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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평점 :
범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노라가 엄마가 살면서 저질렀던 일들은 범죄다. 엄마가 물색해 온 대상에게 완전 범죄의 사기를 실행하기 위한 완벽한 파트너로 키워진 노라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양아버지 레이먼드에게, 자신을 성추행한 조셉에게 저지른 일은 범죄일까?
남자와 사기, 두 가지 밖에 몰랐던 엄마는 노라에게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 등 매번 다른 이름과 상황, 성격을 부여한 소녀들을 연기하도록 종용한다. 착한 딸, 쓸모 있는 인정받는 존재이고 싶었던 노라는 꽤 괜찮은 파트너로 성장한다. 아버지가 다른 언니 리를 만나고 자신 이전에 언니가 엄마의 파트너였고, 범죄와 엄마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언니가 자신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은 노라는 급이 다른 범죄자 레이먼드와 엄마의 결혼을 기점으로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이후 언니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이어가던 그녀는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고,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구하게 위해 과거의 자신을 소환한다.

없어진 돈 때문에 엄마가 레이먼드에게 무기력하게 폭행당하던 날, 노라는 엄마를 향한 총구 앞을 막아서며 자신이 그 돈을 가져간 것처럼 유인한다. 그리고 결국 어설프게나마 레이먼드를 제압하고 피를 흘리면서도 그를 찾는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FBI가 레이먼드를 체포할 수 있는 증거를 챙겨 언니와 도주한다. 여기서 노라가 레이먼드에게 저지른 짓은 범죄인가? 생존을 위한 행동은 어디까지 괜찮은 걸까?
이야기는 노라의 과거와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노라의 현재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노라의 감추고 싶은 거 투성이인 과거는 결국 사랑하는 아이리스에게까지 다 드러나는 상황이 되는데 오히려 그렇게 되어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간다.

노라에게는 엄마라는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였다. 하지만 가장 큰 구원자도 가족인 언니였다. 그래서 언니와 자신, 그리고 새롭게 꾸린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패 하나 감추는 건 노라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FBI와 언니에게까지 감춘 레이먼드의 USB, 은행 강도 사건에서 챙긴 안전금고 열쇠 2개, 왜 저걸 계속 감출까 했을 때, 노라가 엄마와의 면회에서 USB를 이용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영원히,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과거의 유산(?) 때문에 이건 버릴 수 없는 그녀의 습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차게 엄마를 상대했지만 면회를 마치고 로비에서 엉엉 우는 노라가 안쓰러웠다.
필요하다면 싸울 것이다. 레이먼드가 내 뒤를 쫓아온다면, 머리 회전은 빠르지만 제대로 총을 쏘지는 못했던, 공포에 떠는 애슐리를 맞이하는 대신 내가 나의 분신으로 살았던 모든 소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레베카는 나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사만다는 숨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헤일리는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케이티는 나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주었고 애슐리는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라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中 p.465
감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노라의 목숨을 노리는 레이먼드가 있지만,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언니, 웨스, 아이리스가 있고, 무엇보다 그녀 자체가 생존에 특화되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범죄와 경계가 모호한 일들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