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죽였습니까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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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읽을 타임이 된 거 같아서 헌책방에서 사가지고 온 『아내를 죽였습니까』. 결국은 내 속만 터지고 말았다. 제목을 '속 터지고 싶으십니까'로 바꿔야 한다. 심리 스릴러라는 게 그런 부분이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정말 그 끝을 보는 거 같다.

로펌 변호사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월터는 능력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는 부인 클라라와 숨 막히는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아름다운 집과 믿음직한 친구들, 경제적인 부까지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은 없지만, 사사건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부인 때문에 절친들과 척을 지게 되는 일이 빈번해지자 월터는 이혼을 얘기한다. 없는 여자까지 만들어 몰아붙이는 통에 싸우고 집을 비운 날, 클라라는 자살 시도를 하고 이혼 얘기는 또다시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된다. 어떻게든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던 월터는 아내를 죽이는 악몽까지 꾸게 되고, 위독한 장모님의 전보를 받고 병원으로 가던 아내는 실제로 벼랑에서 떨어져 시체로 발견된다. 무고한 월터는 사건 당일 알리바이와 숨겼던 몇 가지 사항들 때문에 계속 궁지로 몰리게 되는데...

 

 

『아내를 죽였습니까』 첫 챕터에는 실제로 아내를 죽인 키멜이라는 남자가 나온다. 나는 그래서 주인공이 키멜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챕터부터 등장하는 월터가 주인공이었다. 키멜이라는 남자는 정말 살인자지만, 월터는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지만 그저 합법적으로 이혼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클라라와 살 때도, 클라라가 죽은 후에도 정말 속 터지게 답답한 행보만을 거듭했던 월터는 아무래도 범인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형사 코비와 호기심에 한 번 찾아갔을 뿐인 키멜과 얽히며 마지막 챕터까지 환장의 콜라보를 완성한다.

가끔 세상일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래봤다', 뭐 이런 일도 있다는 거다. 월터의 문제는 그런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니 숨기고 감추다가 악수를 거듭한 거다. 주변 사람들은 월터를 의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클라라와 사는 그의 고충의 이해하고 불쌍히 여겼으니까... 하지만 변호사인 월터는 작은 이야깃거리 하나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미리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달까?

읽는 동안 정말 너무 속이 답답해서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쉬었다가 다시 읽었다. 심지어 모두 사악한 클라라가 꾸민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녀가 언제 재등장할지 기다리기도 했다. 월터가 버렸던 신문 기사를 다시 스크랩북에 끼워 놓은 사람이 클라라고 그 기사를 본 순간, 이런 자작극을 떠올린 거라는 생각도 해 봤는데 다 아니었다. 바보, 답답이, 월터... 월터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코비가 키멜을 고문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심한 거 같아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 시절에는 그랬다고, 작가가 당시 경찰에게 자문을 얻고 확인까지 받아 책을 판매했다고 하니 놀랍다. 이전에 거의 단편으로만 접했던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유럽에서 훌륭한 심리소설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근데 다른 장편들도 이런 스타일이면 내가 자주 읽을 수 있는 작가는 아닐 거 같다. 너무 지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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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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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서 떨어지고 노인 요양원 수레국화에서 일하게 된 열여덟의 그레구아르. '곁가지 문학' 서점을 운영했던 요양원 거주자 피키에 씨와 가까워지면서 그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고된 업무에서의 탈출구로 시작된 낭독은 점점 그레구아르를 책에 빠져들게 만들고 피키에 씨의 코치를 받으면서 사적인 모임이었던 낭독 시간은 전체 거주자와 방문 가족을 위한 이벤트로 자리 잡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예감한 피키에 씨는 요양원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퐁트브로 수도원까지의 순례와 낭독을 그레구아르에게 부탁한다. 여정을 시작한 그레구아르는 이마저도 요양원 운영에 이용하는 마송 원장의 행동에 화를 내고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는데...

 

 

생일선물로 읽고 싶은 책 얘기하라고 할 때 바로 떠오른 책이 이거였다. 공교롭게도 또 프랑스 작가란 말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읽었던 프랑스 소설과 소재 자체가 달라서인지 늘 느꼈던 문화적 거리감은 거의 없었다.

