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 90세 스웨덴 할머니의 인생을 대하는 유쾌한 태도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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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자주 병원에 실려 가 보기도 했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거나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가족과 친구들을 너무 많이 보고 나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너무 오래 지속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죽음이 재빨리 다가와 주길 빌어라. 죽었다 살아나 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죽음이 꼭 그렇게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中 p.79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스웨덴 출신의 예술가다. 본인을 80에서 100살 사이라고 소개하신다는데 90대라고 추정된다. 제목부터 유쾌하게 다가오는 이 책은 지구에서 먼저 다채롭게 살고 있는 그녀가 전하는 삶의 통찰이다. 가볍고 편안하지만 마음 묵직하게 와닿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지, 어떻게 이별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은 주변의 젊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아주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中 p.122


관계라는 건 세월의 흐름으로 관록이 붙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렵고 조심스럽다. 나도 내가 받고 싶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있지만, 한 번씩 다른 사람들은 이 방식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되새긴다. 배려는 중요하지만, 타인 중심으로 살 수는 없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루틴이든, 아무리 괴로운 루틴이라도 사랑스럽게 만들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中 p.180


왜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하기 싫은 일들이 여전히 많은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책임을 다하는 게 그 사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척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책임감보다 그런 괴로운 일들을 사랑스럽게 만들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그게 몸과 마음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 같다. 



이미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버린 게 아니라면 무엇이든 너무 늦은 때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죽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니 나는 멈추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볼 것이다. 어쩌면 뉴욕의 갤러리에서 전시회 개막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中 p.199


하고 싶은 일은 찾기도, 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력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조금만 다른 방향을 곁눈질하면 꼭 옆에서 누군가가 쓸데없는 일에 진 뺀다는 오지랖을 떨어준다.(너나 잘하세요다) 하고 싶은 일이 사회적, 법률적, 인간적으로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진 빼고 싶은 만큼 진 뺐으면 좋겠다. 마음에 두고두고 후회나 미련으로 남기는 것보다는 할 만큼 하고 개운하게 떠나보내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트럼펫 연주와 탭 댄스, 입에 손가락을 넣고 크게 휘파람 불기를 제대로 해내 보기를 기원한다. 언젠가 마르가레타 망누손이 쓴 트럼펫 연주나 탭 댄스 교본 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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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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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당일에 그라운드 시소에서 전시를 하나 보고 스티븐 킹의 데뷔 50주년 기념 팝업에 다녀왔었다. 장소는 종각 영풍문고 내에 있었는데 포토존과 작품 등으로 소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둘러보다가 그래도 50주년인데 한 권 사자 생각하고 들도 나온 게 요 『로드워크』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J. K. 롤링이 필명으로 발표한 『커리어 오브 이블』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도 원래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쓴 것이라고 하니 작가들은 작품을 많이 쓰다 보면 다른 이름으로 발표하고 싶은 (큰) 욕구가 생기나 보다. 



중년의 가장인 도스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집과 오랜 시간 몸담았던 세탁 회사 위로 고속도로가 놓이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위원회에서는 보상금을 수령해서 빨리 이사하라고 하고, 직장에서는 이전할 새로운 부지의 계약을 서두르라고 도스를 압박한다. 아내와 직장에는 모두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듯 거짓말을 지속하던 그는 사냥용 라이플과 폭탄을 구하는 등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를 거듭한다. 


도스에게 집과 직장은 그냥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아내와 남부럽지 않은 TV를 사려고 같이 돈을 열심히 모았던 기억, 뇌종양으로 잃은 사랑했던 아들의 흔적, 제대로 능력을 인정해 준 존경할 만한 상사와의 추억 등이 켜켜이 쌓여 웃음, 눈물과 다양한 감정을 계속 상기시키는, 어찌 보면 그의 삶 자체였다. 

아마 집이나 직장, 둘 중에 하나라도 무사했다면, 도스가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했던 아들, 의지했던 상사 등 삶에서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잃을 때마다 느꼈던 누적된 상실감은 집과 직장, 모두가 사라지는 시점에 이르러 커다란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도스의 마음과 정신은 상실을 겪을 때마다 작은 금이 가고 있었던 거 같다. 



