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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평점 :
매3책 두 번째 책은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이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일기장이다.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일기장. 회고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읽어보니 일기장에 가깝다.
20대 중반, 동성애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세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 그리고 작가인 코너 프란타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과거의 자신을 다독이고 미래의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 아울러 독자들도 같은 일을 할 수 있게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들려준다.

자신이 행복을 느꼈던 공간, 순간, 그리고 세상이 끝나버린 거 같았던 이별부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실행한 심리 치료에 관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친구에게 털어놓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덕분에 비슷한 느낌의 경험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하고, 설득되기도 하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맨눈으로 보면 멀쩡해 보여도 현미경을 들이대면 넌 흠투성이잖아. 하지만 한 가지 비밀을 귀띔하자면, 너 말고는 아무도 네게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아. 전부 네 머릿속에 있는 거니까 네 자신을 너무 다그치거나 애태우지 마.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43
나는 꼬맹이 때부터 일정 짜기를 제일 좋아했다.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서라기보다, 우리에게 얼마나 통제력이 없는지 실감하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을 미친 듯이 짜서 새로 여행 가이드북 하나를 나라별로 만들어서 여행을 갔었던 나는 내가 싫어했던 게 내가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이걸 확신했을 때는 작년에 스페인에 갔을 때였는데 사실 거의 준비 없이 간 여행에서 '내가 이래서 그렇게 미친 듯이 검색을 하고 필기를 하고 프린트를 했구나'라는 걸 깨달으며 그럼에도 '아무것도 미리 찾고 결정하지 않겠어'라는 결심을 어느 정도는 지킨 스스로를 약간은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그래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
요즘 나는 본의 아니게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스물네 살인데 사람들과 같이 있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꼭 절반만 남은 사람처럼. 반쪽은 진즉에 떠나고 없는데 그 사실을 방금 깨달은 사람 말이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너 자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너와 같이 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235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요즘 나에게 한 번씩 링크를 보내서는 어떤지 묻곤 한다. 링크는 예쁘게 프린트된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들이다. 나는 격하게 예쁘다고 반응하기도 하고 심심하다거나 프린트가 너무 커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지만, 친구는 이제서야 내 취향을 알겠다며 놀라기도 하고 본인이랑 얼마나 다른지 새삼스럽게 실감하기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얘기 왜 이러나 했는데 이제라도 내 취향을,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겠다고, 애쓰는 거 같아 한편 고맙기도 하다. 사실 이런 대화는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과 자주 나눠야 하는데 말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거나 어디에 소속되어 있거나 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알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나로 충분하니까.
회의와 비판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최선을 다해 서로 선의를 나눠야 한다. 수많은 방송과 블로그, 신문이 비관론을 쏟아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찢어놓는 데 혈안이 된 듯하다. 남을 단죄하는 이 소름 끼치는 세태에는 적의와 해코지만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中 p.123
우리는 화해와 화합이 아니라 반목과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는 약점이나 잘못을 찾으려고 한다. 참 피곤한 세상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열린 마음과 선의로만 대하기에는 무서운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울의 땅굴 속으로 파고 들려고 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친절이나 배려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조금은 긍정적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책 속에는 산문만 있는 게 아니라 시, 그리고 저자가 찍은 사진도 담겨 있다. 읽기 전에 쭉 페이지를 넘겨 보며 사진들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는데 저자가 찍었다고 하니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재능과 더불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