운영상의 지적에 불과하거니와, 특히 '패배'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비판이 집중되는 감독과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해에 처음 열렸던 2008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경기력 측면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비해 전혀 나을 게 없었지만, 결국 문전 앞에서의 찬스를 놓치지 않은 덕택에 3대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수장은 공히 감독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했고, 양 팀 선수들은 진지한 승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었다. 그리고 어제 경기를 앞두고도 그러한 인식과 각오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년의 경기 직후 차범근 감독이 환하게 웃고, 일본 선수들이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면 반대로 어제, 차범근 감독은 경기 내내 웃을 수 없었고, K리그 올스타들은 프로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혹독한 비판과 직면해야만 했다.  

이렇게 위치가 뒤바뀐 이유는 단 하나, 경기의 '승패'일 뿐이다. 물론 지난해 패배를 당했던 J리그 올스타가 상대적으로 전의를 불태웠던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제한된 역할의 감독과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단지 '승패'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특히 실점 상황들이 대개 선수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 결과를 두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세밀한 플레이에 경기 내내 밀렸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그건 작년과 다르지 않은, 한일 간의 축구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어느 특정 감독이 잠깐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선수들이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결국, 작년의 '어설픈 승리'에 가리어져있던 문제점들이 올해의 '완벽한 패배'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셈이다. 당연히 경기 이후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일정 부분 감독과 선수들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오직 감독과 선수 탓만을 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패배(지난 승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은 '사람'보다 언제나 빠르다."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K리그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이나 용병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K리그의 선수들은 모두 빠르고 기술도 좋지만 정작 공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K리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게 바로 어제 경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K리그 올스타는 일단 공을 잡으면 치고 나가려는 성향을 보이면서 몸만 빠져나가려 할 뿐 정작 공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던 반면, J리그 올스타는 간결한 패스로 중원을 효과적으로 점유하면서 K리그 올스타들을 하릴없이 우왕좌왕하며 체력만 소모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J리그 올스타의 경기력은 충분히 아름답고 효율적이었으며, 세밀한 패스 게임의 강함은 최근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가 증명한 바와 같다. 즉, 이제 세밀한 패스 게임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세계 축구의 지향점이며, K리그는 바로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어제의 패배 이후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조모컵이 득보다 실이 많은 대회라고 하지만, 그건 패자가 하기에 그리 적합한 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이제 고작 한 경기를 졌고, 또 그것이 현재 K리그와 J리그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두 경기 동안 얻을 것이 많았던 팀은 분명 K리그 올스타였다. 더욱이 올시즌 들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J리그 팀들의 훌륭한 경기력에 K리그 팀들이 고전했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더 이상 K리그가 그저 막연히 K리그의 강함을 자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J리그를 배워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조모컵은 그러한 자극과 교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나는 K리그 올스타전보다 조모컵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기투표를 통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설렁 설렁 골만 많이 넣는 올스타전보다,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진심으로 한번 부닥쳐보는 조모컵이 축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경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때로는 패배의 쓰라림도 맞보게 마련이겠지만, 본래 축구 경기란 건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조모컵을 환영하는 것은 패배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승리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모컵은 꽤나 재미있는 축구경기이기 때문이다. 축구팬으로서 축구경기를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나머지는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ps. 어제 경기를 중계했던 SBS는 K리그와 J리그의 연맹로고 대신 한국과 일본의 국기를 사용했는데, 이건 정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령, K리그 올스타의 리 웨이펑이 한국인이고, J리그 올스타의 이정수가 일본인이란 말인가.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대로, SBS가 그 경기의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내셔널리즘에 기대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캐스터의 다소 편파적인 발언들 또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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