이야기는 철저히 도스의 감정을 따라간다. 그래서 전에 읽었던 다수의 스티븐 킹의 작품처럼 사건 중심의 스펙터클은 없다. 읽기 힘들었던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리 스릴러 느낌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하나를 잘하는 작가는 다른 것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역시나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궁금증 하나, 어차피 들통날 거 필명은 뭐 하러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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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2025 우수환경도서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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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어떤 물건을 구입하거나 할 때 늘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정말 필요한 것인가' 그렇게 나름의 고민을 거친 소비를 해도 1~2년 정도 묵히고 사용하지 않아 결국 버리게 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버리고 비워 정리한 자리를 보고 있으면 상쾌하다가도 문득 내가 버린 것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는지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쓰레기라고 생각해서 내 눈앞에서 치운 것들은 어떻게 될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에서 선택하게 되었는데 쓰레기를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볼 뿐 아니라 최근 모두가 의무처럼 느끼고 있는 재활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쓰레기 수거의 변천사,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여전히 과거의 방식(매립과 소각)을 유지하고 있는 쓰레기 처리 방법, 재활용에 있어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 등 관련 수치들과 배경지식을 통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



… 도시에서 수거되는 쓰레기는 심한 경우 전체 쓰레기의 약 10%에 불과하다고 추산된다. 주로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관리 부실 쓰레기는 물에 버려지거나 매립지에서 쓸려 나가 결국 사용하지 않는 땅, 도로, 바다로 유입된 쓰레기를 의미한다. 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는 수십 년 전부터 시급한 환경 문제로 부상했다.

- 『쓰레기의 세계사』 中 p.280~281


떠다니는 쓰레기로 인한 해양 오염, 동물들의 피해 등을 다룬 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보기는 했지만 수거 비율을 수치로 보고 나니 다소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수거 비율의 쓰레기임에도 제대로 처리할 장소, 시스템이 없어서 처리장이나 매립지 설립으로 그 많은 갈등을 겪는다니...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빠짐없이 다 수거해서 모아 놓는 게 가능한 일인지, 그렇게 모아 놓으면 우리의 주거 공간이 남기는 하는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물건을 굳이 다시 사용하지 않더라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천 쪼가리는 고전적이면서도 잘 알려진 예시이다. 재활용은 단순히 물건을 다시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근대 초기 나폴리에서는 재활용에 수많은 직업이 얽혀 있었다. 중고 물품 판매상은 통틀어 반카루차리라고 불렸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속해 있었다. 카필로는 머리카락이나 털을 가발 제조상에게 팔았고, 케네라로는 빨래를 할 때 필요한 재를 팔았다. 라트레나레는 도랑에서 진흙을 모아 거름으로 팔았으며, 변소를 청소하는 루타마리나 쓸 만한 물건을 주우러 다니던 무솔리나레도 있었다. 중간상도 물론 존재했다. 이렇게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쓰레기를 통해 도시에서 삶을 일궜다.

- 『쓰레기의 세계사』 中 p.98


쓰레기는 처음부터 더러운 회피 대상이 아니었다. 일자리 창출에 공헌이 큰 품목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터전이,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점점 쓰레기는 감춰져야 하는 것, 더러운 것이 되었고 그 부작용만 점점 더 크게 부각됐다. 그래서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꺼리는 일이 되었다.



문제는 효율성 증가에 집중하느라 어쩔 수 없이 포장에 의존하고, '수리'할 필요가 없는 물건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경제 체계이다. 오늘날의 경제 체계는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물질을 통해 다양한 방면으로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는 재활용이 환경 보호가 아닌 이유이다. 물건을 운송하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고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썩지도 않고, 물질의 순환 고리 속에 다시 끼워 넣기도 힘든 수많은 화학 물질과 폐기물이 생산된다.

- 『쓰레기의 세계사』 中 p.369~370


우리가 편의를 위해 새로운 물질, 물건을 만들어내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거기에는 그 물건이나 물질의 재활용이나 재사용은 고려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재활용, 재사용 등의 '순환 경제는 최첨단에 깨끗하고 친환경적이기보다는 '지저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활용이라는 탈을 쓰고 독성 물질이 수출되는 사례도 허다하다니 우리는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불편 정도는 다 같이 감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런 게 전 지구적으로 동의가 되면 쓰레기의 생산 자체를 줄일 수 있을 거 같지만 가능할까 싶다. 핸드폰이랑 잠시만 떨어져도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인류로 진화한 우리가 이제 와서 어디까지, 어떤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지...

최근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위기를 너무나 체감하는 상황에서 쓰레기를 통해 역사를 살펴보는 건 예상대로 의미가 있었다. 특정한 분야, 물건 등으로 세계사를 다룬 다양한 책들이 있는데 우리의 일상과 밀착된 쓰레기를 중심으로 자세히 읽어낼 수 있어 좋았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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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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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밤낮없이 괴로운 요즘에 읽기 딱 좋은 스릴러, 『홍학의 자리』. 이 책을 고른 것은 누군가의 추천 목록에서 거듭 언급되는 '반전'이라는 단어를 봐서였다. 대체 어떤 '반전'이 있길래 이 정도로 표현해 놓았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준후가 연인이었던 제자 다현의 죽음에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는 다현의 가정사, 교무부장과 그의 모범생 아들과의 악연, 거기에 별거 중인 준후의 아내까지 등장하면서 여러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까지는 크게 놀랍지는 않아서 이게 다인가 했는데 이 작품 마지막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거였다.