공부랑 책이랑은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 어려웠던 형편의 그늘에서 늘 고생하고 소극적이었던 어머니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버텨나가던 그는 피키에 씨와 책, 그리고 낭독을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바로 보고 불합리한 처우와 사회에 맞설 의지를 얻는다. 

 

"… 너는 금세 푹 빠져들게 될 거다. 텍스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건 정말 짜릿하고 감동적이니까. 어떤 한 단어 때문에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의 어떤 단락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을, 밀려갔다 싶어도 매번 새롭게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되밀려오는 집단창작물이라고 생각하렴. 만약 요행히 그게 인생과 직결된다면, 거기서 너는 걸작을 만나게 되는 거야."

-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中 p.112

다행히, 반항심과 분노가 불쑥 치민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처럼 우리가 정말 두려울 때 손을 맞잡을 수도 없다면, 이 사회는, 이 모든 전문적인 의료기술들은 도대체 왜 존재한단 말인가?


-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中 p.141

혼수상태에 빠진 모렐 부인을 실은 구급차가 긴급할 게 없다고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회전 경광등도 켜지 않는 장면은 약간 충격이었다. 죽음이 임박했으니 긴급할 게 없다는 게 논리적인 건가? 구급차는 무조건 사이렌과 회전 경광등이 기본이고 언제든 차선 양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었는데 이미 코마 상태인 환자, 곧 죽음이 자명한 환자라고 아무런 신호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송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한 누군가가 그저 이번 차례에 해당되는 번호표 받은 사람처럼 치부되는 것,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서 그레구아르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레구아르는 재봉일하는 어머니가 당하는 부당한 대우도 참지 않는다. 무수한 세월을 그저 견뎌온 어머니도 결국 그레구아르의 행동을 정말 잘한 일이라며 지치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고 그런 권리를 누군가에게 주게 되면 그 사람은 사람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게 된다. 대체 왜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도록 그냥 두지 않을까?

 

"네가 옳다고 믿고, 확신에 가득찬 무언가를 위해 행동에 나설 때 말이다. 타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야심을 품는 건 문제가 있어. 근본적인 문제가. 손을 놓는 순간, 바로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게 되지. 예를 들어 네가 서점을 운영한다고 치자. 너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신간을 읽지. 그런데 남들보다 먼저 읽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결정하는 건 시건방진 짓이야. 무슨 자격으로 그걸 결정해? …"


-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中 p.52

책을 읽으며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는 그레구아르에게 피키에 씨는 독서를 계속할수록 독단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임을, 그리고 자신보다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에 책을 읽는 것은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임을 이야기한다.

피키에 씨의 의도와는 좀 다르지만, 나도 책과 사람과의 잘못된 만남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에게 좋다고 다른 모두에게 좋다는 보장이 없어서 이렇게 리뷰를 쓸 때마다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막 좋다고 쓰기도 그렇고, 아주 별로라고 쓸 수도 없고, 솔직함의 경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가끔 내가 쓴 글을 보고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친구에게 나의 감상임을 감안하고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책을 볼 때 누군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아, 이 책은 000이 좋아하겠다. 재미있어하겠다.' 이런 기분이 정말 강해져서 권한 책을 당사자가 즐겁게 읽었다고 하면 그때는 진짜 기쁘다. 이건 책과 사람의 천생연분 같은 만남인 건가.

그레구아르의 성장기이지만, 그 안에서 동성애, 고령화, 요양원 같은 의료 시스템, 배척을 내세우는 무례한 극우 세력 등 프랑스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작가 마르크 로제는 직업적인 낭독가다. 그래서 이 소설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나 했는데 순수한 허구라고 한다.

책을 한 권 읽었지만, 무수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접한 느낌이 드는 건 그레구아르가 책 속에서 책을 읽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이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떠올렸다면 이 책과의 만남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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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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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애틋한 기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머니'는 단어 자체로 뭔가 그리운 느낌이 있다. '엄마'가 눈물 버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6명의 작가가 저마다 그려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명만으로 기대되었던 것은 다소 감상적인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나니 이 또한 나의 편향된 생각이었다는 깨우침이... 내가 기대했던 감성이 느껴졌던 작품도 있었지만, 할머니라는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이라는 게 얼마든지 크고 넓을 수 있다는 걸 작가들이 보여준 거 같다. 역시 뭐든 속단하는 건 아니다.

