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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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애틋한 기억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머니'는 단어 자체로 뭔가 그리운 느낌이 있다. '엄마'가 눈물 버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6명의 작가가 저마다 그려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명만으로 기대되었던 것은 다소 감상적인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나니 이 또한 나의 편향된 생각이었다는 깨우침이... 내가 기대했던 감성이 느껴졌던 작품도 있었지만, 할머니라는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이라는 게 얼마든지 크고 넓을 수 있다는 걸 작가들이 보여준 거 같다. 역시 뭐든 속단하는 건 아니다.

 

 

거미줄처럼 엉킨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기준으로 재단한다. 나에게 할머니라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할머니의 모습에 대어 그 사람을 맞추려고 한다. 바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무시된다. 그 사람은 할머니 전에 인간이라는 거... 나에게는 할머니라는 역할을 기준으로 재단되고 있지만 그 전에 나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맺고 있는 관계로 판단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면 다소 냉소적이 될 때가 있다.

이 책에 담긴 총 6편의 소설 속에서 작가들은 할머니가 우리 모두와 같은 성장 과정을 거친 인간이고 여자임을 그려낸다. 할머니이자 엄마이자 딸이기도 한 사람, 나름의 희망과 사랑,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고 있는 인간 말이다. 그래서 읽기 전에 상상했던 애틋함보다 훨씬 풍성한 다른 궤적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명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약간 쓸데없이 열정이 넘쳐서,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인정한다. 할머니는 이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항상 말하곤 했다.

"진서야, 모든 사람 마음이 너와 똑같지 않아. 선을 지켜."


- 「선베드」 中 p.81

 

강화길 작가의 작품 「선베드」의 화자 진서는 참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작가 노트의 코멘트가 궁금했는데 딱 두 문장 적혀있어서 그냥 웃었다. 그래 모든 인간관계는 선을 지켜야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생판 남이든, 어떤 관계에서는 그걸 이제야 조금씩 인정해 나간다.

 

민아는 입술을 씰룩였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젊었을 때 짊어졌던 고민들, 절망이 낳은 수많은 포기들, 그때의 사회가, 그때의 선배 세대가 남긴 자국과 굴레에 대해 얘기하며 해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그걸 전달하는 건 무의미할 것 같았다. 과거의 자신이 앞선 세대의 얘기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민아는 알고 있었다.

 

- 「아리아드네 정원」 中 p.227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가장 예상을 많이 비껴간 작품이었다. 마지막 이 작품까지 다 읽고 나니 내가 '할머니'라는 단어에 얽매여서 이 책의 정체성 자체를 너무 제한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을 하게 되었다. 화해와 화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이 쉬운 사회에 살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는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세가 무엇인지는 나이를 얼마나 먹던지에 상관없이 어렵고 또 어렵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도 정답은 없다.

작품마다 조이스 진이라는 작가의 일러스트가 한 점씩 부록처럼 들어가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했던 할머니를 회상하게 하고,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되는 걸까 싶기도 하며, 미처 엄마와 할머니가 나와 똑같은 인간, 사회 구성원이라는 걸 먼저 생각하지 못했던 걸 반성하게도 할 것인 이 책이라서 매3책 프로젝트의 마지막으로 더 괜찮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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