야근하던 날, 사랑을 나눈 다현이 교실에서 칼에 찔리고 목을 맨 채 발견되었을 때부터 이야기 중반까지의 준후의 행보는 그나마 다현에 대한 애정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준후는 소시오패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에 반해 사기꾼 어머니는 감옥에서 자살하고 살뜰히 보살펴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다현은 세상에 홀로 남은 섬처럼 외로웠다. 그래서 준후를 사랑했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향대로 사랑받기를 원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마저 엄마의 범죄로 인해 잃은 다현이에게는 그게 너무 절실한 거였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결코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는 인연이 아니었고, 그건 준후의 아내 영주와도 마찬가지였다.

준후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을 때쯤이면 다른 사람들이나 사건이 등장해서 이야기가 새롭게 더해진다. 작가가 구조를 잘 짰고 그 덕에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풍성해지고 흥미진진해진다. 결말에 이르면 준후를 사랑했던 다현이 -더불어 영주도- 정말 가엾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혼자 똑똑한 척 다했던 준후의 얼간이스러움에 살짝 실소가 나기도 한다.



작가는 스릴러 장르에 대해 경고라고 언급하면서 이번 작품은 한 사람의 인정욕구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이 소설은 사람의 인정욕구가 어떻게 그 사람을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랄까. 거기에 결말에 진짜 생각도 못 한 반전이 존재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전에 읽었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생각났다. 이 이야기의 반전도 예상 못 한 지점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더위로 정말 괴로운 날, 서늘한 기분으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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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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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이상의 인생을 보낸 지금, 내 모든 인생을 걸고 얻어낸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행복, 나의 안위를 평생 내팽개쳐도 좋을 만큼 중요한 건 세상에 없다.

-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中 p.185


최근 2~3년간 관계에 좀 변화가 있었다. 오래된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려고 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제 그런 관계라고 꼭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걸 스스로 납득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유지 못하는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주변에서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제는 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나랑 가장 오래 살 사람은 나고 그런 나와의 관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소중한 나와의 관계를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 다른 힘든 관계들은 정리해도 괜찮다. 잘못하는 게 아니다.



저자인 쓰루미 와타루는 10대 때부터 사회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부적응자들의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관계든 그 관계 때문에 힘든 것이 당연하게 겪어내거나 이겨내야 할 상황이 아니며, 친구도, 가족도,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없는 게 낫다고 말한다. 도망쳐도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연애, 가족 등의 모습이 환상이라고 꼬집으며 그런 걸 이루기 위한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진실 되고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에게 진심을 보여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게 모든 상황,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닌 것 같다. 누구든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군다면, 최선을 다해 그에게 진심을 보일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그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中 p.44


돌이켜보면 진심이 통한 순간이 없지는 않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통해 그런 순간을 꽤 많이 보았다. 그런 면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진심이 뒤통수로 돌아온 순간도 많다. 게다가 나쁜 기억이 더 오래가는 통에 자꾸 되새기면서 괴로워한 시간도 꽤 된다. 좋은 관계가 아니라면 빨리 정리하고 잊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는 인간관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진실이 있다. 바로 '아무리 애정을 갖고 한 일이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악의로 괴롭히는 것과 같다'라는 사실이다. 스토커를 보면 알 수 있다. 호의든 악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나치게 가까이서 해를 가한다는 게 중요하다. 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남한테 해를 끼쳐 발생하는 모든 갈등은 결국 적절한 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다.

-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中 p.165


전에 악의보다 무서운 선의 때문에 몇 개월을 고생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 그렇게 선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는 정말 소름 끼치게 힘들었다. 사랑, 호의, 이런 건 받는 사람이 그렇게 느껴야 그런 거다. 상대방이 자신이 보이는 언행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철저히 본인 기준으로 착각한 좋은 일일뿐 결국 잘못된 것이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개념 위에 호의와 오지랖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사이가 있어야 사이가 좋을 수 있다.

결혼, 가정 등 사회가 정한 어떤 단계들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나는 한 번씩 내가 세상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크게 불편한 점도, 불만도 없지만 이대로 괜찮은가 고민하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이 도움이 되었다. 어떤 삶이든 내가 충만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나보다 앞에 두어야 할 건 없는 거 같다. 물론 이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얘기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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