 

 

거미줄처럼 엉킨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기준으로 재단한다. 나에게 할머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할머니의 모습에 대어 그 사람을 맞추려고 한다. 바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무시된다. 그 사람은 할머니 전에 인간이라는 거... 나에게는 할머니라는 역할을 기준으로 재단되고 있지만 그 전에 나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맺고 있는 관계로 판단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면 다소 냉소적이 될 때가 있다.

이 책에 담긴 총 6편의 소설 속에서 작가들은 할머니가 우리 모두와 같은 성장 과정을 거친 인간이고 여자임을 그려낸다. 할머니이자 엄마이자 딸이기도 한 사람, 나름의 희망과 사랑,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고 있는 인간 말이다. 그래서 읽기 전에 상상했던 애틋함보다 훨씬 풍성한 다른 궤적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명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약간 쓸데없이 열정이 넘쳐서,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인정한다. 할머니는 이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항상 말하곤 했다.

"진서야, 모든 사람 마음이 너와 똑같지 않아. 선을 지켜."


- 「선베드」 中 p.81

 

강화길 작가의 작품 「선베드」의 화자 진서는 참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작가 노트의 코멘트가 궁금했는데 딱 두 문장 적혀있어서 그냥 웃었다. 그래 모든 인간관계는 선을 지켜야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생판 남이든, 어떤 관계에서는 그걸 이제야 조금씩 인정해 나간다.

 

민아는 입술을 씰룩였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젊었을 때 짊어졌던 고민들, 절망이 낳은 수많은 포기들, 그때의 사회가, 그때의 선배 세대가 남긴 자국과 굴레에 대해 얘기하며 해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그걸 전달하는 건 무의미할 것 같았다. 과거의 자신이 앞선 세대의 얘기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민아는 알고 있었다.

 

- 「아리아드네 정원」 中 p.227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가장 예상을 많이 비껴간 작품이었다. 마지막 이 작품까지 다 읽고 나니 내가 '할머니'라는 단어에 얽매여서 이 책의 정체성 자체를 너무 제한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을 하게 되었다. 화해와 화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이 쉬운 사회에 살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는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세가 무엇인지는 나이를 얼마나 먹던지에 상관없이 어렵고 또 어렵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도 정답은 없다.

작품마다 조이스 진이라는 작가의 일러스트가 한 점씩 부록처럼 들어가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했던 할머니를 회상하게 하고,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되는 걸까 싶기도 하며, 미처 엄마와 할머니가 나와 똑같은 인간, 사회 구성원이라는 걸 먼저 생각하지 못했던 걸 반성하게도 할 것인 이 책이라서 매3책 프로젝트의 마지막으로 더 괜찮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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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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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한 사카니시는 존경하는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 사무소에 채용된다. 동경하던 건축가와 일하게 된 카니시는 연필 깎는 법부터 사무소의 방식을 배워 나간다.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참여하게 된 사무소는 준비를 위해 모든 직원이 힘을 기울이고, 늘 해 오던 대로 여름을 보내기 위해 가루이자와의 별장으로 옮겨 간다. 여름 별장에서의 합숙으로 상사와 동료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고, 건축가로서도 한층 성장하게 된 사카니시는 무라이 슌스케의 신임을 받는다. 경합을 얼마 안 남겨 두고 최종 정리를 위해 단둘이 내려 간 여름 별장에서 이동 중에 무라이 슌스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설계 경합 참여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읽으면서 작가가 건축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해도 실제 자신의 직업도 아닌 부분을 이렇게 잘 다룰 수 있다는 게 참 감탄스러웠다. 저자는 '건축에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설계도집도 찾아보고 관련 서적도 곧잘 읽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위해 특별히 취재할 필요는 없었다'고 하니 대단하다. 더군다나 데뷔작인데 말이다.

