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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마운틴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에서 보내는 메일 혹은 문자메시지는 내게 거의 소용이 없다. 알라딘에서는 꽤나 자주 이런저런 소식들을-아마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내게 전해주는데, 대개의 경우 나는 제목만 보고 삭제를 해버린다. 심지어는 '스팸차단'과 '삭제' 사이에서 꽤 고민하는 편이다. 하지만 끝내 '스팸차단'을 하지 않는 이유는 드물게 혹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얼마 전 '빌 브라이슨' 운운하며 전해진 소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자세히 읽어보니 빌 브라이슨이 새로운 책을 낸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책을 추천하는 것뿐이었지만, 어쨌거나 웃기는 사람이 웃기는 책이라고 추천해주는데 웃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곧 나는 그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은ㅡ맹세하거니와 나는 빌 브라이슨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목의 책을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산을, 등산을, 하물며 등반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ㅡ<럼두들 등반기>였다.
<럼두들 등반기>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는 것이었다.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통계를 활용하고 과장되지만 재미있는 일화를 덧붙이고 심술맞게 구는 듯하다가 끝내 찬사를 보내는 건 빌 브라이슨이 가장 빈번히 그리고 훌륭히 해내는 것이고, 끝내 독자가 그 대상에 매료되지 않기란 어렵다. 예컨대, 빌 브라이슨이 유럽에 대해, 영국에 대해, 미국에 대해,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독자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 호의를 가지게 마련이고, 이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 자체가 바로 그런 대상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이제 나는 특권을 누리는 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시라 권한다."라는 말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이 책에서는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고, 이는 당연히 이 책에 대한 찬사는 아니다.
물론 빌 브라이슨의 서문 외에도 이 책에서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무려 12000.15미터에 이르는 럼두들 산을 등반하기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팀을 이루었을 때, 다시 말해 이제 막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었던 때는 기대감과 흥미로움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과 전문분야 자체가 그들의 행태와 어우러져 재미있는 농담으로 기능했기에 각 대원들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책장을 앞으로 넘겨야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길 일이 없었던 건 꼭 등장인물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전문분야와 행태와의 괴리가 즐거움을 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러한 전복적인 특성이 외려 공고해지는 듯했고, 그건 더이상 그러한 괴리로부터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떤 흥미로운 사건도 이 책에는 드물었다.
옮긴이주가 꽤 들어간 이 책에서 옮긴이는 옮긴이주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유려함과 익살 때문에 시와 비슷한 성격을 지녀 옮길 때 옮긴이주를 붙이지 않으면 도저히 그 뜻을 전할 길이 없을 때가 많았다." 이 책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부분은 대체로 언어유희가 이루어지는 부분일 때가 많았고 하기에 이 소설이 시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옮긴이주의 도움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었다(웃기는 데 해설이 필요하다면 그건 더 이상 웃기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소설에는 옮긴이의 말대로 잘 안 풀리는 미스터리가 몇 가지 숨어 있고, 사실을 말하면 나는 옮긴이조차 답을 말하기 어렵다고 한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옮긴이가 쉽게 풀린다고 말한 미스터리조차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이 책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물론 내가 영어공부를 한 20년 했지만 여전히 영어를 못하는 건 내 잘못이다).
빌 브라이슨이 이 책을 그토록 추천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빌 브라이슨도 언어유희에 꽤 집착하는 작가고, 그렇기에 그가 이 책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납득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빌 브라이슨의 책에서 종종 난감했던 부분이 그가 언어유희에 집착하던 순간이고,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좋아하기 어려운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언어의 벽을 실감하게 해주는 책이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실은 언어의 벽이 아니라도 과연 내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책인지도 회의적이다(물론 여전히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추천하기에 좋아했건만 읽고 나서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어서 심히 유감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