 

 

화자인 사카니시는 건축이든 일이든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조화와 세심함이 돋보이는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을 동경한다. 설계 사무소에 입사하기 전부터 그의 건축물을 찾아보고 실측하는 등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처음 경험하는 여름 별장 근무를 통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부인 말고 다른 여자가 있고, 그 여자를 위해 농장을 지어 그곳을 직원에게 관리하게 했으며 그 업무가 곧 자신에게 넘어올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큰 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밝고 넓으며 공적인 공간으로 하지 않은 것도 선생님이 만드시는 주택답다. 열린 곳은 마음껏 열고, 닫을 곳은 닫는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고.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中 p.271

어떤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던 거 같다. 사카니시가 가르침에 따라 연필을 깎고 선을 긋고 모형을 만드는 것을 활자로 따라가면서 함께 연필을 깎고 선을 긋는 느낌이었달까. 여름 별장에서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쌓는 장면에서도 함께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는 기분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단정한 작가의 문체 덕분에 오히려 상상력이 자극된 덕일 지도 모르겠다. 읽을수록 건축뿐 아니라 새, 식물 등 자연과 음식 등에도 작가의 조예가 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라이 슌스케는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라고 말한다. 때문에 사카니시는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고 생명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열정과 능력을 발휘했던 국립현대도서관의 모형처럼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사카니시의 건축가로서의 여정 안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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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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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3책 두 번째 책은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일기장이다.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일기장. 회고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읽어보니 일기장에 가깝다.

20대 중반, 동성애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세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 그리고 작가인 코너 프란타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과거의 자신을 다독이고 미래의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 아울러 독자들도 같은 일을 할 수 있게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들려준다.

 

 

자신이 행복을 느꼈던 공간, 순간, 그리고 세상이 끝나버린 거 같았던 이별부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실행한 심리 치료에 관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친구에게 털어놓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덕분에 비슷한 느낌의 경험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하고, 설득되기도 하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맨눈으로 보면 멀쩡해 보여도 현미경을 들이대면 넌 흠투성이잖아. 하지만 한 가지 비밀을 귀띔하자면, 너 말고는 아무도 네게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아. 전부 네 머릿속에 있는 거니까 네 자신을 너무 다그치거나 애태우지 마.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43

나는 꼬맹이 때부터 일정 짜기를 제일 좋아했다.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서라기보다, 우리에게 얼마나 통제력이 없는지 실감하면 겁이 났기 때문이다.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76

여행 일정을 미친 듯이 짜서 새로 여행 가이드북 하나를 나라별로 만들어서 여행을 갔었던 나는 내가 싫어했던 게 내가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이걸 확신했을 때는 작년에 스페인에 갔을 때였는데 사실 거의 준비 없이 간 여행에서 '내가 이래서 그렇게 미친 듯이 검색을 하고 필기를 하고 프린트를 했구나'라는 걸 깨달으며 그럼에도 '아무것도 미리 찾고 결정하지 않겠어'라는 결심을 어느 정도는 지킨 스스로를 약간은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그래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

 

요즘 나는 본의 아니게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스물네 살인데 사람들과 같이 있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꼭 절반만 남은 사람처럼. 반쪽은 진즉에 떠나고 없는데 그 사실을 방금 깨달은 사람 말이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너 자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너와 같이 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235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요즘 나에게 한 번씩 링크를 보내서는 어떤지 묻곤 한다. 링크는 예쁘게 프린트된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들이다. 나는 격하게 예쁘다고 반응하기도 하고 심심하다거나 프린트가 너무 커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지만, 친구는 이제서야 내 취향을 알겠다며 놀라기도 하고 본인이랑 얼마나 다른지 새삼스럽게 실감하기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얘기 왜 이러나 했는데 이제라도 내 취향을,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겠다고, 애쓰는 거 같아 한편 고맙기도 하다. 사실 이런 대화는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과 자주 나눠야 하는데 말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거나 어디에 소속되어 있거나 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알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나로 충분하니까.

회의와 비판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최선을 다해 서로 선의를 나눠야 한다. 수많은 방송과 블로그, 신문이 비관론을 쏟아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찢어놓는 데 혈안이 된 듯하다. 남을 단죄하는 이 소름 끼치는 세태에는 적의와 해코지만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123

우리는 화해와 화합이 아니라 반목과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는 약점이나 잘못을 찾으려고 한다. 참 피곤한 세상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열린 마음과 선의로만 대하기에는 무서운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울의 땅굴 속으로 파고 들려고 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친절이나 배려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조금은 긍정적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책 속에는 산문만 있는 게 아니라 시, 그리고 저자가 찍은 사진도 담겨 있다. 읽기 전에 쭉 페이지를 넘겨 보며 사진들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는데 저자가 찍었다고 하니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재능과 더불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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